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성 對 사회문화적 성

2025-01-17 0 By 커피사유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역설을 언급했다.

인간종(種)에 암컷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인류의 절반은 암컷이다. 그런데도 여성성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우리는 여성으로 존재하고, 여성으로 남아 있고, 여성이 되라고 요구받는다. 그 말인즉, 모든 암컷 인간이 반드시 여성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성성이라고 알려진 불가사의하고도 위태로운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

보부아르가 이 글을 쓴 1940년대에 인기 있던 사조는 오늘날 ‘본질주의’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본질주의는 보편적이고 변치 않는 ‘여성’의 본질이란 여성의 생물학적 생식 기능으로 결정되며, 여성성이란 여성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봤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정의가 지나친 단순화라고 주장했다. 여성이라는 단어는 생물학적 범주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사회적 범주를 뜻하기도 한다. 사회적 범주로서의 ‘여성’이 되려면 암컷으로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행동 양식과 자기표현 방식을 습득해야만 한다. 이에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1968년 이후, 영어권 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통찰을 빌려 제2물결을 주도했다. 이들은 수컷/암컷을 의미하는 생물학적 섹스(sex)와 문화적으로 정의되는(혹은 이후 보편적인 체계가 되어 ‘사회적으로 구성된’) 남성성/여성성을 뜻하는 젠더(gender)를 이론적으로 구분했다.

데버라 캐머런(Deborah Cameron), 《페미니즘(Feminism)》. 강경아 역, 신사책방, 2022. pp. 8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