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수월 #3. 《OMORI》, 제2주차 ‘사흘 전’ 모임 질문지

경화수월 #3. 《OMORI》, 제2주차 ‘사흘 전’ 모임 질문지

2025-02-18 0 By 커피사유

경화수월(頃話輸越)은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게임 · 뮤지컬 등 종합 예술 작품이나 심도 깊은 텍스트들을 체험한 뒤, 잠시의 말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그 너머의 것’들을 실어 나르는 장으로써 마련된 시리즈입니다.



여는 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 제20장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 (전략) … 자신을 추적 관찰하지 않고, 그 결과 자신의 행마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는 표준 체스 프로그램과 달리, 이 로봇 프로그램은 자신을 추적 관찰하며 자신이 가진 생각들에 대한 생각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로봇 프로그램이 자신의 과정을 완전히 속속들이 추적 관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일종의 직관적인 감각은 있다. 이처럼 자기-지식과 자기-무지 사이의 균형으로부터 자유의지라는 느낌이 나온다.

예를 들면, 어떤 작가가 자신의 마음속 이미지에 포함된 어떤 관념들을 전해주려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작가는 그 이미지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명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방식으로, 다음에는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며 이리저리 실험해보고는 최종적으로 어떤 설명 방법을 정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가? 어렴풋이만 알 것이다. 그 근원의 상당 부분은 마치 물 밑에 깊이 숨겨져 보이지 않는 빙산과 같다. 그리고 작가도 그 점을 안다. … (후략)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박여성 · 안병서 공역, 까치, 2013. p. 986.

호프스태터의 말에서 핵심은 단연컨대 우리가 인간 존재를 규명하는데 있어 가장 불가사의적이라 생각하는 ‘자유의지’가 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앎’과 ‘알지 못함’ 사이의 미묘한 균형 사이에서 발생할지도 모르겠다는 그 직감이다. 인간의 본연에 대해 제기된 이 가설은 참신하기는 하지만, 인류사에서 최초로 제시된 관점은 아니다. 정신분석학은, 특히 프로이트와 라캉은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즉 자신이 들고 있는 기호들로써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부분, ‘무의식’의 중요성을 일찍이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점 제기로 인해 인문학과 철학은 이성과 합리, 즉 ‘의식’이라 불리는 일종의 형식 체계로 포착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한 부분에서 무의식으로 그 초점을 옮겨갔으며 결과적으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 즉 언어를 비롯한 일체의 기호들의 배열과 상호 관계의 명시만으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것들로 그 관심이 전이된 것은 근 · 현대의 철학뿐만이 아니다. 예술 또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전달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파블로 피카소 이래로 미술은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더라도 다면적인 모습을 동시에 담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는 인식 아래에서 르네상스 시대 이후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실주의 전통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표현하는 관습에서 탈피했으며,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은 하나의 세계와 같이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모토 아래에서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들마저 모두 하나로 포용하는 정신을 전달하고자 했고 그 여운을 음악사에 깊숙히 남겼다. 인간이 스스로가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에 닿고자 함에 따라, 철학과 예술은 모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심오한 깊이를 가지게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 잔흔이 역시 마찬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 내부의 무언가를 건드리며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것을 느낀다.

만약 게임이 근대 이후의 이러한 철학과 예술의 변천사 속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게임으로부터도 예술 작품을 볼 때와 마찬가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 있는 요소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의 그 쾌감이 미적 쾌감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게임의 깊이가 지금까지 우리의 가장 심연에 도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예술의 깊이에 비해 너무나도 얕은 것 같다는 지적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하나의 반례로서 《OMORI》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작은 창 안에 재현된 한 인간 정신의 세계, 그 세계의 위와 아래를 오르내리면서 수많은 표상과 상호작용하게 되는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어쩌면 기성 예술이 제공하던 것보다도 더 깊고 심오한 곳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서두에 언급한 호프스태터의 글귀 귀퉁이에 나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어두었다. 나는 이러한 결론이 게임, 예술 그리고 인간 정신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든 이가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문장일 것이라 믿는다.

