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일지 #3. 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 – 1 –

탐서일지 #3. 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 – 1 –

2021-02-03 0 By 커피사유

탐서일지(耽書日知)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어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두고 나누기 위해, 그리고 책을 읽어나갈 동기를 약속하기 위한 장으로써 마련된 독서 일지 시리즈입니다.

개요

한참 영원이오 독서회에서 괴델, 에셔, 바흐를 읽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예전 고등학교 졸업 이전에 3학년 합강 정리를 돕다가 주워온 책들을 살펴보던 중 한 권의 자그마한 에세이를 발견했다. 표지가 깔끔하여 무언가 읽고 싶은 호기심이 들었기에, 나는 라벤더 색의 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책의 장을 펼치게 되었다. 권미선 작가가 쓴 에세이들의 모음집이고, 허밍버드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이 책을 어느 날 새벽에 읽은 이래로 계속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어 이것들을 모아 두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중에는 아마도 그렇게 많은 물음이 있다기 보다는, 차라리 느낌표가 더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첫 몇 장을 넘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들었다. 조금 읽은 지금 입장에서도 그러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나는 그저 기억해두고 싶어지는 문장들만을 모아두려고 한다.

기억해두고 싶어지는 문장들

<우리에겐 무엇이 있어 우리가 어둠이 되지 않게 할까>

좋아하는 영국 드라마 <인데버(Endeavour)>.
끔찍하고 잔혹한 범죄를 보고 괴로워하는 신입 형사 모스에게
선배 써스데이는 이런 조언을 해 준다.

“지킬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 음악도 좋다고 행각해.
집에 가서 가장 좋아하는 음반을 크게 틀어 두고,
모든 음을 들을 때마다 기억해.
세상 그 어떤 어둠도 이것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걸.”

나는 이 장면을 수없이 돌려 보고 보는 내내 울고 말았는데,
그건 그때 내가 어떤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스에겐
세상의 어둠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
어둠에 물들지 않고
자신이 어둠이 되지 않는 방법은 음악이었다.

우리에겐 무엇이 있어 우리가 어둠이 되지 않게 할까.

살면서 우린 너무 쉽게 상처받고
매번 어둠을 끌고 집에 돌아오는데.
노력은 아무렇지 않게 우릴 배신하고
삶은 툭하면 발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데.

불합리하고 말이 안되는 일들.
내키는 대로 상처를 주고 돌아서는 무례한 사람들.

자주 쓸모없는 기분이 들게 하고
비교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결국은 울게 하는데.

낡은 신발 같은 하루.
무겁고 추례하고 안쓰러운 하루를 끝내고 돌아올 때.
우리는 어둠을 데려온다.

어깨에 묻혀 온 눈송이처럼 어둠은 집 안으로 따라 들어와
옷장에, 침대에, 바닥에 팔랑팔랑 떨어져 내린다.
방은 어둠으로 물들고 우리는 어둠이 된다.

내 안에 들어온 어둠은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말에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목소리로 말하게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게 하고,
자꾸만 날카롭고 짜증 섞인 말투가 튀어나오게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울게 한다.

상처 준 사람은 밖에 있는데
왜 나는 그 상처를 끌고 들어와서 내게 상처를 주고
다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가.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 밖에서 발을 세게 구른다. 툭툭 털어 낸다.
눈을 감는다. 지워 버린다.

어둠을 집 안으로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내 나머지 하루마저 가져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던 바깥은 바깥의 세상에 두고
나는 이 안에서 좋아하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을.
내가 어둠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을.

15~18p.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행복하니?”

대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겨울이었고 어두운 밤이었다.
친구는 기분 좋게 취한 얼굴이었다.
눈은 반짝였고 코는 빨갰다.
손에는 생크림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내 생일 즈음이었다.

“나는 행복해. 너랑 이렇게 걸으니까 참 좋아.
너는 행복하니?”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 보는 거였다.

그동안 누구도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고,
나도 ‘행복한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행복이란 단어가
골목마다 들어선 편의점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나에겐 국어 교과서에서
시를 해석할 때나 만나는 단어였고
박물관에 전시돼서 ‘눈으로만 보시오’ 하는
전시물 같은 것이었다.

그때 난 아니라고 했던가, 모른다고 했던가.
그냥 춥다며 친구의 손을 잡아끌었던가.

나는 늘 내가 몇 가지 유전자가 부족한 채
태어났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가 행복 유전자였다.

