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苦)와 감(甘) 사이, 운(耘)
기옥 씨가 알기로 공항 안에 제일 많은 단어는 ‘출발’이란 말과 ‘도착’이란 말이었다. 그런데 기옥 씨는 이 순간 수천 개의 표지판 아래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고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옥 씨가 하아― 얕은 숨을 뱉었다. 배가 고파 입에서 쓴 내가 났다. 생각해보니 오늘 먹은 것이 없었다. 그러자 문득 아까 가방 속에 넣어둔 마카롱이 떠올랐다. 어느 아기 엄마가 놔두고 가는 걸, 음식 버리는 게 죄스럽고 아까워 따로 챙겨둔 거였다. 기옥 씨는 자신의 구찌 가방을 뒤져 고급스런 종이 상자를 꺼냈다. 그러고는 먹기 너무 아까울 정도로 예쁜 색색의 파스텔 톤 마카롱을 바라보았다. 밀가루와 달걀, 우유, 설탕 등 기본 재료는 변함없지만 종류별로 송로버섯과 푸아그라, 라임과 장미가 들어간 것들이었다. 기옥 씨는 그중 분홍색 마카롱을 집어 빤히 바라봤다. 불안함과 호기심이 반반 섞인 표정을 하고서였다. 그것은 5백 원짜리 동전 비슷한 크기에 완벽한 구형을 이루고 있었다. 기옥 씨는 입을 크게 벌려 과자를 반쯤 베어 물었다. 처음에는 ‘아유 달어’ 하고 살짝 몸서리쳤지만, 곧 프랑스 전통 과자의 그윽하고 깊은 단맛, 부드럽고 바삭한 식감을 조심스레 음미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기옥 씨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 기옥 씨는 왠지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지막하게 웅얼거렸다.
‘왜 이렇게 단가……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건가……’
바람이 불자 기옥 씨의 브래지어 위에 핀 가짜 꽃들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이국의 열대 식물이 휘청대는 느낌이 들었다. 기옥 씨의 얼마 안 되는 머리카락도 힘없이 흩날렸다. 일단 무언가 위를 자극하자 더 큰 허기가 밀려왔다. 기옥 씨는 가슴팍의 선득한 기운을 느끼며, 양 볼에 검버섯이 핀 달, 휑뎅그렁한 대머리를 드러내고 있는 큰 달을 망연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부시럭― 봉투 안에 손을 넣어 노란색 마카롱 하나를 집어 들었다.
김애란, 〈하루의 축〉.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pp. 198-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