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함영 #1. SNUPO 제62회 정기연주회
우유함영(優遊涵泳)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예술과 감성을 언어와 이성으로, 예술을 철학적으로 음미하려는 시도들을 모은 공간입니다.
서론
2024. 2. 29.
안양아트센터 관악홀
2024학년도 1학기의 개강이 목전이었던 나는 ‘개강을 위한 필수 절차’와 다름없게 된 4년 묵은 〈관습〉에 따라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Seoul National University Philharmonic Orchestra; 이하 SNUPO)의 제62회 정기연주회에 갔다.
매 학기가 시작하기 전마다, 그러니까 1년에 2회 열리는 SNUPO의 정기연주회는 이전까지는 서울대학교 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리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서울대학교 입학식 등으로 혼잡했거나 다른 행사가 있는 모양인지, 경기도의 안양아트센터 관악홀에서 연주회가 열렸다. 덕분에 1시간 30분 전에 연구실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제대로 해맨 덕에 거의 딱 맞게, 즉 ‘문이 닫히기 직전’에 도착했고, 따라서 저녁을 늦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1호선의 급행이 2개의 다른 지선으로 나누어져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눈 앞에 당장 도착한 열차를 탄 덕에 인천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생, 그리고 늦게 대충 먹게 된 저녁에도 불구하고 나는 클래식에 대한 모종의 호기심 또는 열정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인지 후회는 전혀 들지도 않았다.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은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필하모닉 연주를 듣게 되었던 2021학년도 2학기 이래로 꺼질 줄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지난 학기에 언어로 완전하게 포착하기는 어려운 듯 했던 음악을 포함한 〈예술〉 일반에 대해 로고스(Logos)적인 사고와 형식으로서 어떻게 설명하는지 대략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철학으로 예술 보기〉 강좌를 수강한데 이어, 이번 학기에는 각 장르의 특징 · 역사 그리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확인함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관점과 맥락에서 각각의 음악 작품들을 듣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방향을 잡고자 〈음악과 사회〉 강좌를 듣기로 했으니 말이다. 교양 학점은 사실 졸업 기준에 맞게끔 다 채운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양 강의들, 나의 전공과의 관련성이 (얼핏 보기에는) 높지 않은 대학의 강의들을 듣는 것에는 사실 이러한 개인적인 배경이 있는 셈이다.
이번 연주회에 대한 나의 감상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아마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를,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해준 연주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처음 장르 입문의 계기가 되었던 지휘자 ‘이승혁’만큼의 통일성 있고 설명감 있던 악곡 선택과 해석이 제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팜플렛에 제공되어 있는 정보와 나의 감흥, 악곡의 선율과 리듬을 따라가는 그 순간마다 내가 느꼈던 바를 모두 종합할 때 그러했다.
그러고 보면 클래식 음악을 꽤 오래 들어왔지만 나는 왜 내가 이 음악을 좋아하는지, 왜 계속 찾게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단지 귀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이고, 또 각각의 음색이 부드럽게 잘 어우러지는 특징 때문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연주회의 곡들이 방아쇠가 되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마단조를 1악장을 듣다가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고, 그 가설은 브람스의 교향곡 2번 라장조 1, 2, 4악장을 들으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내 마음의 상태를 섬세하고 풍부하게 대변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것이 이번 연주회에서 내가 찾은 “왜 내가 고전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인 듯하다. 보통 음악에서 연주란 독주, 즉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하나 이상의 악기가 개개의 선율을 연주하되 다른 악기의 선율과 상호작용하는데, 다른 음악과 달리 클래식 음악에서 강조되는 것은 각각의 악기의 Unity (통일성 또는 합일적, 합목적성 정도로 표현해볼 수 있겠지만 이들 중 어느 단어도 내가 떠올린 의미를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므로 그냥 Unity 라고 표현하겠다) 와 섬세함이 거의 확실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협주는 클래식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사가 있는 발라드, 팝 음악, 헤비메탈과 락에서도 드럼, 기타, 피아노 등 하나 이상의 악기들이 선율들을 동시에 연주한다. 