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17. 이성의 최후긍정(最後肯定)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근래에 들어 나는 이상하게도 나 자신을 휘어잡은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은 기분이 항상 가득한지라,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뒤로 미루게 되고, 무언가 일상의 무료함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꾸 받는 것이 요즘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나 자신의 ‘우울함’과 ‘무기력증’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성에 대한 일종의 집착 혹은 믿음의 일종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하면 모든 것을 이성에 맞게 합리적으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이 과정에서 이들이 어느 정도는 도움을 주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면 그 행복감이라는 쾌락에 심취하여 감정이 너무 고무된 나머지, 이성이 명료하게 지시하는 바를 잘 듣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나는 침착한 판단과 이성의 속삭임을 명료하게 자각할 수 있는 우울한 어떤 순간이 좋은 것이다. 큰 실패를 겪어 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한 슬럼프가 오지 않았다면, 한 존재가 스스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나 도전을 받지 않았다면 또한 존재의 세계관의 부서짐, 그리고 그 부서진 틈으로 흘러 들어오는 새로운 빛 따위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나의 믿음 또한 이들 부정적 감정을 변호하는 나의 논리의 일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우울함과 무기력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 심각해지고, 이것이 일상의 이성적 작용을 위협하는 경우에 있다. 불행하게도 나의 최근 1주일 이상의 경험이 이러했기 때문에, 나는 이들 부정적인 감정의 필요를 늘상 자각하고 주장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다만 나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로, 즉 내 이성이 내 정신의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다시금 공고히 하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그렇다면 이성의 지배 구조를 다시금 명확히 확립시켜 주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 하는 질문은 이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될 것이다. 대답은 그리 간단명료하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또한 그렇게 구체적일수도 없겠지만 간단히 갈음해두기로 한다면 아마도 글을 쓰는 나의 행위에서 일련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겠다고 해 두기로 한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행위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대상의 분석을 수반하는 행위라, 굳어버린 이성의 재동작이라는 기작에 도움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분석의 대상이 스스로라면, 솔직함이 생명인 글의 대원칙 상, 스스로를 바라보는 솔직한 눈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추구하고, 또 내어야 하는 냉정한 사고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스스로를 냉정한 사고로, 그리고 솔직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자신의 심리 상태에 대하여 보다 조금이나마 아는 정보가 많아지게 된다. 즉 불확실한 다변수의 세계에서 이른바 약간의 질서를 도입함으로서 적어도 변수의 정체에 대하여 무엇이라도 알게 된다. 이 경우 스스로에 대한 분석은 자신을 궤뚫어 다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새로운 시각과 계획, 목표를 향한 의지를 다지는데 기초가 된다. 이는 글을 써 보면서 직접 나 스스로가 경험했던 사실이기도 하므로, 보증할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러하므로 나는 다시금 나의 무기력증과 우울함을 견디고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로 하자. 글을 다시금 쓸 수 있다고, 무언가 일상에서 오는 이들 부정적인 감정까지 역이용하여 끝까지 그 잃어버린 무언가를 긍정할 수 있다고 믿도록 하자. 불안한 눈과 초조한 나의 사고는 그저 나 스스로의 시간을 끝없는 손해를 볼 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나의 또 한 번 반복되는 슬럼프의 순간이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하는 반면교사의 바탕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기로 하자. 이성을 다시금 나의 사고의 절대적 지배자로 군림하게 하도록 하자. 이성으로 하여금 다시 그 위엄을 떨칠 수 있도록 이제 다시 글을 계속 써 나가기로 하자. 펜을 잡아 손을 놀리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익히고 접하는 그 신선한 경험으로 다시금 이성의 욕망을 가져다두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