인간은 영원히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사실이 그를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시니피앙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결부시키는 시니피에이기도 하다.


Stand-by Playlist


제2주차 ‘사흘 전’ – ‘사흘 전’ 질문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우는 여인(Femme en pleurs)〉 (1937)

1. 독서노트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질문들

제2주차 모임에서는 아래의 질문들 외에도, 사전에 각 구성원에게 할당된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의 초대》의 쪽들에 대한 A4 ½장 이상, 1장 이하의 요약을 포함해야 합니다.

이하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간략히 답변하셔도 무방합니다.

부문 I.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의 초대》 관련
  • 자신이 요약한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 혹은 문장을 고르시오. 왜 그 대목 또는 문장이 가장 인상이 깊었는가? 관련해서 연상한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이나, 목격한 현실 · 구체적 사물이 있는가?
  •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 정신에서 ‘나’ 스스로가 인지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보며, 이를 ‘무의식’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아직 꼼꼼히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수준에서 답변해보라. 왜 ‘무의식’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부문 II. 《OMORI》 관련 ‘정기’ 질문들
  • ‘3일 전’ 파트까지의 경험 중에서, 《OMORI》에서 가장 흥미로웠거나, 인상 깊었거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연출 · 대사 · 묘사는 무엇이었는가?
  • ‘3일 전’ 파트까지의 내용을 토대로 할 때, 주요 등장인물에는 누가 있는가? 각각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나? 다른 등장인물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 같나? 주요 등장인물들에 각각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보라.
  • ‘3일 전’ 파트까지의 내용 중에서, 뭔가 미심쩍거나 ‘문 뒤에 더 큰 것’이 있을 법한 것들, 즉 의미가 있을 법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었나?

2. 생각해보는 것이 권장되는 질문들

이하의 질문들은 독서노트에 선택적으로 포함하시기 바랍니다.

  • (이 부분에 대한 인터넷 검색은 예외적으로 허용함) 이 질문지의 맨 위에 실린 파블로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 이 그림은 ‘입체주의’ 사조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입체주의’란 무엇인가?
  •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프로이트가 인간 정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라. 왜 이 질문지의 맨 위에는 저 그림,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 실렸을까?

3. 심연을 향하는 민감한 질문들

이하의 질문들은 독서노트에 포함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혼자서 주의깊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 “나는 누구인가?”
  • (상당히 난해한 질문일 수 있음) ‘아래’와 ‘위’는 어떤 개념들인가? ‘무엇이 무엇 아래에 있다는 것’, ‘무엇이 무엇 위에 있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현실에서 사용하는 용례들을 모두 검토해보라. ‘위’, ‘아래’는 실제 사물의 위치 관계에 대해서만 쓰는 명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래’, ‘위’와 연결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구조란 말인가?
  •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연’은 무엇을 뜻할 수 있는가?
  •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는 그렇다면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가?
  • 그렇다면, ‘나’의 ‘심연’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그것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가?

제2주차 ‘사흘 전’ – ‘하루 전’ 질문지

Vaundy, 〈융해sink(融解sink)〉 (2021)

Vaundy, 〈融解sink〉 가사의 일부

ほらほら深海に溶けていく sink [이거 봐 심해에 녹아드는 sink]
悲しみが消えるこの夢の中で [슬픔이 사라지는 이 꿈속에서]
今も あぁ 探して歌ってるんだ [지금도 아ㅡ아 찾아가며 노래하고 있어]
悲しみが増えるこの日々の中で [슬픔이 늘어나는 날들 속에서]
今も あぁ 探して歌ってるんだ [지금도 아ㅡ아 찾아가며 노래하고 있어]


1. 독서노트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질문들

제2주차 모임에서는 아래의 질문들 외에도, 사전에 각 구성원에게 할당된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의 초대》의 쪽들에 대한 A4 ½장 이상, 1장 이하의 요약을 포함해야 합니다.