그러나 발라드, 팝 음악, 헤비메탈, 락은 표현하는 분명한 감정들이 곡 전체에 걸쳐 단 하나, 둘 또는 셋으로 묻어나온다.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들으면 실연의 슬픔이, Queen의 〈Bohemian Rhapsody〉를 들으면 약간의 원망스러움, 신남 등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들 장르 중 어느 것도 인간의 마음 상태를 거의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 둘 또는 셋의 감정들 혹은 인상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욕구와 당위, 세계관과 가치관이 뒤섞인 가운데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포착한 고전 음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클래식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섬세하게, 가장 자세하게 그리고 복잡하게 표현한다. 감정의 일부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감정, 사람 그 자체를 거의 온전하게 드러내는 데 가장 근접해 있는 음악 장르라는 것이다. 가사가 있거나 없는 경우 모두 나는 지금까지 클래식을 들을 때 각 악기의 선율과 연주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왔다. 예컨대 이 악장에서 첼로는 작곡가의 독백, 피콜로는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 심벌즈는 밖에서 울리는 천둥 소리와 운명의 명령을 표현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둘 이상의 악기들이 소리를 주고 받거나 소리들이 대립되며 절정으로 곡이 치달을 때면 그 갈등에 나를 대입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첼로의 독주란 홀로 섬, 무서움, 고집과 독선을 뜻한다고 생각하고, 저기서 나머지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첼로의 독주를 받아주니 혼자서 나가는 첼로를 설득하려는 마음의 다른 한 켠 목소리들이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그러나 지휘자나 연주 극단이 팜플렛을 통해 이야기하는 이 부분의 선율은 어떤 분위기이며, 무엇을 표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내가 느꼈던 바와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클래식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감상자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는지 그것까지가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낼 수 있는 것. 즉 같은 선율을 들으면서도 누군가는 슬픔을 찾아내고 누군가는 기쁨을 찾아내며, 누군가는 복잡한 독백과 토로를 찾아낼 수 있는 것. 그것이 가능한 장르가 다름 아닌 클래식이 아닐까? 즉 이 복잡한 대입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고전 음악 특유의 복잡하고 섬세하지만 Unity 를 잃지 않는 양식과 분위기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즉 클래식이 가진 특징들이 그 음악에 나 자신을 이입할 수 있게 하는데 가장 탁월했기 때문에 나는 클래식의 매력에 빠지게 된 듯하다. 모든 악기들이 폭발하는 듯 긴장을 고조시키는 합일을 동시에 이루면서도, 하나의 악기는 비행하는 듯 올라가고 다른 하나의 악기는 추락하는 듯 내려가는 제각각의 거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면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고전 음악이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서양 음악의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을 관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클래식만큼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건드릴 수 있는 다른 음악이 존재할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삶을 더 살아나가면서 확인해야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나의 대답은 〈아니〉인 듯 하다.
연주된 곡들
이번 연주회에서 연주된 곡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C. M. v. Weber, Oberon Overture, J. 306.
- A. Dvorak, Cello Concerto in B minor, Op. 104.
- J. Brahms,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이르는 말
이하에서 나는 작품 각각에 대해, 곡을 들으면서 내가 느꼈던 바를 즉시 휘갈겨 둔 것을 정리하여 옮긴 내용과 함께 SNUPO에서 팜플렛으로 제공해준 악곡의 설명을 하나씩 제시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팜플렛에 적힌 내용에 대한 저작권은 SNUPO(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있다.
C. M. v. Weber, Oberon Overture, J. 306.
들으면서 휘갈겨 써 놓은 것들
- 느리다가 급박해지면서 서로 주고받음.
- 알레그로 부분으로 인간 세상의 기사 ‘후온’이 제시됨.
- 아리아처럼 여주인공이 울부짖는 2개의 장면. 이 중 뒤쪽 장면은 사랑을 맹새하는 아리아임.
- 말미 부분의 경우, 빠른 즉 알레그로로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인간 세상의 기사 ‘후온’과 바그다드의 딸 ‘레이자’가 합창하면서 동시에 조화를 이루고 있음. 이와 병렬적으로, 느린 즉 아다지오로 진행되는 부분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왕비 ‘티타니아’의 동시에 조화를 이룸.
