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보편적 호소성을 가지는가
조금 전에 나는 막 관악사에서 주최한 ‘제43회 관악작은음악회’에 다녀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별로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가볍게 음악을 즐기려는 생각이었으나 생각 이외로 많은 인상과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특히 라틴 음악과 클래식을 접목한 Astro Piazzolla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게 되었으며, 그의 작품 중 하나인 Historie du Tango – III. Nightclub 1960이라는 곡을 새로 접하고는 이윽고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아마도 추정컨대, 나 자신이 평소 라틴계 음악과 오케스트라풍 클래식들 – 즉 현악 및 관악으로 구성된 각종 음악들에 대한 나름의 낭만이나 열정,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즉 나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영역들의 융합이었으므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렸을 것이다.
나는 그 음악의 향연을 즐기다가 문득 얼마 전부터 간혹 떠오르던 생각을 마침내 제대로 떠올려볼 수 있었다. 나는 음악의 향기에 더없이 취해 있었고 발바닥은 Nightclub 1960을 풀어가는 첼로와 기타의 리듬에 맞추어 까딱거리고 있었다. 까딱거림에 맞추어 나의 질문의 단어들은 조각조각 뱉어졌으나, 그것들은 마침내 선율 위에서 모여 단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환하게 빛나는 듯 했다.
“음악은 보편적 호소성을 가질까?”
아마 이 찰나의 빛나는 질문의 속뜻이란 이런 것이었으리라. 그 어떤 도시에서도 우리는 음악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음악은 즉 인류 전체에게 보편적인 어떤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통하지 않는 어떤 두 문화권 사이에서는 음악을 통해 이른바 정서적인 것은 공유할 수 있는 모양이던 것 같다. 우리는 타국의 음악을 듣고도 이것이 신나는 음악인지 슬픈 음악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비정서적인 것까지도 음악을 통해 공유해볼 수 있을까? 그런 망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