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타협이 절실한 시기

2025-08-03 0 By 커피사유

집권 여당 당대표 선거에서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정청래 의원이 당선되었다. 그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고 당원이 가라는대로 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그의 입장은 당내 의사 반영이라는 원칙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하긴 하지만, 집권 여당의 당대표로서는 그의 여러 현안에 대한 입장과 인식을 두고 볼 때에는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문제 때문에 그가 말하는 ‘국민의 명령’과 ‘당원이 가라는대로’가 당내 민주주의 및 국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라기보다는 적대적 공생 관계의 유지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야당인 국민의힘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라며 “여야 개념이 아니다”고, 그들은 “민주주의 말살 · 헌법 파괴 세력”이므로 그들이 지난 12 · 3 비상계엄 등의 사건사고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 · 반성하지 않고 전직 대통령(이자 내란우두머리 피의자)을 비호하는 듯한 스탠스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아예 대화하거나 타협할 여지가 일체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지난 12월의 사건들에 크게 분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 국민의힘 및 윤석열의 뻔뻔한 태도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감에 기대고 있어 보인다. 나 또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두 번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장면들에 대해서 야당이 보이는 입장의 괴리감과 보신주의적 태도들에 상당한 실망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 개인이 그러한 감정을 품고 그들에게 응징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과 그 감정을 실제 정치에서 실현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파급력을 가진다. 민주주의란 불가피하게 제한된 시간 이내에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다수결을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각 집단의 의견을 대표하기 위한 대의제를 현실적으로 실시하게 되는 제도이지만, 다른 의견, 특히 그 의견이 아예 소수라 할지라도 이에 대한 배려와 인정이 없다면 이 다수결과 대의제라는 두 원칙에도 불구하고 퇴보하는 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 신임 대표는 “내란특검을 통해서 윤석열 내란수괴 피의자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에 내란 동조 세력과 내란 방조자, 협력자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당 대표로서 현명하게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고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답했다. 유보적 스탠스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그가 취해 온 강경 노선으로 미루어볼 때, 실질적으로 추후 야당에 대한 정당해산 청구를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다. 민주공화정의 기본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적대하는 야당도 집권 여당과 마찬가지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당이다. 여러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도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선출한 각 선거구와 전체 국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정치 결사체이다. 지난 총선에서 현 여당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 의사와 입장들을 대리하는 것이 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의원들 중 일부는 아예 비상계엄 자체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리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 의견들을 이용해 당내 권력을 획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다. 적지 않은 언론과 대중은 이러한 움직임을 소리 높여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여 그들을 일종의 ‘반체제세력’으로 낙인찍는 일은 이러한 비판들과는 별개로 지양되어야 한다. 그들이 수사를 통해 정당 전체가 조직적으로 비상계엄에서 표결 불참이나 전후 증거 인멸 등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은 비록 그 운영에서 여러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민주적으로 선거된 대의자들로 구성된 정당이라면 응당 그들이 대변하는 입장들이 국회 운영에서 반영될 수 있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 신임 대표의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 “민주주의 말살 · 헌법 파괴 세력”이라는 표현으로부터 과거 독재정권들의 모습을 겹쳐 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위협”을 이야기하면서 조봉암 선생을 제거하고 “북한과의 냉전 중”을 말하면서 야당이었던 진보당을 와해시킨 바가 있다. 비슷한 역사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져 군부 독재 정권은 “공산주의”와 “북한”을 외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것은 물론이요 야당 활동 자체를 탄압했다. 이러한 행동은 오늘날 반대 세력의 입을 막음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한 대단히 부적절한 시도들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당계는 제6공화국 성립 이후 늘 이러한 과거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는 보수정당계를 비판해온 바가 있다. 독재에 저항한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한 자부심이 있는 이들에게 있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뒤흔드는 것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언제나 민주당계와 진보 세력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집권 여당 대표가 “공산주의와의 전쟁” 대신 “내란과의 전쟁”을 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는 진보 세력의 도덕적 자부심의 근거가 되었던 바로 이 정신이 실종되었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수사를 통해 국민의힘 의원들 중 12 · 3 비상계엄 사태에서 국회의 계엄해제요구결의안 표결을 방해하거나, 계엄 선포 과정, 계엄군의 국회 진입 과정에 적극 동조한 의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수 의견이라도 대의하여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에 따라 이것이 정당 해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통해 사실을 규명하면 되고, 사실이 법리에 저촉된다면 기소와 판결이라는 사법 제도를 통해서 법적으로, 다음 선거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면 충분하다. 이미 주기적으로 선거제도를 통해 대의자들을 교체하는데도, 그 주기적 교체 제도가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 해산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불필요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수에 의한 소수 의견의 탄압이라는 역사적 실수를 되풀이할 상당한 위험이 있다. 아무리 극단적인 의견이라 하더라도, 또 상대의 태도와 입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도 들어보고 합리적인 비판이 있다면 수용하고, 또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몇 가지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타협하는 것이 바람직한 민주공화정의 기본 운영 원리이다. 국가의 안정성은 ‘반체제분자의 제거’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며, ‘갈등의 포용과 타협’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들에 동의하지 않는 정당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말살, 그리고 대한국민이 불의에 항거하여 만들어낸 대한민국 헌법을 파괴하는 세력이라고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 선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은 바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 이 문장들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대한 해석이다. 민주공화국의 기본 정신이 이러한 상호 존중과 대화 · 포용 · 타협 위에 서 있다고 한다면 선거에서 승리하여 다수 의석을 가졌으며, 상대의 결정적 실책으로 인해 정권을 획득한 한 정치적 결사가 상대를 무조건적 악으로 매도하면서 협치조차 거부하는 태도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치명적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정확히 그 태도가 현재의 집권 여당 대표가 비판하는 전직 대통령과 전 집권 여당의 문제였고, 대화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충돌이 이어진 결과 제6공화국 최초의 비상계엄이라는 헌정사적 중대사건으로 국회가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계엄 선포의 행위 자체는 분명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독재의 기도기는 했으나, 우리의 민주공화국에 뿌리내려야 할 기본 정신이 위태롭다는 관찰이 존재하는 이상 이 행위가 어느 한 진영이라던가 개인에게 전체적인 책임이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민주공화정”이라는 구호가 절실히 울려퍼질 때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그 구호가 아니고, 그 소리들이 뿌리내리는 정신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 · 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률과 불의에 항거한 4 · 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고 대한국민은 1987년 10월 29일 대한민국 헌법에 썼다. 기나긴 독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민주화를 쟁취해냈으며, 그 민주공화정을 두 번이나 직접 지켜냈다. 그러나 “불의에 항거”하는 위대한 불꽃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과 “정의 ·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는 저 두 문구가 지닌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입장이 다르더라도 대한국민은 모두가 대한국민이다. 포용과 타협이 절실한 오늘, 진정한 ‘국민의 명령’은 어디에 있으며 민주주의의 수호에 자부심을 느끼는 민주당계 정당의 ‘당원이 가라는대로’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이 의문을 항상 떠올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