팜플렛의 작품 해설
〈오베론〉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한 여름밤의 꿈' 속에 등장하는 요정 나라의 왕을 소재로 한 독일 시인 크리스토프의 서사시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오페라의 대본은 영국의 한 대본가를 통해 각색이 되었다. 오늘날 〈오베론〉이 공연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서곡은 널리 사랑받고 있다. 〈오베론〉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그의 왕비 '티타니아'의 부부싸움으로 시작된다. 큰 싸움 끝에 서로 부부임을 인정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를 발견하면 서로 화해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속으로는 빨리 화해를 하고 싶어서 오베론에게 시종은 인간 세상의 기사 '후온'을 소개한다. 그리고 오베론은 후온과 바그다드의 딸 '레이자'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꿈속에서 서로의 환영을 보여주었다. 결국 사랑에 빠진 후온과 레이자에게 오베론은 여러 시험을 하게 되지만 둘은 서로의 사랑이 아닌 이상 죽음을 택하겠다고 선택을 한다. 이에 오베론이 나타나 후온과 레이자를 구해두게 되고 오베론은 왕비 티타니아와 화해를 하게 되며 네 사람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서곡은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이지만 오페라의 주요 멜로디를 소재로 사용하여 오페라 내용을 암시하였으며 교향시적인 서곡을 작곡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풍부한 선율과 베버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다지오 부분의 호른의 뿔피리 묘사와 현악기의 메아리가 요정세계를 암시하며 알레그로 부분의 강렬하고 리드미컬한 관악기와 현악기의 선율은 인간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A. Dvorak, Cello Concerto in B minor, Op. 104.
들으면서 휘갈겨 써 놓은 것들
공통
- 드보르작의 내면 상태를 표현. 미국에 체류하면서 고향이 그립기도 하고, 자기보다 먼저 떠난 여인을 추모하며 슬퍼하기도 하고, 또 미국의 색채와 풍토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하고…….
- 오케스트라는 공통의 Unity(합일성? 통일성?)를 여러 악기들이 동시에 표현한다. 마음에도 여러 측면, 목소리들이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에 관현악보다 더 적당한 것은 없다.
- 의문은 항상 이것: “대립하는 것(혹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Unity를 획득 가능한지?” ― 혼합, 화해, 병렬의 시도가 여기에 있음.
1악장 Allegro
- 대학 학기 시작의 Highlight.
- 미국에서 고향 생각이 나는. 그러나 첼로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미묘한 긴장이 마음에서의 갈등 · 긴장을 표시함 (?)
- 과연 Unity를 획득할 수 있는가? 드보르작: 미국에서의 경험 · 인상 vs. 그리움; 나: 대학의 운명 · 호기심이 추동하는 진취에로의 목소리 vs. 외로움 · 비명 · 놀고 싶음 · 지친 일상 벗어나기.
2악장 Adagio ma non troppo
- 마치 여인과 함께 살던 고향의 정경.
- 첼로: 드보르작이 겹쳐 보임. 독백.
- 제1주제에서 들어오는 높은 피콜로(?)는 여인을 뜻할 것.
- 제2주제는 갑자기 들어오는데, 고향을 생각하다가 “아, 당신은 떠났지.” 하며 무덤 앞에서 혼자 연주하나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한 연주가 되는 느낌.
3악장 Finale, Allegro moderato
- 놀라움, 혼합, 폭발적으로 뒤섞이는 선율이나 깊이가 아주 깊음.
- 솔직히 흑인 영자풍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슬라브 향은 물씬 풍김.
- 미국의 정경, 설렘, 고향의 향수가 한데 섞인 듯함.
