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변호(自己辯護)
… 요즘 들어서 특이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 같다.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안에서 유발된 몇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한 방법,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 뿐인데 그 과정 자체가, 그리고 그 과정과 마주하면서 나에게 일어난 변화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 모양이다. 적어도 부모님께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라고 나를 규명지어 가시면서 이를테면 ‘좀 현실적인 측면을 보라!’라는 메시지를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하시고 있기에, 그리고 많은 친구들과 주변인들로부터 이상한 사상(思想)을 가지고 있다고 평을 듣는 것을 보면 그러한 생각은 더더욱 확증된다.
당장 어제도 예전에 김현경 선생님의 『사람, 장소, 환대』의 제6장을 대학 수업의 일환으로 읽다가 ‘적대적인 사람에 대한 환대’ 부분에서 제시되는 형법의 고전적 관점, 즉 형벌은 그 사람의 죄에 상응하게, 계약에 따라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예방 차원의 어떤 것이다는 관점과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중대 범죄자들에 대한 각종 과격한 표현 – 이를테면 “사형시켜라!”, “저런 놈들을 왜 교도소에 가두고 편히 살게 하냐!” 등 – 에서 드러나는 심리적 차원 사이의 어떤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을 주문했는데, 어머니께서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미 말한 바가 있었다. “세상을 좀 단순하게 살아라.” 라고. 그러나 세상이 단순하지 않은데, 어떻게 삶이 단순할 수 있겠는가? 비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명백히 여기서 선언한다. 단순한 삶은 곧 죽은 삶과 같다고. 나는 한 사람의 삶은 그에게 수많은 도전을 부여함으로써 모종의 깨달음의 씨앗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그 씨앗을 어떻게 기르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은 좌우될 것이다. 그 씨앗이 만약 영혼에 뿌리를 내리고 높고 멀리 뻗어나간다면, 그는 이 영혼의 대지 위에 뻗은 나무의 가지를 타고 더 멀리, 그리고 더 트인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씨앗은 그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줄 것이며, 당장은 그의 현실적 처지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를 구제할 것임은 매우 명백하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나는 이해를 그렇게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다만 타인들이 나 자신이 어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그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비교해줄 수 있는 겸허한 장을 허락해주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 나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 너무 어려서 세상의 모든 측면을 알지도 못한다. 사실, 세상의 모든 측면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통해서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능한 나의 일생을 모두 바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의 생각과 경험과 이야기들을 긁어모아 가능한 한 가장 진리에 가까울 어떤 결론, 즉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얻고 싶다. 그것이 나의 현재의 이상한 욕망이다고, 나는 명백하게 말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