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12. 애드거 앨런 포우,

잠시, 멈춤 #12. 애드거 앨런 포우, <도둑맞은 편지>

2021-03-27 0 By 커피사유

잠시, 멈춤 시리즈는 필자가 읽은 글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일부, 혹은 전부 인용하고, 필요에 따라 주석을 곁들이는 등, 커피, 사유의 글 모음집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로 포스팅되는 모든 글의 경우, 필자가 쓴 글이 아님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의 출처는 ‘본문’ 단락 가장 밑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본문

“그렇지만 이 사람이 진짜로 시인인가?” 내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 D장관에게는 형제가 하나 있고 둘 다 문장가로 명성을 얻었다고 하던데. 그 장관은 미분학에 대해서 조예 깊은 글을 써온 걸로 알고 있네. 그는 시인이 아니라 수학자야.”

“자네가 잘못 안 걸세. 나는 그를 잘 알지. 그는 시인이자 수학자야. 시인이자 수학자로서 그는 추론을 아주 잘하지. 단지 수학자이기만 해서는 추론을 못할 것이고, 그랬으면 경시청장에게 덜미를 잡혔겠지.”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과 반대되는 말로 자넨 나를 놀라게 하는군. 설마 수 세기에 걸쳐서 다듬어진 생각들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수학적인 추론이야말로 탁월한 논리로 간주되어왔지 않은가.”

“널리 받아들여지는 모든 생각과 관습들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판단하건데 어리석은 것들일 수 있다.” 뒤팽은 샹포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답했다. “수학자들은 분명 자네가 말한 그 흔한 오류들을 최선을 다해 널리 퍼뜨려 왔지. 그렇지만 진실이라고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분명 틀린 이야기라네. 예를 들면 좀 더 가치 있는 대의명분에야 써야 할 기교를 가지고 그들은 슬며시 ‘분석(analysis)’이라는 용어를 ‘대수학(algebra)’에 적용하도록 만들었지. 프랑스인들이 이 특정한 속임수의 원조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어떤 용어가 중요성을 가진다면 – 만일 단어들이 그 적용 가능성으로부터 그 가치를 끌어낸다면, ‘분석’이라는 단어는 ‘대수학’과 연결될 수도 있지. 마치 라틴어로 ‘ambitus‘가 영어로 ‘ambition’을, ‘religio‘가 ‘religion’을, 그리고 ‘homines honesti‘가 ‘honorable men’을 뜻하게 된 것처럼 말일세.” [주 1]

“자네는 파리의 대수학자들 몇 명과 한바탕 싸움을 하게 생겼군. 그렇지만 계속해보게.” 내가 말했다.

“나는 추상적으로 논리적인 방식을 제외하면 어떤 다른 특정한 형태로 체계화된 논리들이 쓸모가 있다고 믿지도 않고, 그러니 당연히 그런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네. 나는 특히 수학적인 연구에서 연역되는 논리를 믿지 않아. 수학은 형태와 양의 과학이야. 수학적인 추론은 단지 형태와 양에 대한 관찰에 적용되는 논리이지. 소위 순수 대수라는 것을 이상적인 혹은 일반적인 진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야.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너무도 터무니 없어서, 나는 그것이 그토록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미칠 지경이라네. 수학의 공리들은 결코 일반적인 진리의 공리들이 아니거든. 예를 들면 형태와 양의 관계에서 진리인 것이 때로 도덕에서는 완전히 틀린 것이지. 윤리학에서 부분들의 집합이 전체와 같다는 것은 대개는 사실이 아니니까. 또한 화학에서도 그 공리는 맞아 떨어지지 않네. 동기를 고려해보기만 해도 그것은 틀린 이야기야. 왜냐하면 두 가지의 동기, 각각의 일정한 가치를 지닌 두 가지 동기가 합쳐졌을 때 반드시 그것이 각각의 가치의 총합만큼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거든. 관계의 범위에서만 진리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수학적인 진리들이 얼마든지 있다네. 그러나 수학자들은 자기의 제한된 진리에서 시작하여 습관적으로 – 그리고 세상이 실지로 그렇게 상상하는 대로 – 마치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적용성을 가진 것같이 주장하지. 브라이언트는 조예 깊은 저서 <신화학>에서 그러한 오류와 유사한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네. ‘이교도의 우화들을 믿지는 않으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망각하고 마치 그들이 현존하는 실체들인 양 그것들로부터 추론을 한다’고 말했거든. 그러나 이교도 같은 대수학자들은 바로 그 ‘이교도의 우화’를 실지로 신봉하고 그것으로부터 추론을 하지. 착오 때문이 아니라 어이없이 머리를 썩이면서 말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수학의 중근을 믿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려 한다거나 그것을 $x^{2}+px$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q$와 같다는 것에 대한 자기 믿음의 출발점으로 은밀하게 믿고 있지 않은 수학자를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다네. 시험 삼아 이런 신사들에게 $x^{2}+px$가 $q$가 아닌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보게. 자네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일단 그 사람에게 이해시킨 후에는 가능한 한 빨리 멀찌감치 도망가는 것이 현명할 거야. 왜냐하면 틀림없이 자네를 때려눕히려고 할 테니까 말야.”

[주 1] 라틴어의 원래 의미가 변하여 영어 단어의 어원으로 쓰인 예들이다. ambitus의 원래 의미는 ‘회전’이나 ‘순회’였으며 지위를 얻기 위해 비도덕적으로 기웃거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영어 ambition(야망)의 어원이 되었다. religio는 영어 religion(종교)이 의미하는바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경의’와 ‘존중’을 뜻하였다. homines honesti는 단수형인 honestus가 도덕적 함의 없이 원래는 ‘뛰어난’을 의미하였으나 영어 honorable men(명망 있는 사람들)의 어원으로 여겨진다.

– 도둑맞은 편지. 애드거 앨런 포우 作, 김진경 易, 문학과지성사 (2018) 中.

주석

서울대학교 ‘문학과 철학의 대화’ 수업의 2021-3-22일자 텍스트였다. 나는 수업 당일 아침에서야 비로소 이 텍스트를 꺼내 읽게 되었는데, 그 이전 수업들에는 워낙 소설보다는 산문이나 비평글의 성격에 가까운 글들을 읽다가 갑자기 추리물 시리즈를 읽게 되니 무언가 나는 놀라운 기분이었다.

텍스트를 읽던 중 ‘수학’이라는 학문에 관련된 일반적 ‘진리의 주장’에 대한 오류라는 저자의 생각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라, 이렇게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