팜플렛의 작품 해설
1894년 가을, 드보르작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될 첼로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한 다양한 악기들을 위한 협주곡들을 작곡했고 그 모든 경험이 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느낀 강렬한 체험에서 출발했다. 그때 빅터 허버트라는 작곡가의 첼로 협주곡 2번을 처음 듣게 된 드보르작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드문 편성인 세 대의 트롬본을 사용한 점이 드보르작이 받은 감동을 증명하고 있다. 작곡가의 미국 체류 경험은 이 첼로 협주곡에 새로운 영감을 제시했으며, 미국의 아메리칸 문화가 체코의 슬라브 문화와 만나서 의미 있는 형식을 이끌어냈다. 이 작품에 대한 브람스의 반응은 잘 알려져 있다. "누군가와 이와 같은 첼로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벌써 오래 전에 이와 같은 작품을 썼을 것이다." 그만큼 드보르작의 이 작품은 19세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첼로 협주곡이다. 1악장 Allegro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이며 서주 없이 제1주제가 현악과 함께, 클라리넷이 주도한다. 이 주제는 흑인 음악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그 선율을 고스란히 사용한 것은 아니다. 드보르작은 자신이 체코 출신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어 호른이 보헤미아의 서정을 담은 제2주제를 연주하는데 이 주제는 작곡가 자신도 뭉클함을 느낀다고 고백할 정도로 만족해했다. 1악장은 대담한 희망과 웅장함이 특징적인 인상으로 화려한 관현악과 독주 첼로 사이의 극적인 긴장감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2악장 Adagio ma non troppo G장조로 연주되는 세도막 형식의 악장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움과 더불어 지난 날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녹아있다. 제2주제에서 드보르작은 자신의 가곡 「나 홀로 내버려 두세요」를 사용했는데, 드보르작이 좋아하던 요세피나가 이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창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던 바로 그 시점에 요세피나가 사망했고 드보르작은 그 충격 속에서 작품에 몰두했다. 따라서 작곡가와 요세피나 사이의 감정의 등고선은 2악장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이다. 3악장 Finale, Allegro moderato 자유로운 론도 형식의 악장이다. 드보르작의 특징을 잘 드러낸 악장으로 보헤미아의 민속 춤곡과 흑인 영가풍의 멜로디가 교묘하게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호른과 독주 첼로 사이의 주제 교환은 매우 다채로우며, 체코 지방인 보헤미아의 정서가 듬뿍 담겨 있다. 풍부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깊은 서정성 그리고 드라마틱한 스타일은 아메리카와 체코의 민속적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엮어지면서 흘러간다. 특히 목관 악기의 짧은 선율은 슬라브 정서를 환기시킨다.
J. Brahms,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들으면서 휘갈겨 써 놓은 것들
공통
- 클래식만큼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건드릴 수 있는 음악이 존재하는가?
- 이 작품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1악장 Allegro non troppo
- 황혼, 저무는, 참음, 인간다움 ― 인데, 돌아서면 그렇지 않음에도 괜찮다며 은은하게 비추는 평온에 묻어나오는 한 줌의 슬픔.
- 부모님 생각이 났다.
- 저물어가는 태양이 스며들듯. 그러나 어둠은 그 반대에.
- 춤곡, 황혼 마지막 춤의 그 저물어가는 슬픔.
- 마치 나이 들어가시는 ‘어머니’가 자신도 괴로우면서 자식 앞으로 돌아설 때에는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그러나 다시 한 번 돌아서면 눈물을 흘리고, 간간이 비명을 지르는?
- 뭐라고 할까, 장조부는 자장가 혹은 황혼 느낌이 든다. 간간이 “아듀 ― 아듀 ―” 하는 느낌?
- 그러나 잠깐 가라앉더라도 다시 장조로 돌아온다.
-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이 악장이 ‘매우 슬프다’라고 표현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름다우면서도 매우 슬프다. 괜찮지 않기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질러도, 겉으로는 괜찮다고 표현하므로. 그 비참함이며, 인간다움이며, 그 인생에도 웃는 인간의 위대한 힘!
- 아름다운 황혼에서 묻어나오는 슬픔의 정서.
2악장 Adagio non troppo
- 오후의 조용한 방, 사색, 조용함. 주변을 둘러보며 감흥 또는 생각에 젖음.
- 고요한 가운데 고요함 특유의 아래쪽에서부터, 갑작스럽지만 부드럽게 올라오는 미묘함과 긴장.
- 조심스럽게 걷는, 현악의 튀김, 미끄러짐, 퉁퉁거림. ― “그런가? 그런가?”
- 그런 때도 있었지. “그 때는…….” 추억하는 때.
- “이러해야 하지 않니? … 그렇지만, 그렇지만” ― 반복되는 「미」, 「파#」, 「솔#」
- 심판하는, 닦달치는, 몰고 가는, 운명에 대한 직감. ― “어쩌지? 어쩌지?”
