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키치(Kitsch)
이하의 내용은 2024. 9. 23. 서울대학교 교양 야구 경기에서 체험학습으로 관람한 SSG 대 두산 KBO 경기의 8회 초, 경기(그리고 사람들)에 싫증이 나서 잠깐 읽었던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의 제7장 4절을 읽다가 든 생각을 짧게 기록해둔 것임을 밝힙니다.
SSG가 지고 있다. 두산의 어웨이(Away) 팬들은 달아올랐다. 같은 구호에 맞춰 소리친다. 같은 박자로 박수를 친다. SSG 투수의 당연한1“Es muss sein!”은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당연한은 쓰일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1루 견제에 야유를 퍼붓는다.2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이란 LG 트윈스고, 그 응원의 이유도 광적인 팬이라기보다는 평소 보던 인터넷 방송의 방장이 응원하길래 재미삼아 같이 응원한 것의 관성일 뿐이라, SSG와 두산 둘 중 누가 이기고 지든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야구 팬들은 이러한 모습을 단결 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키치(Kitsch)를 본다. 재단(Cutting)하고, 야유하고, 환호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리를 두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응원은 감동적인 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상의 내용을 쓰면서 나는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떠올렸다. 이 대목을 읽은 뒤 휘갈겨둔 메모들도 주석의 형태로 그대로 옮겨둔다. 즉, 이하에 달린 주석은 전부 원주가 아니다.
그녀는 이것이 환상임을 잘 알았다. 이 매력적인 노인네들 집에서 체류하는 것은 잠정적으로 간이역에 머무르는 것에 불과했다. 늙은 신사는 중태이고 그의 부인은 홀몸이 되면 캐나다에 사는 아들 집에 갈 것이다. 사비나는 다시금 배신의 길로 들어선 것이며 이따금 그녀 가슴 깊은 데에서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는 환한 두 창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스꽝스럽고 감상적인 노래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3“영원한 것은 없다” ― 그러므로 존재는 바닥 속에 가라앉은 돌은 아니다. 존재는 치명적으로 가볍다. 그래서 급류에 휩쓸린다. 속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그녀는 이 노래에 감동하지만 자신의 감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 노래가 아름다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키치는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 잡는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4〈의미〉 갈구하기.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주석 및 참고문헌
- 1“Es muss sein!”은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당연한은 쓰일 수 없다.
- 2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이란 LG 트윈스고, 그 응원의 이유도 광적인 팬이라기보다는 평소 보던 인터넷 방송의 방장이 응원하길래 재미삼아 같이 응원한 것의 관성일 뿐이라, SSG와 두산 둘 중 누가 이기고 지든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 3“영원한 것은 없다” ― 그러므로 존재는 바닥 속에 가라앉은 돌은 아니다. 존재는 치명적으로 가볍다. 그래서 급류에 휩쓸린다.
- 4〈의미〉 갈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