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과학자에게 필요한 능력」
이하의 글은 강연준비록 #1과 강연준비록 #4에서 쓴 생각들을 종합 및 정리하여 다듬어 완성한 글임을 서두에 밝힙니다.
… 그러나 나는 문득 이러한 질문을 학생들 앞에서 강연하기에 앞서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가려고 하는 길이 명확히 어떤 길인지에 관한 인지나 나름의 가치관이 없이 이러한 길에 무턱대로 도전해서, 자신의 흥미와 반대되는 길을 걷느라고 고생한 사례들을 나는 주변인들로부터 많이 들어온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혹여 이러한 학생들이 사실은 자신의 흥미나 관심사를 자세히 모르는 채로 이러한 나의 강연을 듣고, 무작정 이공계열 쪽으로 진학을 결심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하므로 나는 우선 학생들 앞에서 먼저 그들이 관심있어하는 「과학」의 길이란 무엇인지 명확히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로 강좌 혹은 강연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학생 자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 그 본질이자 속성이므로, 그들에게 명확히 이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려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은 가능한 많은 주변인들에게 「과학」과 「과학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두 친구에게도 물어 보았지만 바쁜지 답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이자 지적 활동의 교류자이기도 한 포항공대의 한 선배께서 흔쾌히 내 부탁에 응해 주셨다. 아직 그 선배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모종의 참고할 수 있을만한 답안이 제공되는 것 같아서, 특히 물리학으로 정진하고 계시는 그 선배의 귀중한 답변이 제공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 나름대로의 정의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정의란 보통은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춘 주관적인 정의도 가능할 것이겠지만, 나는 어쨌거나 단어의 속성에 맞춘 정의를 채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우선 「과학」에 대한 정의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과학(科學)
「명사」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이른다.
이 정의가 지시하는 것은 「과학」이라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자연에 그 범위를 한정하는 체계적인 지식인 것이라는 것이다. 넓은 의미는 일반적인 용례상 우리가 사용하는 학문(學文)에 부합하는 것이며, 좁은 의미는 우리가 용례적으로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용어에 합치된다. 그러나 일상적 용어가 이 사전적 정의의 좁은 뜻에 한정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나는 이러한 뜻을 넓은 의미까지 확장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모든 학문이 그 탐구 과정에서 과학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이러한 차원의 설명까지 함께 진행하는 것이란 꽤 어려운 말이 될 것이므로, 그냥 간단한 수준에서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정의(Definition)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좁은 뜻의 과학을 풀어쓴 다음의 정의를 가져가기로 결심했다.
과학(科學)
자연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그런데 체계적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뜻인가? 체계적이라는 것은 기존의 지식에 기반하거나 혹은 자연에 대한 왜곡없는 관찰에 기원하며, 그 기반을 토대로 몇 가지 합리적인 방법들로 다음 지식들을 생성해내는 과학의 속성을 포함하고 있는 말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러한 과학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어떻게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에서 출발하여 다음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흔히 과학적 탐구 방법 중의 하나라고 알려진 가설-검증법이 나는 그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연역법의 일종이기도 한 이 방법의 과정을 나의 방식대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가설-검증법 (커피사유 ver.)
1. 자연 현상을 관찰한다. 그러한 관찰이 자신이 알고 있던 바나 경험에 모순되는 것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의문을 제기한다. 보통 의문은 왜? 혹은 어떻게? 라는 의문사가 선행되어 완성되는 문장으로 기술된다.
2. 의문에 대한 답을 예상한다.1(커피사유 주) 우리는 흔히 이 예상한 답을 「가설」이라고 부른다.
3. 예상한 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관찰 과정2(커피사유 주) 우리는 흔히 이것을 「실험」이라고 부른다.을 설계하고, 그것을 수행한다.
4. 관찰한 결과3(커피사유 주) 흔히 이것을 우리는 「실험 결과」라고 부른다.와 예상한 답4(커피사유 주) 다른 말로는 「가설」이라고 부른다.을 비교하여 예상한 답의 진위 여부를 가린다.