살면서 지금까지 호들갑스럽게
“아, 행복해” 소리 내어 말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그 느낌이 어떤 건지는 안다.
어쩌면 단어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
어색하고 간지럽고 미끌미끌한 느낌.

행복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우울증에도 걸린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행복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행복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불편하다.

SNS 속에서, 블로그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보여지는 행복.
그런 행복이라면, 그런 게 행복이라면 나는 행복하지 않다.

왜 꼭 행복해야 하는데?
그냥 덤덤하면 왜 안 되는데?

어떤 날은 좋고 어느 날은 나쁘다.
어느 날은 엉망이고 어느 날은 참을 만하다.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운다.
어느 날은 별로고 어느 날은 괜찮다.

그냥 그렇게 산다.

29~31p.

<부드러운 림보>

무대 중앙에는 막대가 가로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하나둘 가로대를 지나기 시작했다.

‘저걸 통과해야 하는 건가.’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고는 천천히 가로대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깨가 막대를 건드렸고
툭 튕겨져 나간 막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누군가 말했다.
“림보는 부드럽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어.”

나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곤 잠에서 깼다.

나는 유연성이라곤 없는 사람. 나무젓가락처럼 뻣뻣하다.
하지만 이건 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제 나는 앞구르기와 뒤구르기를 하면서
체조 시험을 준비하는 중학생이 아니니까.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잔잔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누군가 툭 돌멩이를 던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 불합리한 일, 화가 나는 일 앞에서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결국 본인만 상처를 받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부딪히다 부딪히다 이제는 지쳐 버린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니까, 하고 외면하는 걸 택했다.

나도 안다. 다 안다.
그래도 말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말도 안 하고 가만있으면 자기들이 잘하는 줄 알잖아.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잖아. 그럼 영영 바뀔 수가 없잖아.

하지만 나는 결국 이런 충고를 듣고 말았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그냥 적당히 좀 하고 살자.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부드럽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꿈속의 목소리처럼 나를 혼내고 있었다.

적당히 하는 게 부드러운 건가.
상대방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게 부드러운 건가.
안 되는 걸 된다고 말하는 게 부드러운 건가.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부드러운 건가.

“제가 아직도 사회성이 부족해서 그래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림보를 하고 있었다.
다들 막대를 통과해서 다음 단계로 가는데 나만 혼자 남았다.
누군가 내게 속삭였다.
“림보는 부드러워야 통과할 수 있어.”

나는 부드럽지 않다.
내가 나 아닌 사람이 되어서 저걸 꼭 통과해야 하나.
그럼 그 뒤엔 무엇이 있나.

나는 사람들이 다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혼자 림보 막대 앞에 서 있었다.

48~51p.

<그 시절에는 그 시절의 아픔이 있다>

지금 내가 견디고 있는 이 시간을 가볍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 시절을 겪어 봐서 아는데.”

물론 위로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얘기할지를 잘 모르겠어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 때는 훨씬 더 힘들었다고.
그러니까 그건 별거 아니라고. 그 정도는 이겨 내야 한다고.
결국은 그런 말이 하고 싶었던 사람도 있다.

나는 당신이 아니고 당신은 내가 아니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고 그때는 지금이 아니다.
그런데 왜 같다고 생각할까?

어쩌면 당신은
키를 훌쩍 넘기는 물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려 본 사람.
그에 비해 나는 겨우 찰박찰박한 발목 깊이의 물속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사람.

그러니 너의 슬픔은 견딜 만할 거야,
너의 우울은 그리 무겁지 않을 거야,
그 정도는 이겨 내야지,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크기가 다르고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
당신도 이제 지나고 나니 괜찮다고 생각할 뿐
그때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지금 지고 있는 짐이 가장 무겁게 느껴진다.
가장 힘든 일은 언제나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그 일.
내가 고통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게 만드는 그 일.
나를 잠 못 이루게 하는 바로 그 일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이 세상의 중심이고
그 일 하나로 마음이 무너져 내리곤 한다.
발목 정도 깊이의 우울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힘든 순간이 된다.

그러니 그가 한 발 한 발 걸어 나오기 전에
그런 건 별거 아니라고, 지나고 보면 다 소용없다고
쉽고 가볍게 말하지 말라.
그는 지금 있는 힘을 다해 그 길은 지나고 있으니.

126~128p.

