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자살 (증보)

2025-01-19 0 By 커피사유
12 · 3 비상계엄 선포의 요인(要人), 尹 대통령이 19일 새벽 구속되었다. | 2025. 1. 19. YTN Youtube 라이브 스크린샷.
19일 새벽 尹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했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일어났고, 참담하다…. | 2025. 1. 19. YTN Youtube 라이브 스크린샷.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치적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둘 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했으며 행정부의 권한이 심히 강력하다는 점이 첫째일 것이요, 둘째는 정치적 대립이 두 국가 모두 극단에 이르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공통점도 있다. 두 국가는 모두 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스스로 자살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 국가는 수년 전 헌법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제 원리를 철저하게 파괴한 대통령을 시민의 손으로 끌어내렸고, 다른 한 국가는 선거에 불복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사실상 내란까지 선동해 헌정기관을 공격하는 사태를 만든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민주질서를 공격한 정권을 합법적 절차에 따라 끌어내린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두 국가에서 모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그렇게 재집권한 자들이 지금까지의 사회가 만들어둔 합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모두 조롱하며, 극단적인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타협과 공론화의 장마저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 나아가 이제는 공동체 자체를, 우리 사회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1월 19일 새벽, 네번째 공통점도 가지게 되었다. 두 국가는 모두 극단적인 선동이나 타협 · 대화 없는 정치적 대립이 얼마나 사회에 위험할 수 있는지를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나는 2021년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을 전격적으로 습격한 폭동에 이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폭동의 처참한 현장을 본다. 두 국가 모두 시민에 의해 헌법기관이 공격당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끝을 모르고 강화된 믿음 위에서 사람들은 키치를 위해 이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 정도로 키치에 종속된 듯 하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우리 사회의 위기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목도하고 있다.

경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을 잘 보장해준다고’ 해서 우리가 오늘까지 지켜온 가치들을 포기하는 것은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가져다주는 교훈을 잊어버린 결과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70년대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을지언정, 수많은 사람들은 고문으로 억울히 죽거나 심히 다쳤고, 반대 의견을 외치는 사람은 입막음 당했다. 검열과 의사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 사회에서 단지 ‘이전보다 먹고 살기 좋아졌다’는 이유로 침묵하기를 선택한다면, 영원히 침묵해야 할 수도 있음을 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눈을 통해 다시 한 번 지각하게 된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국가가 무분별하게 제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퍼진 교묘한 정보들과 부르짖음들이 공동체를, 헌법 기관을 시민이 공격하는 폭동이 일어날 정도까지 허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누군가는 모든 것에서의 ‘자유’를 부르짖고, 그 ‘자유’라는 이름 아래에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자유’라는 기표가 그 본뜻에 합치되지 않는 기의를 위해 사용된다면, 특히 그것이 자본주의의 논리 하에서 돈벌이를 위한 거짓 정보 장사를 위해 사용된다면 이는 징벌적 손해배상 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최소한의 선을 지키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작금의 두 국가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나는 민주주의의 꽃 혹은 본고장이라고 불리던 두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그러나 나는 조롱과 웃음거리로 무장한 자들과, 선동의 결과 군은 물론이거니와 시민에 의한 헌법기관의 점거 폭동을 일으킨 자들과 동일하게, 상대를 악마화하고 추방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우(愚)를 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내 생각을 표현할 뿐이며, 최소한의 마지노선까지 인내하면서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생각을 듣고 비판할 것이다.

그들은 이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넘었다. 반복하건대 여전히 나는 상대를 악마화하고 추방의 대상으로 취급한 끝에 폭동을 일으킨 세력들과 동일한 실수를 범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들의 태도와는 정반대로, 나는 어느 때보다도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법률의 제정이,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체감하고 또한 되새긴다. 다음 선거 그리고 표결이, 정치 참여가 정말 무거운 한 표가 되리라는 것을, ‘길 위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나아갈지를 가르는 표가 되리라는 것을 절감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각하는, 그리고 정말로 현존하며 중대한 무게로 다가오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