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11. 온기(溫氣)

동상이몽 #11. 온기(溫氣)

2024-12-07 0 By 커피사유

생각을 움직여 다른 꿈을 꾸다. 동상이몽(動想異夢)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시사 평론 및 생각 나눔의 장이자, 세상을 향한 이해를 표현하는 공간입니다.



#1.

삶에서 가장 춥고 힘든 겨울을 보내는 지금, 나는 온기를 느낀다.

그것은 광장의 온기요, 시민들의 온기이다. 오늘 국회 앞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저마다의 소리는 달랐어도, 모두 공감하는 하나의 뜻이 있기에 촛불과 함께 기꺼이 시민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2.

솔직하게 고하자. 처음 집권 여당 의원들이 퇴장하며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나는 몸을 조심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고, 집회가 과열될 수도 있으니 피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함을 지르고 언성을 높이던 시민들 사이를 통과해 나는 당초 국회로 향할 때 거쳤던 당산역으로 걸어 돌아갔다. 당시가 저녁을 먹기 위한 시간이었으므로 시민들이 몰렸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러니까 나 또한 괜찮겠지라고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갔던 작은 해장국밥집에서, 사람이 몰려 합석했던 나의 어머니뻘 두 분의 여성을 기억한다. 두 분은 아침에 출근한 이후 집에도 다녀오지 못하고 곧바로 광장으로 나왔다고 했다. 처음 보는 학생에게 단지 같은 뜻을 공유한다는 짐작 하에 기꺼이 저녁 한 끼를 살 정도의 연대를 가진 분들이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특집 뉴스 보도에서 집권 여당이 퇴장했다는 소식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저마다 한 마디씩 외치거나 중얼거리는 말들을 들었다. 나는 다시 두 여성 분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따라야 할 것인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어라 외치고 있는지.

그리하여 나는 걸음을 돌려 다시 당산역에서 국회의사당으로 되돌아갔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돌아가노라고. 미안하다고. 그러나 나는 해야만 하겠다고. 전화를 끊자,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리도록 추운 겨울밤임을 상기시켰다.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걸음을 돌리는 것을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국회 제4측문 앞에서 같은 뜻을 외치던 시민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깃발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야광봉을 흔들었으며, 누군가는 장구와 북 그리고 꽹과리를 흔들며 소리를 냈다. 누군가가 핫팩을 나눠주었다. 한참을 흔들어야 따뜻해지는 작은 핫팩이었지만, 그 물리적 온도와는 무관하게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렇다. 그 온기 속에서 나는 내가 발길을 되돌려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소리높여 부르짖었다.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 자신이 스스로일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쉬어가는 목을 가다듬어 외쳤다. 국회의장의 무산 선포가 이루어진 21시 33분에도 사람들은 소리 높여서 외쳤다.


#3.

기숙사로 들어오자, 친구 한 명이 끝까지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에 부끄럽다고 말했다.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중도에 사태가 격화될 것이 무서워 뒤돌아 나온 나 자신이 발길을 돌린 이유에 대해 한참을 다시 생각했다. 작은 국밥집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국회 앞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떠올렸다. 내가 다시 발길을 돌렸던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참을 또 생각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보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게 양심에 따른다는 거야. 우리가 현실적으로 모든 걸 걸 수는 없잖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충분한지, 충분하지 않은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최소한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리하여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면 그걸로 난 되었다고 생각하는 편. 여튼, 춥고 험난한 밤이었어. 일찍들 주무시길. 한 번 목소리가 안 들렸다고 영원히 안 들리는 건 아니니까.”


#4.

인간은 여러 유혹에 흔들리고, 위험을 피하고 싶어한다. 나 또한 목전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토요일 늦은 밤까지 추운 겨울 속에서 서로의 곁에 서 있던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냉철한 이해타산만으로 살기에는, 항상 위험을 피하면서 살기에는 우리의 마음 속 한켠의 바로 그것이 너무나도 귀중하다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나는 울려퍼지는 여러 구호와 함께 시민들과 나 자신이 소리 높여 요구했던 것은 실은 단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부끄러움’.

이것이야말로 광장이요, 삶에서 가장 춥고 시린 겨울 속에서도 나를 거기 서 있을 수 있게 한 바로 그 광장의 온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