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 ‘판단 중지’에 대한 사유
“한 개인이 그가 속한 공동체에게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바람직한 태도란 무엇일까?”
대학의 가을 학기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제시된 이 질문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심리학개론’을 들으면서 인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행동하는 방식과 그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을 살필 때에는 “인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현명하게 행동하는 방식은 무엇인가?”로, ‘서양철학의 이해’를 들으면서 규범윤리학과 메타윤리학의 개념을 조망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할 때에는 “공동체와 공존하는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로, 그리고 잠시 쉬어갈 적에는 “나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란?”의 형태로 이 질문은 그 형태를 다채롭게 바꾸어 갔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장소가 그러하듯,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보이게 된 더 넓은 세계와 미지의 영역이 떠오르면서 나는 그렇게 현명하지도 않으며 합리적이지도 않은 나의 이성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도달하기 위하여 보고 배워야 할, 고려해야 할 영역이란 단기간에 끝내기에는 너무 넓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 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 나에게 인지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올바르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가져다주는 것이 고통스러운 현실이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나는 결국 그나마 확실하다고 생각해오던 영역 속에서 과감히 뛰어내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광범위한 세계로 스스로의 사상을 경착륙시켰다.
결과는 혼란스럽다. 지성의 관조를 거치지 않은 광활한 미지의 영역 속에 지금 나 자신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순간마다, 나는 나 자신이 아는 것이란 사실상 없으며 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판단이란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인정과 그에 따라 오류를 피하기 위한 판단의 중지 밖에 없다는 것을 고통스럽게도 계속 떠올리게 된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아니, 사실은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원래부터 복잡했고, 나 자신은 그러한 복잡계 전체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인간이었던 것이었다. 스스로가 오만과 자만에 휩쓸려 진취는 곧 중대한 정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 왔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미지의 영역 가운데서 방황하며 천천히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세계를 한 인간의 지성으로 제대로 관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논평을 발표하는 수많은 이들과 대학을 거쳐간 수많은 지성과 그들의 사상은 복잡한 세계 속에서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원리와 법칙을 논하던데, 왜 나는 그것들을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가. 혜안(慧眼)을 왜 나는 가지지 못하고 있는가. 왜 나는 통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러한 회의는 나에게 르네 데카르트(Lene Decreats)가 그러했듯 무언가 하나의 결론을 가져다 준 듯 했다.
르네 데카르트는 그의 ‘방법적 회의’를 통해서 그 수많은 회의적 사고 중에서도 회의하고 사고하는 자신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일명 〈Cogito 명제〉를 도출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의 격에 해당하는 명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황과 회의 중에 하나의 명제를 도출한 것 같기는 하다. 그 명제란 바로 적어도 한 학기 동안 나 자신을 괴롭혀온 “한 개인이 그가 속한 공동체에게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바람직한 태도란 무엇일까?”에 관한 대답이기도 했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판단 중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잘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무지와 몰이해는 역사적으로도 오류를 낳았고, 오류는 그 자신을 계속 재창출하면서 공동체를 마비시켰다. 세상의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감정을 통하여 대처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싶다. 문제가 있을 때 그 근본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지성을 발휘하여 탐사하지 않은 채로, 그 문제에 대하여 자신이 드는 느낌과 직감대로 판단하기 시작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방황에서 비롯되는 고통보다도 더 참혹한 결론을 낳지 않을까. 광분에 휩싸인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세상은 단순한 틀로 이해될 수 없다. 세상은 복잡하다. 부족한 내가 겨우내 깨닫게 된,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개인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가. 질문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묻고 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수많은 복잡계 속에 위치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세상 전체를 관조하는 눈 하나 가지지 못한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앎과 새로운 시각, 논리를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나의 갈망은 아무래도 여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비단 이는 나 자신에만 국한되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