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서사적 서사
#1.
“Make her painting look ____(그녀의 그림을 ____해보이게 만들다).”
서울 강남구의 한 유명 영어학원이 제작한 유치부 입학시험, 이른바 ‘7세 고시’의 빈칸 채우기 문항 중 하나다. 보기 4개 중 ‘picturesque(생생한)’를 골라야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문항을 살펴본 17년 차 고등학교 영어 교사 임준걸 씨(44)는 “중고교생도 어려워할 단어”라며 “중3~고1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이 어학원은 이런 문제 40개를 45분 안에 풀도록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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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3일 유아 사교육업체 248곳을 특별점검한 결과 사전 레벨테스트를 시행하는 학원 11곳이 적발됐다. 다만 현행법상 레벨테스트는 불법이 아니기에 교육청은 교습생 선발 방식을 추첨이나 상담 등으로 변경하도록 권하는 행정지도만 내렸다.
n세 고시가 성행하는 건 치열한 교육 경쟁 때문이다. ‘영재학교-특목고-의대 진학’을 고려한 장기 전략의 시작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학부모의 불안감도 작용한다. 송파구에서 5세 아들을 키우는 오모 씨(38)는 “주변에서 이른바 ‘새끼선생’ 과외까지 붙여 n세 고시를 준비한다고 하니 조바심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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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대학생도 당황하는 ‘7세 영어고시’ … A4 2장 영어에세이 요구도」., 《동아일보》. Web, Accessed on 1 Sep 2025.
#2.
저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교육인 것 같아요. 이게 정말 악순환이에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더 이상 ‘깨우침’의 장이라기보다는, 생존 경쟁의 전초기지처럼 느껴져요. 그 한 가운데 의대쏠림 현상이 있는데 왜 그렇게 의대라는 단 하나의 길만 고수할까,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할까. 단지 의학에 대한 사명감이나 소명의식 때문만은 아닐거에요. 반은 부모님이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해” 이런 강요가 있어서일 수도 있고, 반은 지금 사회에서 돈을 벌고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제도권 안에 가장 쉽게 진입해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길이 의대니까요. 또 부모의 기대, 사회의 압력, 제도의 설계 ―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몰아가기도 해요.
근데 왜 꼭 그렇게 살아야 하죠? 그게 너무 아쉬워요. 지금 이 틀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 하나의 정답만을 외치고 있다는 것이에요. 왜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왜 정답은 하나여야만 하는가? 지금의 시스템은 지나치게 획일화되어 있고, 다름을 용납하지 않아요. 그것이 한국 교육의 가장 뿌리 깊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해외에 나가보면 특히 유럽의 경우는 사회적 인식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 보여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충분히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삶의 만족이 직업의 지위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사회적 존중이 다양성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표준이 아닌 다양한 삶의 경로들이 공존하고 있는거죠.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해진 길’이 강조되고, 그 외의 선택은 일탈, 또는 실패라고 간주되어요. “왜 한국에서는 이런 게 잘 안될까?”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결국 그게 교육 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랑도 다 연결돼 있어요. 교육, 노동시장, 경제 시스템이 전부 맞물려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대치동 사교육 시장만 봐도 엄청 크잖아요. 그리고 교육 문제를 건드리면 표를 잃는다고 생각하니까 정치인들도 대선 같은 큰 선거에서는 아예 교육 개혁을 문제로 삼지 않아요. 마이너한 이슈 정도로만 건드리는 거죠. 결국은 이 악순환이 계속 반복돼요. 그래서 저는 정말, 교육부터 대대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지금 개개인들도 조금씩 깨어나고 있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씩. 이런 생각들이 더 많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혀 다른 시도를 할 때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한번 해보자, 이거 괜찮네” 하는 사례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이런 것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래, 이런 직업도 있고, 저런 삶도 있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거 아닌가” 이런 식의 사회적 합의가 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공통된 감각이 퍼져야 하나의 직업에만 얽매이지 않는 흐름을 만들 수 있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제도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개개인의 깨어남, 작고 새로운 시도들 ― 이것들이 모일 때, 제도는 바뀔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 감각은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발화하고 실천함으로써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죠. 새로운 직업,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가치의 흐름 ― 그러한 다양성이 사회 전체에 확산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답만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양애진 · 임명묵 · 임정희 · 전범선 · 함은세, 「MZ세대 문명대담: 우리는 어떻게 무너지는 세계를 살고 있나」, 《사상계》 창간 72주년 특별기념호(2025년 여름). pp. 93-94. (임정희 씨의 발화 中)
#3.
이상의 글들을 읽고 남겨놓은 메모.
내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가 타인을 이해하려고 했던, 그들을 향해서 나의 상처들과 간극들을 넘어왔던 여정으로부터 다른 이들에게도 호소력이 있을, 그들이 스스로의 존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울 하나의 단초를, 하나의 사유를, 하나의 문제 제기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