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d in the clowns, Sand in the clowns

2025-09-29 0 By 커피사유

조금 전 내일 임수연 기자와 함께하는 영화 〈조커〉 관련 독서 토론을 위해 권장되었던 두 편의 영화 〈조커〉 (2019)와 〈조커: 폴리 아 되〉 (2024)를 모두 봤다. 정확하게는 전자를 어제, 후자를 오늘 봤는데, 두 영화에 대해 내가 얻은 상반된 인상 혹은 평가가 스스로의 미적 지향점을 잘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기에 관련하여 짧게 부언해두기로 한다.1물론, 시간이 허락된다면 두 영화를 한데 묶어 비교하는 구체적인 평론을 쓸 생각이다. 미뤄두었던 〈레베카〉(1940)와 〈미키 17〉(2025)도 써야 하겠지만.


영화에 대한 나의 의견은 대중의 평론과 일치하는 것 같다. 즉, 〈조커〉(2019)는 상당히 인상깊으며 미적으로 탁월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조커: 폴리 아 되〉(2024)는 영화를 보다 중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을 정도로 미적으로 모욕적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후자의 영화가 전자의 영화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바를 배신했다는 이유는 통상의 평가가 꼽는 후자의 실패 이유와 적어도 표면적으로 동일하기는 하나, 여기서 ‘기대했던 바’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부언해두어야겠다.

〈조커: 폴리 아 되〉(2024)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관객이 마케팅 등으로 인해 기대했던 악당 ‘조커’의 센세이셔널하고 당당한 모습, 스스로가 파멸한다고 하더라도 ‘돈 조반니’가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그러하듯 화려하게 파멸하는 모습을 기대한 점이 배신당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러나 내가 배신당한 지점은 기대한 악의 화신적 이미지 대신에 소심한 아서의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점이 아니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영화가 해결되기 어려운 갈등 내지는 현실의 잔인한 모순을 억지로 끌어내리면서 교조적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는 점에 있다.

〈조커〉(2019) 영화를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보았을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지 못하지만, 근래에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를 읽으면서 사람들의 고립과 광기, 사회 · 경제 ·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진 나에게는 이 영화가 마치 사회적 신뢰 혹은 안전망이 무너진 공동체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해 제기하는 절박한 반론처럼 보였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이 영화가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었고, 실제로 모방 범죄로 보이는 사례들이 등장하긴 했으나 그 문제들 때문에 이 영화의 가치가 퇴색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폭력과 증오의 표현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오해와 공격성을 초래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고립감, 누군가가 나 자신이 처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외칠 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으면서 이들의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개인적 · 집단적 일탈이라고 일갈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평가다. 〈조커〉(2019) 연출의 폭력적 방식, 그 방식들에 대한 작품 내 사람들의 환호성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이들의 유일한 의사표현이자 그 표현으로 인해 ‘같은 목소리’ 속에 섞여들면서 연대감을 얻으려는 행위를 그린 것이다. 이들의 과격한 방식이 공동체의 평온한 분위기를 해하고, 그로 인하여 사람들의 불신이 도리어 더욱 증가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마땅하나, 이 지적에 치중한 나머지 드러나고 있는 문제 자체를 애써 무시하지는 않아야 한다.

잔인한 묘사가 등장하는 영화의 경우, 특히 그 영화의 등장인물의 서사가 설득력 있고 매력적으로 제시되는 경우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통념 상 ‘폭력’은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이며 인간적 타락의 증거로 여겨지곤 하니까. 문제가 있으면 평화적으로, 합법적으로, 국가와 사회가 용인하는 범주 내에서 의사를 타진해야 하지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의 표현은 야만적인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때문에 〈조커〉(2019)는 실제로 그러한 여론을 맞닥뜨려야 했고, 감독과 제작자들이 해명에 진땀을 흘렸다. 역풍을 겪은 당사자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들이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건드린 선택이 용기 있는, 특히 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에 정점을 매긴 선택이라고 믿는다. 영화가 선택하는 것은 “나는 우리 사회의 도덕 · 전통에 적대적이지 않습니다”라는 자기 변명, 혹은 적어도 그런 인상을 주기 위해 드러나는 갈등을 봉합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특히 그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가능한 서사와 감정선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식으로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부조리〉한 영화다. 사회적 갈등에서 어느 한 인물의 편을 들거나, 암시적으로 그가 옳다/틀리다를 전혀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영화 말미까지 폐기하지 않는다. 즉, 요컨대 〈조커〉(2019)는 그 어떠한 결론도 교조적으로 내리지 않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포착한 영화인 셈이다.

