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민주공화국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예감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황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결국 장 의원이 제1야당의 대표로 최종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이틀 전 후보로 김문수 전 지사와 장동혁 의원이 최종 선출되었다는 비보 뒤에 말이다. 물론 적지 않은 언론사들이 예상하였듯 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를 8:2의 비율로 반영하여 선출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이 정당이 보여온 태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에서 결과가 크게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의 결과로 부정 선거론과 극우적 주장들이 제1야당의 당대표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세력을 획득했다는 심각한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체감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이미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어떤 방식으로 자멸했는지를 되짚어본 바 있다. 작년 12월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현직 대통령의 체포 저항, 서부지방법원 폭동, 아스팔트 극우주의자들의 시위와 탄핵 소추, 파면 선고와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불안정했던 독일 정국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자체 파멸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독일 나치당이 민주공화정인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어떻게 파시즘 정권을 수립했는지에 관한 기록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는 그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 대중주의와 영합하여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경우라는 바로 그 교훈 말이다. 정치적 혼란과 상대에 대한 몰이해가 겹친 시기의 끝, 극단주의가 활개쳤던 공화국의 결말은 체제의 자살이었다. “우리 편이면 모두 맞고 다른 편이면 모두 틀렸다”가 교리가 되어버린 사회의 결말은 음모론적 주장의 부상과 그 주장을 이끄는 인물이 스타가 되는 과정을 거쳐 결과적으로는 민중이 스스로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권력에 대한 견제 수단을 스스로 헌납하는 결과였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제3제국이 패망한 이후 다시 헌법을 설계할 때 독일의 정치학자 · 법학자들은 민주주의가 무너진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면서 위헌정당해산제와 선거에서의 봉쇄 조항 등을 마련했고, 이 헌법의 정신은 독일에서 유학한 우리 헌법학자들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오늘날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대표되게 되었다.
집권여당은 일찍이 제1야당의 정당해산을 주장해온 바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불법은 물론이거니와 위헌으로 명시한 비상계엄을 시도한 대통령을 옹호하고,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그를 도운 정황이 있는 정당은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민주공화정의 기본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정치에서 완전한 중립은 없고, 사람이란 결국 이권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므로 정당해산이 정말로 ‘민주공화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깔끔하게 잘라 결론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정당의 대표는 이제 “12 · 3 계엄은 반국가 세력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라는 시대적 명령”이라 선언했으며 사법부 공격을 선동한 혐의가 짙은 전광훈 목사 외 극우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고려한다면, 헌법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의도와 그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는 최소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을 청구할 충분한 명분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이러한 시도가 역으로 뮌헨 폭동이 히틀러에게 가져다 주었던 결과와 유사하게 위험해보이는 한 정당에 대해 되돌릴 수 없을 돌풍을 쥐어주는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경선 과정 중에서도 부정선거론과 야당에 대한 탄압을 주장하면서 지지층을 끌어모았는데, 기존 지도부보다 더 극단적인 인물이 지도부의 수장이 되었으니 앞으로의 구호가 더욱 극단으로 치우쳐 정쟁에서 아예 선동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것이다.
일찍이 나는 열린 사회의 적들에는 열린 방법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또한 극단주의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항하기보다는 그들을 이해하고 그 밑에 자리하는 원인들을 해결하는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쓴 바가 있음을 기억한다. 현 집권여당의 대표가 보인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러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도화선이 타들어가고 있는 폭탄을 눈앞에 두고서 폭탄의 내부를 분석하고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해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와 내가 사랑하는 다른 주변인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 나라가 파국적인 결말을 맞지 않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욕망 위에서 작금의 정국을 바라보는 나는 마치 끔찍할 정도로 출렁거리는 대양 위에서 항해하는 여객선을 탔을 때의 기분을 느낀다.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메스꺼움과 혼란스러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참담함 속에서 나는 여전히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