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적 미
최근 영화 평론들을 쓰면서 느끼고 있는 점.
문학 · 예술 작품에 대한 내 평가 기준이 점차 ‘인간의 다면성’을 얼마나 잘 재현하는지로 수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두 가지 층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다양한 성격 · 가치관 · 배경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본다는 것이고, 둘째로 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등장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본다는 것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두 번째 해석이 나에게는 중요해 보인다. 언제나 나의 관심사를 끄는 것은 한 작품이 그려내는 인물의 초상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다. 사람이 흥미로운 것은 그가 속에 가진 여러 동인들 덕분이다. 둘 이상의 욕망들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서로 다른 것에 이끌려 갈등하기도 하고, 한때는 이런 것에 이끌렸다가 다른 때는 저런 것에 이끌리는 동물이다. 단 하나의 틀 ― 이를테면 도덕적으로 선한 인물, 영웅, 큰 어른, 구제불능의 악인 ― 은 그저 다채로운 움직임 중 어느 하나만을 포착한 부분에 불과할 뿐, 세계와 그 속에 처한 인간이라는 정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처사다.
인간은 세계의 의미를 스스로 직조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제각각 다른 답을 내어 놓고 제각각 다르게 죽음으로 향한다. 다채로운 차원을 넘어 어지러울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재구성한 세상이 충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이러한 현실을 포착하여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세우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악이 모호하고, 옳고 그름이 모호하며,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내리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그런 서사.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한데 엉켜붙어 난장판이 된 마당. 마침내 그 모든 것이 한데 얽혀 함께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최후. 나에게 있어 어떤 작품이 ‘좋은 예술’이라는 것은 이 초석 위에서 작품이 빛날 때에야 가능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