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일지 #22.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III
2025-03-30전례없는 시간, 전례없는 사유, 전례없는 회복. ― 철학적 사유가 〈죽음〉과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운 지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짚어본다. 나는 방금 막 〈우물〉에서 빠져나왔다. 불타고 있는 〈숲〉과 아침을 기다리는 〈초원〉 사이에 자리한, 모든 인간이 가진 그 〈우물〉로부터.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커피와 사유(思惟)가 있는 공간.
전례없는 시간, 전례없는 사유, 전례없는 회복. ― 철학적 사유가 〈죽음〉과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운 지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짚어본다. 나는 방금 막 〈우물〉에서 빠져나왔다. 불타고 있는 〈숲〉과 아침을 기다리는 〈초원〉 사이에 자리한, 모든 인간이 가진 그 〈우물〉로부터.
나는 그녀가 비 오는 날 아침에 노란 비옷을 입고 새장을 청소하고 모이 봉지를 나르는 정경을 떠올렸다. 반쯤 무너진 생일 케이크와 그날 밤 나의 셔츠를 적셨던 나오코의 눈물 감촉을 떠올렸다. 그렇다. 그날 밤도 비가 내렸다. 겨울에 그녀는 캐멀색 오버코트를 입고 내 곁을 걸었다. 그녀는 늘 머리핀을 꽂고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맑고 투명한 눈으로 늘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
“바깥은 정말 날씨가 좋아요.” 나는 둥근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가을인 데다 일요일이고 날씨도 좋고, 어디를 가도 사람으로 가득해요. 이런 날은 이렇게 방 안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게 제일 좋아요, 피곤하지도 않고. 복잡한 데 가 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공기도 안 좋고. 전 일요일에는 대체로 빨래를 해요. 아침에 빨아서 기숙사 옥상에서 말리고 저녁 전에 거둬서 착착 다림질을 해요. […]
“고독한 게 좋아?” 그녀는 턱을 괸 채 물었다. “혼자서 여행하고 혼자서 밥 먹고 강의도 혼자서 뚝 떨어져 앉아 듣는게 좋아?”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그녀는 선글라스 다리를 입에 물고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실망하는 게 싫을 뿐이야. […]
기즈키가 죽은 후 졸업할 때까지 열 달 남짓, 나는 주변 세계 속에서 내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한 여자애와 사이가 좋아져서 같이 자기도 했지만 결국 반년도 가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흡인력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도쿄의 사립대학을 선택해서 시험을 쳤고, 딱히 별다른 감흥도 없이 입학했다. 그녀는 내게 도쿄에 가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무작정 고베 거리를 떠나고 싶었다. […]
조금 전, 대략 6년 전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들을 톺아보러 올라온(또는, ‘끌려온’) 경남과학고등학교 학생들과 대면하고 왔다. 그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15분 남짓으로 길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설 수 있게 된 것에는 총 5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나는 알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씁쓸했다. 5 ~ 6년이 지나서 그렇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연단에 도열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새내기거나 이제 막 2년차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나는 마치 아스라이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공간에서 혼자 외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