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Agaist a Black Dog”
영국을 제2차 세계 대전 속에서 훌륭하게 구해낸 윈스턴 처칠 수상은 〈검은 개(Black Dog)〉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던 검은 개 때문에 평생 다리나 발코니 근처에는 가지 않았고, 그림을 그리면서 검은 개로부터 벗어나고자 유난히 애를 썼다. 검은 개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그의 노력은 전쟁 상황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과대팽창한 자신감과 어조, 당당한 행위를 가능하게 했고 멋지게 영국을 승전국의 위치로 이끌었다.
그러나 처칠 수상은 가능한 한 검은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마 그는 검은 개가 어서 자신의 곁을 떠나가거나 죽기를 바랬을 것이다. 검은 개는 다름 아닌 그가 평생 동안에 시달린 우울증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다리나 발코니 근처로 평생 가지 않은 이유는 이 〈검은 개〉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뛰어내릴까봐였던 것이다.
나도 〈검은 개〉가 대학 이후의 나 자신 주변을 맴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개는 끈질겨서 나 자신을 지칠 줄도 모르고 따라온다. 책을 열고 닫는 매 순간, 강의를 듣는 매 순간순간마다 마주하는 무지가 그 개의 훌륭한 먹이이다. 개는 너무 배불리 먹었는지 이제 덩치가 조금씩 커져, 나의 정신이 감당하기 아득한 크기가 되려고 한다.
나는 처칠 수상이 평생 동안 〈검은 개〉와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검은 개로부터 벗어나려 한 그의 모습과 그의 모습이 가져다준 결과를 기억해야 한다. 〈검은 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벗어나지 못하고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그 〈검은 개〉에게서 얻을 교훈이, 그와 함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이 있지 않을까.
〈검은 개〉를 대면하면서도 내가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