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지 #2. 우리네 인생 중간 잠깐 가는 길이 달라져도
편지지(編志誌)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쓴 편지들을 모아 기록하여, 과거에 품었던 뜻과 마음들을 정리해두는 공간입니다.
아래 글은 2024. 2. 27. 필자가 공군으로 입영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임을 서두에 밝힙니다. 원문은 실명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부득이 이름을 무작위 이니셜로 대체하였음을 알립니다.
Dear K.,
인터넷 편지도 갔지만 (혹은 갈 예정이지만) 요즘 잘 쓰지도 않는 손 편지까지 와서 많이 놀랐을까? 하지만 난 이상한 쪽에서 낭만을 찾는 괴짜인지라 인쇄되어서 전해지는 인터넷 편지로 사회 소식을 전해주는 것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인쇄된 활자로 전하는 건 너무 성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네가 설 전후로 공군 신병교육소에 들어간지 이제 대략 3주차 즈음에 접어든 것 같네. (그러니까 이제 너한테 인터넷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일 거고.)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지? 물론 바깥에 있는 내가 군의 실태를 정확히 알리가 있겠냐만은 계급 외우랴, 체력 훈련하느랴, 생판 모르는 남들 사이에서 밥 먹고 잠도 자고 또 초소 경계근무까지 선다고 생각하니까 참 막막해지더라고. 그걸 견디고 있다는 게 너라는 걸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좀 존경스럽기까지 한 거 있지.
솔직히 네가 군에 간다는 소식을 알려줄 때 좀 씁쓸하더라.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들이 너랑 비슷하거나 같은 이유로 훈련소로 가거나, 혹은 공무원 준비한다고 고향으로 내려가버리니 마치 나 혼자만 이 복잡한 도시에 남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 있지. 가끔씩 내게 오던 상담차 전화도 은근히 그리워지기도 하고 말이야. 무엇보다도 (물론 아주 개인적인 동기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군에 네가 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 미묘한 감정이 들고.
물론 네가 선택한 일이라는 것, 또 우리나라 남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단지 너와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지. 다만 네가 군대에서 동기들과 조교들 사이에 끼어서 ‘군기’라던가 ‘남자다움’이라는 우상(전적으로 니체적인 의미에서의 우상!) 하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마음 고생할 걸 생각하니까 내가 너무 쉬운 길로 가는 것은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나 신념 그것 하나 때문에 너나 다른 친구들이 겪을 경험들을 공유하지 않아서 나중에 네 이야기들에 공감해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고생이 많다, K.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몇 가지 떠돌아다니는 말들과 인터넷에서 찾은 자그마한 정보들을 짜집기하여 너라는 심상을 아무리 어떻게든 떠올려봐도 아마 네가 체득하고 있는 실제 사건들과 인상들의 티끌도 따라가지 못하겠지. 그러나 우리네 인생 중간 잠깐 가는 길이 달라져 현실적 문제로 이전처럼 자유롭게 통화하거나 만날 수는 없더라도, 또 둘이서 저녁 한 끼를 먹고 커피 한 잔을 들이키는 여유가 잠깐 허락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너에게 소식을 전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군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군상 덕에 심적으로 힘든 일이 생기거나, 혹은 전해줄 수 있는 몇 가지 네 이야기들이 생기면 비록 방법은 달라졌더라도, 거리가 조금은 달라졌더라도 여전히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인터넷 편지든 손 편지든 가끔씩 나도 소식 전할테니까, 너도 어떤 방식이든지 조금씩 네 이야기를 풀어 주었으면.
잘 지내라.
커피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