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sia, ac ego
아버지께서 집에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 들고 오셨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는 사실을 나 또한 알고 있었기에, 무슨 일인가 했다. 사실은 얼마 전 두 분 사이의 갈등이 있었으므로 이 갈등을 풀려고 하는 아버지의 시도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나 자신이 알기로는 아버지의 과실이 너무 컸으므로 꽃 한 다발은 좋은 시도이기는 했으나 효용성은 다소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또 실패하신 아버지께서는 서운한 것인지 모를 감정선의 연장선인 듯, 다발에서 몇 송이의 꽃을 떼어 작은 병에 담아 내 방 책상에 올려주셨다. “네 책상에는 너무 꽃이 없구나.” 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결국 또 한 번 이러한 배경이 담긴 꽃이 나의 책상에 올라온 사유로 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제작년의 사건 이후로 두 분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상태로 지속되지는 않았다.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으며, 웃음의 가면 뒤에는 언제나 남은 상처가 아리는 듯 두 분을 옥죄는 듯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프리지어 꽃 두어 송이을 보면 두 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학업에 이것이 방해 요인이 되므로, 그만 사라져버리거나 녹아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이성이 나를 설득하는 바이며 직감도 나에게 속삭이는 바이라 이것은 다소 우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찾아보니 이 노란색의 프리지어 꽃에는 ‘청함’이라는 꽃말이 있다고 하고, 노란색이라는 것은 희망과 따듯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꽃이 나의 책상 위에 있으므로 바라건대, 나에게 관련되지 않을 수 없는 이 기나긴 기다림이 희망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도록 청하는 바이다. 드라마는 이제 나에게 충분하고, 나는 너무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