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5. 2023. 12. 21. ~ 2023. 12. 25.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짧게 노트에 휘갈긴 것을 그대로 옮겨두는 공간입니다.
#1.
한 학기를 대학에서 더 보낸 이후, 나는 솔직하지 못한 것은 곧 스스로의 파멸을 초래함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솔직하지 못해서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대학 풋내기 때의 그 떳떳함과 뿌리 없는 자신감, 그리고 그 긴장감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이제는 다시 그 당시로 되돌려두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울 때가 된 것이다.
#2.
연구실에서 돌아오는 길, 서점에서 결국 집은 나태주의 시집.
시(詩)를 별로 읽지도 않던 내가 작은 책자를 얻은 이유란 분명히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잃어버린 것이란 내가 소중히 하지 않아 나를 떠나간 것이고, 나의 그 명료한 정신이 잠들 때에 항상 꼭 움켜쥐어야 했던 그 손에 힘이 빠질 때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다. 잃어버린 것, 그것을 나는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시인의 책자 안에는 별은 멀고 작으며 차갑게 느껴진다고, 그러나 별은 그럼에도 여전히 별이라고 했지만, 그렇기에 별을 품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별과 나의 거리가 그것을 품는 것을 허락할 때에야 가능한 법.
나는 별을 바라보며 3년을 왔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 아스라이 보이는 그것과 나 사이에는 어느 겨울 밤 스무살 남짓의 풋내기가 꿈꿔왔던 그것과 나 사이의 그것만큼 멀찍이 떨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한 그 공백이 있어서, 그렇게 텅 빈 별과 나 사이에서 나는 거리를 잃은 것이다. 멀어진 그것의 온기는 나를 이 추운 계절에서 더욱 무섭도록 떨리게 만든다.
시인에게 나는 답을 구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차갑고 먼 것이 비록 별이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품어야 한다면, 그것과의 거리 그기로 그것으로 인한 온도는 어떻게 인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가 잃어버린, 나의 잘못으로 잃어버린 그 조금이나마 가까운 듯했던 그것의 친숙하고도 미약하게나마라도 가슴을 뛰게 했던 그 겨울 속 단 하나의 허락된 사랑을 나는 과연 되돌릴 수 있을지를.
#3.
2023. 12. 25.
부산
성탄절 기념으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왔다. 17년도에 온 이래로 6년만의 일이었다. 광복로의 거대한 조명 트리 앞에 서서 밤을 응시하던 중학생은 23년도의 말미를 지나는 지금, 내년에는 대학 4학년이 되는 만 스물의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 굿즈샵 앞에서 아버지가 결국은 사 주셨던 인형을 들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내 여동생은 이제 내년에 대학으로 입정(入定)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굿즈샵에서 사든 작은 인형 하나에 기뻐하는 철없는 예비 대학생이 되었으며, 부모님 두 분께서는 여전히 곁에, 그리고 오래전 사진 속의 그 자리 그대로 계셨으나 시간은 시간인지라 주름살이 는 얼굴로 거기 계셨다.
그러나 모든 것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비록 우리들은 삶에 부대끼며 조금은 변했을지도 모르겠으나, 훌쩍 커 버린 아이의 키와 조금 짜글짜글해진 부모의 피부 가운데에서도 그대로 거기 있었다. 비록 가족이 매일 저녁마다 서로를 마주치며 저녁을 먹는 일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서로가 주된 일상을 보내는 물리적 거리가 제아무리 먼 우리들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 한가운데에 모든 것은 그대로 있었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찾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와 김소월의 고시집, 국제시장 지하 미술 상가의 공방들에 나열된 액자 속 누군가의 미소와 유화 물감으로 덧칠된 어느 호숫가의 정경, 연말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마다의 발걸음을 옮기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 한가운데 그대로, 바로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
변하지 않는 우리의 그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