5. 예상한 답이 맞으면 그 결과를 확립하고,5(커피사유 주) 보통 이 과정을 「일반화」라고도 말하기도 하는데, 다만 약간 위험한 것이 일반화라는 것은 어떤 관찰 및 실험의 결과로부터 어떠한 학설이 이론으로 승격되는 과정을 말하므로,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적인 한 개의 실험만으로 일반화가 가능하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비슷한 실험들이 다양한 조건들에서 이루어져서 가설 혹은 이론을 시험하였을 때 그 가설 또는 이론이 그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경우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상을 변경하여 다시 확인한다.6(커피사유 주) 보통 이 과정을 「가설 수정 및 재검증」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는 의도적으로 일반적으로 이 가설-검증법을 기술할 때 사용되는 「가설」, 「실험」, 「문제 제기」 등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의문」, 「관찰」, 「예상」, 「답」이라는 용어들을 사용했음을 이제 밝혀야겠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적 탐구에 대한 보다 기본적인 속성, 나아가 탐구의 정의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설」, 「실험」, 「문제 제기」 등의 용어들은 궁극적으로는 내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용어들을 그냥 멋들어져 보이게 압축한 것에 불과할 뿐임을, 사실 기본적으로 모든 탐구 과정은 의문에 대하여 관찰과 예상을 통하여 답을 얻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말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다음에 올 마땅한 서순인 내가 생각하는 탐구의 정의를 정식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된다.
탐구(探究) (커피사유 ver.)
의문에 대하여 관찰과 예상을 통하여 답을 얻는 것, 혹은 그러한 과정
이상으로 과학의 방식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탐구(探究), 그 중에서도 특히 과학적 탐구 방법이라는 사실상 유일한 체계의 구축 방법과 과학 그 자체에 대하여 우리는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과학자」를 정의할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과학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바가 있었으므로, 그에 따라 「과학자」에 대한 다음의 정의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科學者)
자연의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을 구축하는 사람
그렇다면 이제 마침내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자에게는 어떠한 능력이 요구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우선 과학자, 그에게 주어진 임무란 체계적인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므로, 그는 당연히 과학의 체계성에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과학적 탐구 방법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과학적 탐구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과학자는 지식을 체계적인 형태로 구축할 수 없을 것이 당연해보인다. 왜냐하면, 과학에서 체계적인 형태의 지식을 구축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바로 과학적 탐구 방법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하므로 우선 과학자는 지식을 구축하는 방식인 과학적 탐구 방법에 익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과학자는 기존의 지식 혹은 경험을 잘 습득하고, 이를 연결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될 것이라 생각된다. 과학에서의 체계적 지식의 구축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지식이나 혹은 경험7(커피사유 주) 이 경험은 자연에 대한 자신의 과거 경험 혹은 관찰을 포함한다.에 기반하지 않은 생각의 산물은 보통은 상상력의 피조물이라 말할 수 있다. 과학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언어로 기술해야 하는 책무를 띠고 있기에, 이 과정에서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는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그의 사고란 과거의 경험과 관찰 결과, 지식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자는 끈기있는 태도, 즉 높은 과제집착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자연의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매우 엄중한 검증 절차와 실험, 그리고 수많은 실패8(커피사유 주) 다른 말로는, 「가설이 맞지 않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를 필연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탐구의 중단은 결국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진리와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는 과학자에게는 끈기있는 태도가 어울리는 덕목으로 채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상의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정의로부터 「과학자」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을 이제 다음과 같이 나열하여 우리의 논의를 종착점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능력
1. 과학적 탐구 방법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2. 기존의 지식 혹은 경험을 잘 습득하고, 이를 연결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3. 끈기있는 태도, 즉 높은 과제집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1] Douglas R. Hofstadter. (2007).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박여성, 안병서 역). 까치. (원서출판 1979).
[2] 국립국어원. (연도미상). 표준국어대사전 – 과학(科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398969&searchKeywordTo=3. Accessed on 2021. 7. 17.
주석 및 참고문헌
- 1(커피사유 주) 우리는 흔히 이 예상한 답을 「가설」이라고 부른다.
- 2(커피사유 주) 우리는 흔히 이것을 「실험」이라고 부른다.
- 3(커피사유 주) 흔히 이것을 우리는 「실험 결과」라고 부른다.
- 4(커피사유 주) 다른 말로는 「가설」이라고 부른다.
- 5(커피사유 주) 보통 이 과정을 「일반화」라고도 말하기도 하는데, 다만 약간 위험한 것이 일반화라는 것은 어떤 관찰 및 실험의 결과로부터 어떠한 학설이 이론으로 승격되는 과정을 말하므로,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적인 한 개의 실험만으로 일반화가 가능하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비슷한 실험들이 다양한 조건들에서 이루어져서 가설 혹은 이론을 시험하였을 때 그 가설 또는 이론이 그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경우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6(커피사유 주) 보통 이 과정을 「가설 수정 및 재검증」이라고 부른다.
- 7(커피사유 주) 이 경험은 자연에 대한 자신의 과거 경험 혹은 관찰을 포함한다.
- 8(커피사유 주) 다른 말로는, 「가설이 맞지 않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