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이야기가 있다
화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해보면 플라스틱들에,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다양한 변형으로 존재해서 딱히 관심조차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한 저 대량 생산의 산물들에 ‘소리’를 붙인 것은 정말 적절한 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플라스틱들과 그 중 하나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수많은 상상을 했다. 모형 자동차를 보면서는 그것을 타고 놀던 어린 아이, 그리고 그 어린 아이가 성장해감에 따라 점차 몸의 크기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창고 구석으로 몰린 끝에 버려졌을 운명을 생각했다. 귀퉁이가 깨진 흰색 플라스틱 테이블에서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 들어오는 음료와 과자들 앞에서 머리를 긁적였을 점주와 그 테이블 위에서 수많은 요깃거리를 먹어치웠을 어린 아이 둘이 딸린 가족부터 학생, 그리고 맥주 두 캔을 까며 오징어를 씹는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끽끽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공주 인형 포장지를 보고서는 어쩌면 어린이날이라는 사실에 들떴을 여자 아이를 이끌고 가는 어머니의 미소를, 그리고 두 사람이 마트의 한 켠에 전시되어 있는 인형을 보는 모습을, 그리고 작은 여자애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은 지혜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상상 속에 잠겨 있으면 ‘사물에 소리가 있다’는 문장은 점차 ‘사물에 이야기가 있다’라는 문장으로 바뀌는 듯했다.
이상은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일부이다. 생각보다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중간 결과물을 보니 최근 쓴 여러 글들 중에서 가장 괜찮은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떤 글이고 무엇이 배경인지는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 비밀로 둔다. 이번 주 안에는 완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