이하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부문 III. 《OMORI》 관련 ‘특수’ 질문들
  • ‘서장’, 꿈속 세계에서 만났던 ‘우주 남자친구(Space Boyfriend)’는 어디에서 왔는가?
  • 상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재고해보라. ‘꿈속 세계’에서의 수많은 사물들 · 등장인물들은 분명히 ‘현실 세계’에서 그 실제를 가져와 압축 · 전치 · 변형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어 보인다. ‘꿈속 세계’의 사물들 · 등장인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상을 하나 고르라. 그 대상은 ‘현실 세계’와 ‘꿈속 세계’에서 어떻게 달리 표현되고 있는가?
  • (이 부분에 대한 인터넷 검색은 예외적으로 허용함) ‘해오라비난초’의 꽃말은 무엇인가? ‘해오라비난초’는 또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 《OMORI》의 ‘서장’과 이번에 진행한 ‘3일 전’ 장에서 ‘어디를 돌아다녔는가’를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별세계(Otherworld)’의 여러 장소들에서, ‘서장’은 주로 어느 장소들을 돌아다녔는가? ‘3일 전’ 장은 주로 어느 장소들을 돌아다녔는가? 그 장소들의 위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 ‘3일 전’ 장의 중간 보스인 ‘스위트하트’전을 끝마친 직후 주인공은 무대에 생긴 ‘검은 구멍’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구멍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어떤 이야기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가? … 애초에, 왜 그것들이 ‘구멍 저 아래’에 있었나?

2. 생각해보는 것이 권장되는 질문들

이하의 질문들은 독서노트에 선택적으로 포함하시기 바랍니다.

  • (이 부분에 대한 인터넷 검색은 예외적으로 허용함) 이 질문지의 맨 위에 실린 Vaundy의  〈融解sink〉의 가사를 찾아보라. 왜 이 음악이 질문지에 실렸는지 알겠는가?
  • 앞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OMORI》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라. 왜 하필 딱 저 부분의 가사만이 질문지에 발췌되었는지 알겠는가?

3. 심연을 향하는 민감한 질문들

이하의 질문들은 독서노트에 포함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혼자서 주의깊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깊은 물’을 들여다본다고 상상해보라. 동양권에서는 이처럼 너무 깊어서 반대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검은 것을 ‘검을 현(玄)’자를 사용해 표상해왔다. 이를 이용한 용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가 철학의 ‘현덕(玄德)’이다. ‘검을 현’의 의미가 이상과 같으므로, ‘현덕’은 ‘너무 깊어서 반대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물거리는 덕’을 일컫는다고 할 것이다. … 왜 내가 여기서 《OMORI》와 함께 도가의 ‘현덕’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겠는가?
  • ‘서장’과 ‘3일 전’ 장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고소공포증 그리고 거미공포증에 대한 극복을 목도하게 된다. 특정 상황이나 사물에 대해 공포를 맞닥뜨리는 경험, 경우에 따라 그것에 시달리거나 결국 극복해내는/극복해내지 못하는 경험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대상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과 결별했는가? 아니면 그것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가?
  • 방금 나는 당신에게 삶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대상을 물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 중 하나는 개인은 결코 그 외부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위험한 유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물리학적 지식에 기초해볼 때 이는 임의의 사물로도 확장 가능할 것이다. 즉, 세계의 어떤 사물이든 그 사물은 외부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당신이 답한 삶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바로 그 대상은 분명 어떤 외부 속에, 즉 어떤 상황이나 맥락 속에 있었을 것이다. 떠올리기 싫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묻는다. 시간을 되돌려 그 당시로 돌아가라. 당신이 지금까지 가장 두려워한 대상을 다시 한 번 마주해보라. … ‘써니’와 당신을 비교해보라. 당신은 ‘무언가’와 결별했는가, 아니면 그것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