내가 〈조커: 폴리 아 되〉(2024)에서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지점이 다름아닌 바로 이 미적 기준의 실현이다. 〈조커〉(2019)와는 달리 〈조커: 폴리 아 되〉(2024)는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영화의 인물적 깊이, 서사의 탄탄함이나 몰입성, 마침내는 미적인 구조까지 모조리 주저앉아버린다. 문제 제기에 충실했던,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아니하고 감상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처한 구조적 문제를 불편하게 환기시켰던 영화가 마치 전작이 나온 뒤 터져나왔던 비판들에 굴복한 모양새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중간에 뚝뚝 전형적인 미국 가족 예술 문화라 할 뮤지컬 풍 삽입곡들에 의해 끊어져버리고 있고, 마침내는 원래 주목했던 바인 경제적 · 정치적 불평등으로 인해 고조되고 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그 분노는 사실 환상을 연료로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며, 이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나는 영화에서 아서의 재판 장면을 보면서 카뮈의 〈이방인〉의 2부 재판 장면을 떠올렸고, 아서가 마침내 분노하는 모습으로부터 자신이 사형대로 끌려가는 날 모두가 모여들어 분노의 함성을 외쳐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회상했지만 영화가 선택하는 것은 사형대 앞에서 쭈그러든 뫼르소, 즉 그가 사형대 앞까지 도달하기까지 거친 서사를 이해할 의사가 없거나 조야하게만 이해한 사람들이 손쉽게 그는 ‘미친 놈’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에 대해 그려내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다. 즉, 〈조커: 폴리 아 되〉(2024)는 작품 내의 재판에서 최후에 검사의 편을 들어버림에 따라 〈조커〉(2019)가 대리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탄압해버렸다. 속편이 전편을 완벽하게 배신한 것이며, 말미에 동료 재소자가 주인공을 찔러버리듯 속편이 전편을 살해해버린 것이다.

… 솔직히 〈조커〉와 〈조커: 폴리 아 되〉를 보기 위해 쓰지도 않던 OTT 서비스에 가입하고, 가입만으로 충분하지도 않아서 대략 2만원 정도 주고 각 작품의 이용권을 개별구매해야 했던 나로서는 솔직히 조금 열받는다. 보다 최신 영화인 속편의 가격이 2배 이상 더 비쌌다는 점을 곱씹어보면 더욱이. 내일 기자의 강연에서 어떤 점들이 짚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나에게 영화를 어떻게 봤냐는 질문이 들어오거든 두 영화의 비교로부터 〈조커〉는 땅에 남아 단단히 서 있는 반면, 〈조커: 폴리 아 되〉는 공중에 떠서 그저 나풀거리고 있다는 극단적으로 다른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2〈조커〉에서 테마처럼 등장하는 곡 중 하나인 ‘Send in the Clowns’의 가사 첫 연은 다음과 같다: “Isn’t it rich? / Are we a pair? / Me here at last on the ground / You in mid-air / Send in the clowns”

주석 및 참고문헌

  • 1
    물론, 시간이 허락된다면 두 영화를 한데 묶어 비교하는 구체적인 평론을 쓸 생각이다. 미뤄두었던 〈레베카〉(1940)와 〈미키 17〉(2025)도 써야 하겠지만.
  • 2
    〈조커〉에서 테마처럼 등장하는 곡 중 하나인 ‘Send in the Clowns’의 가사 첫 연은 다음과 같다: “Isn’t it rich? / Are we a pair? / Me here at last on the ground / You in mid-air / Send in the clow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