<하지 못한 일 하지 못한 말>

좋아하는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이 작가가 새로 쓰는 책은 영원히 읽지 못하겠구나.
출간된 책이 그리 많지 않아서 조금씩 아껴 읽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그것뿐이구나.

어디선가 죽음이 들려올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할 것처럼 하루를 살고 있지만
생은 그저 눈 깜빡할 사이에 있다고.

다음에 다시 읽어야지 했던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다음에 봐야지 했던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다.
미뤄 둔 일들이 자꾸만 쌓여 간다.

개학을 앞두고 밀린 숙제를 하던 그때처럼
결국은 다 하지 못할 것이다.

메모장에 적어 둔 ‘오늘 해야 할 일들’ 목록은
너무 쉽게 내일이 되고
내일은 죄책감 없이 또다시 내일이 된다.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뒤로 밀려 버린 일들,
그래서 아직도 지우지 못한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하지 못하고 뒤로 미루는 버릇,
말도 그랬다.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을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그는 끝내 듣지 못하고 떠났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말들이 있다.
상대방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은 말들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얼음조각이 녹아서 물이 되는 것처럼 형태가 달라진다.
같지만 다르다.
우리는 형태 속에 살고 있으니까.

하지 못한 일, 하지 못한 말이 넘친다.
옷장 밑바닥의 먼지처럼 자꾸만 쌓여 간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시간을 흘러갈 것이다.
그러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했더라면 좋았을걸 후회할 것이다.

201~203p.

<기차를 놓치다>

그날, 기차를 놓친 것은 시차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에 도착했을 땐
기차 출발 시간까지 두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내기는 아쉬워서
일부러 작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왔는데
그사이 내가 타야 할 기차가 떠나고 없었다.

억울한 표정으로 30분이나 빨리 떠나는 법이 어딨냐고 묻자
직원은 내 손목시계와
기차역 벽에 걸린 시계를 번갈아 가리켰다.
시간이 달랐다. 한 시간의 차이.
이탈리아와 그리스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다음 기차는 저녁이나 되어서야 출발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어떡하지? 숙소는 어떡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의 부주의를 탁하며 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짐을 맡기고 다시 한 번 마을을 돌아보기로 한다.

작은 광장에 들어섰을 때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이름은 엘레나. 대학생. 이 마을에 산다고 했다.
아까 기차역에서 나를 봤다고,
기차를 놓쳐서 안됐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마을에서 할 만한 일들을 물어봤지만
그녀는 “워낙 작은 곳이라서” 하고는 웃었다.
그러더니 “괜찮으면 내가 가이드를 해 줄까?” 물었다.
“나야 너무너무 좋지.”
예의상 거절 같은 건 해 보지도 않는다.
안 그래도 혼자 여행하는 것에 슬슬 지쳐 가던 때였다.

그날 우린 짧은 마을 여행의 친구가 되었다.
물론 볼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이 마을을 떠나는 순간 곧 잊혀질 것들,
가이드북에는 올라갈 리 없는 것들,
누군가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들을 열심히 설명했다.
“이 나무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거야.
이 집엔 내 친구가 사는데 얼마 전에 결혼을 했어.
이 가게 아이스크림이 진짜 맛있어. 좀 먹어 볼래?”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마을을 또 한 바퀴 돌았다.
그녀는 저렴하면서 양이 많고
맛도 나쁘지 않은 식당을 추천해 주었고
우리는 가장 싼 메뉴를 골라서 나눠 먹었다.

작은 마을에 나타난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안 그대로 붙임성 좋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올리브나 빵을 건네주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날 마을에서의 시간은
지난 몇 주 중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기차를 놓치지 않았으면
이 시간들과 이 사람들
그리고 이 풍경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차를 놓친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233~235p.

후기

솔직히 어느 새벽에 빠르게 졸린 눈으로 읽다가 뭔가 눈이 뜨여질만한 페이지들을 접어 놓고, 그 다음날 늦은 오후에 게으른 몸뚱아리를 겨우 설득해서 접어둔 부분들을 발췌한 것이라, 정확히 이 책을 곱씹어보지는 않았다. 즉, 위에서 내가 뽑아 놓은 것들은 그리 꼼꼼히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못 넘기게 만든 이상한 글들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처음부터 이 글들을 정확히 곱씹어 보고, 다시금 발췌해야 할 것 같다. 몇 가지 해석과, 나의 경험도 달아 두어야 할 듯 싶다. 하지만, 아마 다음 주에 해야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