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커피사유

낮에는 학구열과 호기심이 넘치는 학자, 밤에는 실리적인 프로그래머, 새벽에는 새벽만의 또렷한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블로거. 별난 사람, 커피사유입니다.

외로운 자기 위로

By 커피사유 2025-03-30 0

4월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도 쓸쓸한 계절이다. 4월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듯이 보였다. 다들 코트를 벗어 던지고 밝은 햇살 속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캐치볼을 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지만 나는 완전한 외톨이였다. 나오코도 미도리도 나가사와도 모두 내가 선 장소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안녕.’ ‘잘 지내니.’라고 말해줄 상대조차 없었다. […]

데우스 엑스 마키나

By 커피사유 2025-03-30 0

“바깥은 정말 날씨가 좋아요.” 나는 둥근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가을인 데다 일요일이고 날씨도 좋고, 어디를 가도 사람으로 가득해요. 이런 날은 이렇게 방 안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게 제일 좋아요, 피곤하지도 않고. 복잡한 데 가 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공기도 안 좋고. 전 일요일에는 대체로 빨래를 해요. 아침에 빨아서 기숙사 옥상에서 말리고 저녁 전에 거둬서 착착 다림질을 해요. […]

노르웨이의 숲

By 커피사유 2025-03-30 0

“「노르웨이의 숲」 부탁해.” 나오코가 말했다. 레이코 씨가 부엌에서 고양이 저금통을 들고 오자 나오코가 지갑에서 100엔 동전을 꺼내 거기에 넣었다. “뭔데요, 그거?”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신청할 때마다 여기에 100엔을 넣기로 되어 있어. 이 곡을 제일 좋아하니까 특별히 이렇게 해. 마음을 담아 신청하는 거지.” “그게 내 담뱃값이 되기도 하고.” 레이코 씨는 손가락을 푼 다음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했다. […]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다

By 커피사유 2025-03-30 0

“고독한 게 좋아?” 그녀는 턱을 괸 채 물었다. “혼자서 여행하고 혼자서 밥 먹고 강의도 혼자서 뚝 떨어져 앉아 듣는게 좋아?”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그녀는 선글라스 다리를 입에 물고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실망하는 게 싫을 뿐이야. […]

대극이 아닌 잠재로서의 죽음

By 커피사유 2025-03-29 0

기즈키가 죽은 후 졸업할 때까지 열 달 남짓, 나는 주변 세계 속에서 내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한 여자애와 사이가 좋아져서 같이 자기도 했지만 결국 반년도 가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흡인력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도쿄의 사립대학을 선택해서 시험을 쳤고, 딱히 별다른 감흥도 없이 입학했다. 그녀는 내게 도쿄에 가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무작정 고베 거리를 떠나고 싶었다. […]

고등학교의 숲

By 커피사유 2025-03-27 2

조금 전, 대략 6년 전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들을 톺아보러 올라온(또는, ‘끌려온’) 경남과학고등학교 학생들과 대면하고 왔다. 그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15분 남짓으로 길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설 수 있게 된 것에는 총 5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나는 알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씁쓸했다. 5 ~ 6년이 지나서 그렇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연단에 도열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새내기거나 이제 막 2년차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나는 마치 아스라이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공간에서 혼자 외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By 커피사유 2025-03-27 0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미도리를 불렀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민음사. 2024. p. 567. 조금 전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두 문장.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두 문장이 어쩌면 최근 나에게 벌어진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한 어떤 응어리를 요약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나오코와 나, Bill Evans와 Chet Baker

By 커피사유 2025-03-26 0

조금 전 《노르웨이의 숲》의 10장을 모두 읽은 뒤, 제11장으로 넘어가면서 첫 장을 읽은 직후에 내가 직감했던 바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제11장의 첫 마디가 나오코의 〈죽음〉을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10장까지만 하더라도 레이코 씨의 편지에서 ‘나오코는 빨리 회복되고 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급격한 반전이 아니라 할 수 없다. […]

상상력의 결여

By 커피사유 2025-03-24 0

조금 전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것처럼 새벽에 소설을 읽을 때면 문득 처음 내가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대학 새내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상상력의 결여’. 그 당시 나의 이러한 의사의 바탕에 깔린 문제 의식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던 (실제로도 극한을 향해 가고 있었기도 했다) 그 때의 나는 어느 사람을 보든, 어떤 텍스트를 보든, 아니면 어떤 문제를 보든 그 상황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

탐서일지 #21.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II

By 커피사유 2025-03-18 0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 《노르웨이의 숲》은 이 문장에 담긴 인간 존재의 근간에 자리한 두 개의 항에 주목한다. 〈죽음〉, 그리고 〈삶〉. 인간은 이 둘의 경계에 놓인 존재이기에 가운데 자리한 〈우물〉 옆에서 질문을 던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마침내는, “왜 인간은 자살하지 않는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