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19. 이상한 덧글 나라의 토론

사유 #19. 이상한 덧글 나라의 토론

2021-05-20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한국 사회의 인터넷 문화와 혐오(嫌惡)의 정치


최근 들어 내가 시사적인 생각들에 관심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당면한 여러가지 과제들과 대학교 학업에 대한 일탈의 일환인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Youtube의 언론 토론 세션 기록을 꽤 시청하게 되었다. 조금 전에도 JTBC 손석희 앵커가 진행했던 2020년 말의 코로나 사태 관련 및 2021년 방향성에 대한 토론을 조금 시청하기도 했고, 2015년 새해 당일 진행된 2015년 신년 토론도 보았다.

그 토론들을 시청하면서 되게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본 토론들은, 비난이라고 부를 정도로 격화되어, 양측이 서로의 논거가 아닌 서로의 이미지, 프레임으로 다투는 듯한, 그리고 뉴스에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극적으로 보도되는 것처럼 생각되는 정계의 분쟁 및 토론들보다는 보다 토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토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토론 중 하나는 2017년의 SBS에서 진행된 대선 후보자 토론회가 아마 대표적이었을 것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및 퇴진 이후 치루어진 대선인 덕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밤늦은 시간까지 시청한 그 토론은 느끼기에는 처음에는 잘 흘러가다가 이상하게도 중후반부터는 자꾸 논점을 이탈하더니 약간씩 상호 비방 – 흔히 말하는 Negative 공세를 펼치는 양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광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불쾌했고, 대한민국의 정치가 이성적이지 못하다 – 즉, 건강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어 이런 ‘그나마 정상적인 토론’은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번 계기를 통하여 그렇지 않은 토론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토론들로 내가 얻은 것은 단순한 희망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회상과 현재 사이의 어느 공간에서 위 두 가지 형태의 토론 –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논거에 기초한 토론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토론의 예시들을 대조하다가,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 또한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질문이라고 함은 바로, 어떤 사람들을 모아 두고 토론을 진행하면 이렇게 “토론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결이 이루어지는 반면, 왜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을 모아 두고 – 특히 정계의 고위 권력층, 이를테면 정당의 원내대표, 혹은 대통령 후보자, 국회의원 후보자와 같은 사람들 – 토론을 진행하면 왜 그런 식으로 잘 흘러가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질문을 떠올린 그 순간에는 여러가지 답이 떠올랐지만, Youtube를 통한 2시간 가량의 토론 영상 시청을 종료하고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 덧글창을 확인해고픈 욕구를 따랐을 때 나는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확정해볼 수 있었다. 그 올바른 답이라고 하는 것은, 정계의 그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국민, 즉 주권과 권력의 원천이 되는 우리 스스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확인한 그 덧글창을 비롯한 오늘날 Youtube의 시사 관련 덧글창들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최근에, 특히 뉴스 채널의 덧글창, 인터넷 신문 기사의 덧글창에서 이상하게 ‘네티즌’이라고 불리는 온라인을 통해 여러가지 정보들을 탐색하고 접하는 우리들은 무언가 타(他)에 대한 이해나 인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무언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세션의 의견에 대한 반박보다는, 주로 덧글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덧글에 대한 공격, 혹은 관심을 끌기 위한 과격한 주장이나 비방, 또는 주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어떤 덧글들이 가득한 것이 내가 Youtube 덧글창으로부터 출발하여 전 인터넷 덧글창으로 확대시킨 결론이었다. (논리적 비약일 수도 있지만, 경험을 기초로 할 때 예외 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봐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타(他)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이상한 덧글 문화가 가득한 인터넷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오늘날의 사회상을 고려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기초로 했다기 보다는 정반대로 상대를 비난하고, 타(他)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덧글을 다는 익명성의 ‘누군가’들이 많아 보이는 세상에서, 과연 오늘날의 유권자들이 과연 과격한 여론 – 으로 보이는 것들 – 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 맞는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았지만 회의적인 대답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다면 대권 주자와 같은 고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왜 상대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느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 국가의 안정, 유권자의 행복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유권자의 ‘지지’였다. 유권자의 ‘지지’가 있어야 자신이 가진 권력과 생계의 수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들의 이른바 ‘밥줄’이기 때문이니까. 그러므로 다른 것들은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있어 부차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라는 화폐로 지배되는 사회 하에서는 본연적으로 시스템에 속한 모든 개인들은 화폐의 전면적인 통제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를 거부하면 본인의 경제적, 사회적 생존이 위험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미 모두가 인정하는 오늘날의 암울한 현실임을 생각해볼때, 이러한 나의 직관은 더더욱 확정되는 듯 했다.

나는 용기 있게 이러한 직관을 조금 더 연장하기로 했다. 그 결과로 얻어진 연장된 직관이 나에게 비추어준 바는, 바로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라면 가능한 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의견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지만, 내가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때 유권자의 지지, 여론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쪽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 같았다. 게다가, 있다 하더라도 금방 축출될 것이라는 것이 직관이 나에게 말하는 바기도 했다. 즉, 이들에게 정치는 직업이지, 헌신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은 항상 거짓말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 이것이 바로 연장된 직관이 나에게 속삭인 바였다.

유권자들이 쉽게 감정적으로 설득되거나 흔들린다면, 당연히 유권자들의 ‘지지’에 생존의 기반을 두는 정치인들은 상대적으로 번거롭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이성적 설득 전략 보다는 감정적이라고 생각되는, 혹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설득 전략을 사용하여 최대한 효과적으로 지지를 끌어 모으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이성과 논리에 의해 밝혀지는 진실은 대부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실증이나 근거, 논리가 부족한 주장을 펼칠 때에 감정적인 설득 방식 – 이를테면 논점에서 벗어난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도덕성에 대한 지적, 때로는 인신공격이라 생각될 수 있는 과격한 언행을 동원하면서 투쟁하는 것도 이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대중이 그러한 방식에 의해 잘 설득된다면, 그러한 방식을 통해 유지되는 굳건한 지지층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방식을 쓰는 것이 정치인 본인의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러므로 이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을 모아 놓았을 때 우리가 “토론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의 근간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내재되어 있는 셈이라고. 그러니 이제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저 사람의 토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물론 맞지만,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그 속에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제 – 타(他)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고 비난과 비방, 각종 이상한 덧글들이 넘쳐나는 인터넷 문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 이성과 논리가 결여된 감정적 설득에 의해서 쉽게 움직이는 대중이라는 요소를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사실, “저 사람 토론에 대한 예의, 혹은 태도가 부족하네”라고 말하는 것보다도, 지금은 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가 토론을 통한 이성적, 논리적인 의견 교류로 인해 건강한 민주 사회로 가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반문하는 것이 더 시급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5월의 중반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