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11. 레프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잠시, 멈춤 시리즈는 필자가 읽은 글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일부, 혹은 전부 인용하고, 필요에 따라 주석을 곁들이는 등, 커피, 사유의 글 모음집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로 포스팅되는 모든 글의 경우, 필자가 쓴 글이 아님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의 출처는 ‘본문’ 단락 가장 밑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본문
갑자기, 미하일이 앉아있는 쪽에서 섬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세몬과 마트료나는 부인을 배웅하고 돌아와 미하일을 쳐다보았다. 미하일은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어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미하일은 의자에서 일어나 작업용 앞치마를 벗은 후, 세몬과 마트료나에게 공손히 절을 하며 말했다.
“이제, 작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저를 용서해주셨으니, 두 분께서도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 때, 세몬과 마트료나는 미하일에게서 눈부신 후광이 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세몬도 일어나 마주 절하며 미하일에게 말했다.
“역시 자네는 보통 인간이 아니었군. 자네를 더 이상 붙들어둘수도, 자네에 관해 더 이상 물을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꼭 한 가지만은 알고 싶네. 내가 자네를 처음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을 때에는 몹시 어두운 표정이었네. 그런데 아내가 저녁을 차려주자 자네는 미소를 지으며 밝은 표정이 되었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또, 어느 신사가 장화를 주문했을 때에도 자넨 웃으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고, 방금 전 부인이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에도 빙그레 웃었네. 그리고, 자네 온 몸에서 밝은 빛이 비췄지. 미하일… 왜 자네에게서 빛이 나며, 왜 세 번 미소를 지었는지 그 이유를 내게 들려 주게나.”
그러자 미하일은 비로소 말하기 시작했다.
“제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을 받고 있다가 이제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세 번 미소를 지은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재 진리는 아주머니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보살펴 주셨을 때 깨달았죠. 그래서 웃었던 거에요. 두 번째 진리는 부유한 손님이 장화를 주문했을 때,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웃었던 겁니다. 그리고 방금 전, 두 여자 아이를 보았을 때 세 번째 진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미소 지은 겁니다.”
세몬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미하일, 어째서 하느님께서 자네에게 벌을 내리셨나. 그리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3가지 진리란 무엇인지 알고 싶네.”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은 제가 그 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래 천사였는데, 하나님께서 한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오라고 저를 지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내려와보니 그 여인이 몸이 아주 쇠약해져 누워있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쌍둥이 딸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 여인을 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습니다. <천사님, 전 남편의 장례식을 며칠 전에 치뤘습니다. 그 이는 숲에서 일하다가 나무에 깔려 죽었지요. 이 불쌍한 아이들에게 키워 줄 사람 하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제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제 영혼을 거두어가지 말아 주십시오.> 여인의 애원을 듣고, 저는 한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고 다른 한 아이에게 팔을 안겨주고 나서 하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 저는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 올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나무에 깔려 죽었고, 여인은 며칠 전에 쌍둥이를 낳아 기진맥진해져서는 제발 자기의 영혼을 데려가지 말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다시 분부하셨습니다. <지금 곧 내려가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오너라. 그러면 너는 세 가지 진리를 발견할 것이다. 사람의 내면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 진리를 알게 되는 날, 너는 하늘 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그 여인의 영혼을 거두었습니다. 영혼이 떠나는 순간, 시신이 침상에서 떨어지면서 한 아이를 덮쳐 그 아이가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여인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데려가려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풍이 불어와 제 두 날개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영혼만 하느님께로 가고 저는 지상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세몬과 마트료나는 자신들이 먹이고 입혔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두려움과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다.
“저는 혼자 벌거숭이가 된 채 들판에 버려졌습니다. 인간이 된 저는, 몹시 추웠고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들판 한 가운데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문이 잠겨 있어 교회 뒤 편에 앉아 있었지요. 몸은 꽁꽁 얼어붙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털장화를 든 채, 제가 있는 쪽으로 오면서 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어떻게 처자식을 먹여 살릴 것인가.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얼굴을 찡그리고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나를 구해주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저는 곧 다시 실망을 하고 말았죠. 그런데 그 사람이 다시 제게로 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놀랐습니다. 조금 전의 얼굴에는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었지만, 다시 돌아온 얼굴에는 인자한 하느님의 그림자가 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제게 입혀 주고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 한 여자가 사나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은 남자보다 훨씬 더 무서운 얼굴을 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죽음의 독기가 뿜어져나와, 저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는 금세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면서 저를 쳐다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녀에게서도 전,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사람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 라고 하셨던 하느님의 첫 번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약속하신 것을 이런 방법으로 깨닫게 하시는구나 – 생각하니 매우 기뻤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미소 지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진리를 모두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것은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두 분과 함께 지낸지 1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부유한 신사가 찾아와 일 년이 지나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장화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뜻 밖에도 그의 등 뒤에 저의 동료인 죽음의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그가 신사의 영혼을 거두어가리라는 것도 그 때 알았죠. 그 때, 저는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 라는 말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바로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힘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두 번째 진리를 계시하셨기에 저는 두 번째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년째 되는 오늘, 한 부인이 쌍둥이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 아이들을 금세 알아보았고 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쌍둥이가 무사히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을 때, 저는 그녀의 말을 믿고, 부모 없이 아이들은 전혀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 아이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저 여인이 젖을 먹여 살릴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는 그 부인이 아이들에게 쏟는 애정과 감격의 눈물을 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발견했죠. 물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라는 그 말씀의 뜻도 깨닫게 되었지요. 하느님께서 마지막 깨달음을 주시어, 저를 용서하셨다는 기쁨에 저는 세 번째로 방긋 웃은 것입니다.”
마침내 천사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전신이 찬란한 빛에 휩싸여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천상의 맑은 목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 같았다.
“모든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간이 되어서도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길을 가던 한 사람과 그 아내의 마음 속에 깃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또, 두 고아가 잘 자라온 것도 한 여인의 가슴 속에 깃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 하시고 그들이 잘 살아가길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또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홀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평화롭게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므로, 모든 사람이 진정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계시하셨습니다. 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그것은 착각일 뿐, 진실로 인간은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하느님 속에 사는 사람이고, 그 사람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곧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친 후, 천사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웅장한 목소리는 온 집안을 울리는 듯 했다. 이어 천장이 갈라지고, 땅에서 하늘까지 한 줄기의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세몬과 그의 아내는 땅에 엎드렸다. 그러자 천사는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하늘로 올라갔다. 세몬이 정신을 차렸을 때 집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집 안에는 가족 외에 아무도 없었다.
– 세계단편소설4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 박선희 역. 리베르 출판사. 中.
주석
이 짧지만 강력한 문구는 다음의 Youtube 낭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나는 이 오디오북을 어느 새벽에 들었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너무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다른 그 누군가도 그 잠자리를 편하게 하면 좋을 듯 하여, 그 낭독을 아래에 달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