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49. 그들이 마시던 것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Cafe 커피사유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잔에 담긴 형이상학
이 글은 2022. 12. 21.에 진행된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종강 파티 이후에 작성된 글임을 서두에 밝혀 둡니다.
그들이 마시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대는 뒷골목 한 켠 지하의 작은 술집의 이야기를 아는가. 대학(大學)의 한 학기가 저물었다는 것을 몸으로 익히고자 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거기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야기와 함께 그들은 작고 투명한 잔에 저마다의 무언가를 채워 마시고 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자신의 한 학기였을 것이요, 누군가에게 그것은 어쩌면 후회일수도 있겠다. 마시고 또 마신다. 끊임없이 들이키는 그것들을 학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넘기고 있는 것이다.
제각각의 이야기들 속에서,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채워진 잔들이 저마다 채워지고 비워진다. 이 잔 속에서 그대들은 무엇을 보는가. 잔에 채워진 무언가가 저마다의 속으로 넘어가는 흐름 속에서 그대들은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 혹자는 한 학기가 끝났다는 안도감을 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한 해의 마무리라는 종결의 서사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잔에 채워진 것들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 마셔 없애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들이키면서, 얼굴에 붉은 빛이 도는 것도 가볍게 이겨내리라 생각하면서, 그들은 고함을 지르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들이켜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들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대들은 알 수 없다. 잔을 채우는 것은 그 잔을 쥔 사람의 온전한 몫이니까. 다만 그대들은 넘치도록 따라진 잔 위에서 하나의 공통적인 서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뒷골목 한 켠 지하, 작은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그것, 저마다 잊고자 하는 그 무엇들을.
그들이 마시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혹자는 잔에 담긴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잔에 담긴 것이란 그것 뿐인가? 넘치도록 채우고 연거푸 들이켜 없애고자 하는 것이란 오직 보이는 그것 뿐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大學)인가? 자신(自新)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청춘(靑春)인가?
잔에 채워지고 또 비워지고를 되풀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은 정녕 알지 못하는 것인가? 그 대답을 알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삶’을 살아간다고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들 너머에 있는, 뒷골목 한켠 작은 술집에서의 형이상학을 논할 수 있을 때, 바로 그 때에서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