무지와 의심의 덕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를 제치고 진정한 철학자로 존경받는 것은 역설적으로 ‘무지의 덕’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리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자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이때부터 소크라테스는 각지를 돌며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자신이 어떤 덕을 찾아야 하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질문했다. 질문과 답변이 되풀이될수록 현자들의 무지와 독선은 점점 드러났고 자신을 낮추던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진리의 학문인 철학의 출발점에는 이처럼 기존 지식과 앎에 대한 문제 제기와 철저한 무지의 인정이 있었다.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코기토도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에서 출발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에 부쳤다.
철학자가 되기 위한 출발점은 이처럼 내가 잘 아는 지식과 통속적인 경험에 대한 반문이다. 자신이 이미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호기심을 갖지 않지만, 모른다고 인정하면 할수록 지식을 탐구하려는 욕망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무지의 덕’은 겸손이 아니라 모든 학문적 탐구의 근본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나는 참된 지혜를 추구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내 자신을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지식이나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갈망하고 질문을 던지는 내 자신 말이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물론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성격, 가족 관계, 삶의 이력, 자신이 경험한 사건들을 제시하면서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은 정말 확실한 것인가? 거기에는 오히려 내가 마음 쓸 수밖에 없는 타인의 평가 때문에 조율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위만 가득한 것은 아닐까? 내가 아는 나의 욕망이 진정 나의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부풀려진 신화들을 맹목적으로 좇는 허황된 모방은 아닌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김석, 《프로이트 & 라캉 : 무의식의 초대》. 김영사. 2010. pp.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