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감(遠近感)의 왜곡상(歪曲狀)
때론 어떤 대상이나 사물, 나아가 어떤 추상적 실재는 멀리서 보는 경우와 가까이서 보는 경우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아주 멀리서 볼 때에는 어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이 막상 가까이에서 보았을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지방에서 볼 때는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모 대학들은 사실 올라와서 생활해보면 생각보다 낙후된 시설이 많기도 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구석도 많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것을 멀리서 보는 경우와 가까이서 보는 경우 다르게 보게 되는 것은 결국 이 원근감(遠近感)이라는 녀석 때문일 것이다. 이 이상한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치는 장난 중 하나는, 대상이 관찰자로부터 멀리에 있을 때에는 그것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어떠한 추측의 연쇄 과정을 통하여 대상의 실제가 아닌 스스로의 가정만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근감의 장난은 대부분 대상이 우리에게 가까운 거리에 도달한 경우 극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 가까운 거리에서는 우리가 가정을 고수하려고 해도 그 사물 혹은 대상의 실재(實在)하는 모습 자체가 그 가정이 틀린 것임을 아주 명백하게 증명해버리기 때문이다.
원근감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왜곡상(歪曲狀)은 결국 어떻게 보면 우리의 속단, 혹은 우리의 지나치게 많은 것을 상상하는 습관 혹은 능력에서 비롯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의 빠른 판단과 상상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 원근감의 왜곡상이라는 이 하나의 상의 형성 방법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왜곡된 상은 모두가 알다시피 실제의 상이 아니며, 그것은 우리의 가정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