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와 우울
가끔씩 나는 왜인지 이유 모를 작은 자극들에 영향을 받아 권태로움이나 우울함에 물드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정원 외 신청에서의 실패와 너무 기나긴 마르크스 관련 강의가 발단이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 정신이 억눌러진 게으름을 이제 표출하고 싶은 것인지 더없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대학의 땅 위에서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야 하지만, 나는 그 어떠한 이야기도 만나고 싶지 않아졌다. 지친 것인가, 이렇게 물어야 하는가. 그러나 지친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 자신의 인식의 지평선이 넓어지는 것은 흥미진진하며 언제든지 경험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권태와 우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왜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철없이 별 것도 아닌 것이 증명되어 버린, 허무하고 의미없음이 증명되어 있는 짧은 자극과 유희에 휘말리고 있는 것인가. 내가 마음이 흐트러지지 못하도록 엄격한 경계를 선 것에, 나의 마음이나 정신이 질릴 대로 질려버렸기 때문에 반기를 드는 것인가.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오늘 갑자기 표출되면서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인가.
권태와 우울을 나는 다스려야 하는데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왜 이렇게 행위하는지도 설명할 수가 없다. 아직 나의 학문과 수양이 멀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학문과 사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학의 땅에서 더러운 일을 할 수는 없다. 권태와 우울을 지금 내 마음으로부터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리를 비켜줄 리가 없다. 그들을 달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그들을 매섭게 몰아내야 하는가? 권태와 우울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도대체 이들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어쩌면 나의 계획을 이들이 방해하고, 나의 대학에서의 다짐과 마음갖춤새를 흐리게 하는 것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런 추론도 틀릴 지도 모르겠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의 행동과 마음에 대하여 나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무지가 이렇게 권태와 우울과 결합하면 더욱 괴롭다.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라는 오래된 마음을 다스리는 격언이 있지만, 나는 그러한 격언에 따르기에는 가지고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미친 짓을 그만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나가야 한다. 대학이라는 땅이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러니 바로 세우자. 흐트러진 나 자신을. 그것이 나의 의무이자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