- 미묘한 고요, 정적, 가라앉음. 돌아온 사색의 정경.
3악장 Allegretto Grazioso (Quasi Andantino)
- 부드럽게 튕기는 현악.
- 갑자기 현악이 그으면서 전환.
- 스케르초와 부드러움을 오락가락한다.
- 스케르초의 경우 들썩들썩하는 미묘한 긴장, 불쾌하지 않은 덜컹거림.
4악장 Allegro con spirito
-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양식, 느낌이 종종 튀어나오는 듯.
- 폭발하는 선율과 전개.
- 역동적인, 비상하는 날개짓. 마음의 모든 구석에서 가득 채워 웅장함을 끌어올리는, 빌드업-적인.
- 모든 곳을 돌아나오는 기쁨, 그 날갯짓, 비상함.
- 돌다가 분출하기도 하고 (폭발적으로) 다시 돌아나오고 구석구석 도는.
팜플렛의 작품 해설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중 두 번째 교향곡으로 밝고 온화하며 목가적인 분위기 때문에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이라 불린다. 요하네스 브람스가 단 4개월만에 완성한 걸작 교향곡이다. 1번 교향곡이 20여년에 걸쳐 작곡된 것에 반해 2번 교향곡의 작곡의 진도는 브람스로서는 상당히 빨랐다. 1877년 9월경 브람스가 바덴바덴으로 갔을 때 이미 제1악장이 완성되었고 10월 초에는 제4악장의 일부를 클라라에게 피아노로 연주해 들려주었다. 10월에 리히텐탈에서 전곡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이며, 작곡 순서로는 제1악장, 이어서 4악장, 그 후 중간 2개 악장으로 이어졌다. 11월 브람스는 교향곡 2번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용 편곡에 힘써서 12월에는 친구인 외과의사 테오도르 빌로트와 함께 연주했으며, 자필 초고를 클라라 슈만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기본적인 2관 편성에 다섯 부의 현악기군, 타악기로는 팀파니만이 사용되는 크지 않은 구성은 교향곡 1번의 악기 편성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장엄하고 웅장한 느낌의 1번과는 매우 대조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작법 또한 1번처럼 복잡하지 않으며, 브람스가 헤르초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 곡을 일컬어 '단순한 신포니아'라고 했을 정도이다. 모든 악장이 장조로 쓰인 점이 특징이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 D장조의 3/4 박자로 시작되는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전반적인 장조의 느낌 가운데 가끔 단조가 사용된다. 음악학자 크레츠머는 이 악장을 일컬어 '저물어 가는 태양이 숭고하고도 탁하지 않은 빛을 던지고 있는 즐거운 풍경'이라고 하였는데,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에 스민 어두운 느낌을 포착한 표현이다. 실제로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첫 악장을 '매우 슬프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1악장 서두에서 제시되는 동기는 1악장뿐만 아니라 각 악장의 주제와 주요 선율에도 사용되어 전곡을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 2악장 Adagio non troppo B장조의 4/4 박자로 시작되며 역시 소나타 형식이지만 엄격하지 않으며 브람스 교향곡에 등장하는 유일한 아다지오 악장이다. 자아 성찰을 위한 고독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는듯 하며, 한편 브람스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이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아한 제1주제를 비롯한 3개의 주제 선율이 교묘하게 변형되며 절정으로 치달은 후 제1주제가 목관으로 재현되고, 이어 서서히 마무리된다. 3악장 Allegretto Grazioso (Quasi Andantino) G장조의 3/4 박자로 시작되는 론도 형식이다.경쾌하고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민요풍의 선율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오보에가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제1주제를 연주하고, 이어 목관과 첼로가 부드러움을 더한 후 경쾌한 스케르초풍으로 발전한다. 다시 이를 변형해서 반복한 후 조용하게 끝맺는다. 4악장 Allegro con spirito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느껴지는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브람스의 전 교향곡 중 가장 환희에 차 있는 피날레로 꼽히기도 한다. 고요한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생기있고 즐거운 인상을 준다. 앞의 세 악장이 모두 조용하게 끝맺는 반면 이 악장은 강렬한 클라이맥스 끝에 나오는 화려한 끝맺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