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시간 #4. Take Me Home, Country Roads – John Denver
커피, 사유(思惟)의 음악이 흐르는 시간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선곡한 일상 속 음악들과, 그에 엮인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입니다.
아(我)와 일상, 그리고 음악. 음악이 흐르는 시간, 카페지기 커피사유입니다.
벌써 지난 음악이 흐르는 시간 시리즈 포스트를 업로드한 것이 작년이 되었고, 거의 3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해는 2020년에서 2021년으로 바뀌었고, 저는 고등학생에서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 개강 이래 정신없는 두 주 정도를 보냈습니다.
모르겠네요, 여러분은 지금 어떠실까요? 코로나-19라는 우리 모두를 계속 지치게 만드는, 이제 그만 좀 우리를 시달리게 했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전대미문의 펜데믹 속에서 3달 동안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제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완전히 바뀌어버린 온라인 비대면 수업 방식과 비대면 근무의 2년차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올해 2021년인데, 시작의 계절 3월을 지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떠할까요? 작년과 많이 달라졌나요, 아니면 그대로인가요? 글쎄요,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작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더 외로워지고, 더 기분이 이상하게 암울해지는 시작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이 여전한 듯 합니다.
만약 여러분도, 지금 이 시간들이 이상하게도 무언가 외롭고, 쓸쓸하거나, 기분이 이상하게 암울해지는 시간으로 느껴지신다면,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네 번째 음악이 우리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네 번째 음악이 흐르는 시간, 오늘 이 시간에는 조금은 연식이 된 포크송 중 하나죠. 미국의 John Denver가 부른 Take Me Home, Country Roads라는 곡과 함께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도시와 인간
고등학생의 삶을 청산하고 당당하게 대학 합격증을 받아낸 저는 2월 28일, 3월 봄 학기의 개강을 앞두고 상당한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대입이라는 목표를 보며 너무 숨가쁘게 달려오던 일상에서는 이제 조금 벗어나서, 뭔가 조금씩 여유를 가지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언가를 배워 나가고 싶었고, 또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람을 조금씩 만나며 대학에서의 삶을 향유하고자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는 당시 그 첫 걸음이었던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학부생생활관으로 가기 위한 차에,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몇 개의 기분 좋은 음악들의 선율 위로 몸을 기꺼이 맡겼습니다.
대학 캠퍼스 기숙사는 여건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시설이 노후되서 그런지 다소 불편하고 보기에 좀 그러한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며칠은 그런대로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본가와 멀리 떨어져 좀 더 강한 범주에서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온전히 나 자신을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밖에 없다는 인식이 상당한 중압감과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새로 시작한다는 설렘은 그러한 심리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를 충분히 연장시켜주고 있었죠.
그러나 적어도 그날 이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에 저는 캠퍼스가 아닌 다른 곳에 볼 일이 생겨 지하철을 타고 좀 멀리 나가야 했습니다. 지하철과 같은 종류의 대중 교통에는 익숙하지도 않은 터이고, 게다가 고등학교에서 적어도 2년을 사실상 유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대입에 할애하였기 때문에 어려움을 꽤 겪기는 했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개찰구를 통과해서 마침내 계단을 내려가며 이제 그 ‘지하철’을 탈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죠.
서울대학교 입구역과 2호선까지는 나름 괜찮았습니다. 지하철의 빈 자리에 앉으니 도시라는 공간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찰나를 조금이나마 곁눈질로 볼 수 있더군요. 휴대전화를 통해 Youtube 영상을 보는 사람, 다음 역까지 얼마나 남았는가를 노선표를 보며 확인하는 사람부터,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연인과 통화하는 한 남자, 그리고 넥타이를 매고 하루의 끝에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가장의 모습까지. 적어도 저의 삶은 아니지만 – 같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다양하고 또 그만큼 각자의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영역의 한 찰나를 저 자신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에는 시간이 충분하였기 때문에, 나름 괜찮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3호선이였죠. 하필이면 제가 지하철을 탄 시간대는 퇴근으로 인한 혼잡 시간과 약간 겹쳐 있었는데, 서울 교대역에서 을지로 3가로 가는 순환열차가 멈추어 섰을 때에, 저는 비로소 출/퇴근의 지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곳곳에 사람들이었고, 도처에 또 사람들이었죠.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우루루 더운 숨을 뱉으며 멈춰선 지하철의 문 사이로 나오고 있었고, 또 그 옆으로 역시 많은 사람들의 인파가 우루루 그 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간신히 이겨가며 그 사람들의 인파 속에 끼여 들어가서 이미 공간이 모자라고도 한참은 모자라는 지하철의 한 칸 안으로 몸을 들이 밀었습니다.
몸을 들이밀자 처음으로 드는 감촉은 한 남자의 엉덩이가 제 엉덩이에 닿는 것이었습니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밖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분 간격으로 도착하기는 하지만 어찌하였든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이들이 여전히 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스크린도어를 닫겠다는 안내음, 띠리리 – 거리는 경고음, 그리고 기관사의 열차 내가 혼잡하오니 – , 그리고 출입문 닫습니다 – 와 같은 안내들이 열차 칸 안의 사람들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히고 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하여 그 혼잡에서 빠져 나왔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지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날, 도대체 왜 문학에서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왜 도시의 어두운 면으로 그리는지를 이해한 그날 이후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제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고, 그에 따라 제 캠퍼스의 대학 생활의 낭만도 산산조각났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캠퍼스의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도처에 힘겨운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는 듯 했습니다. 속으로는 신음하면서도 이상하게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다니고,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도움이 필요하지만 필요 없다며 시치미를 떼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좀 쑥쑥하고 낙후되어도 살 만하다고 생각되던 기숙사는 어느새 룸메이트와 저만이 유일한 대학에서의 인맥 관계인 듯한, 비대면 수업을 듣는 자리, 그리고 대학에서의 1학기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이상한 자리로 생각되기 시작했고, 이상하게도 저는 그날 이후부터 끔찍하게도 집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향수와 도시
저는 이상한 지하철이라는 경험을 통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고, 지금 이 글도 지방에 있는 집에서 쓰고 있는 행운을 누렸지만, 많은 도시의 사람들은 직장, 학교, 그 외 자신만의 사정으로 도시에서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은 항상 누군가에게 족쇄가 되어 누군가의 망(望)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죠.
이상하게도 무언가 이런 복잡한 사정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 도시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힐링’을 생각하며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어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떠나거나, 아니면 넉넉한 시골로 돌아가던가 – 라는 그런 생각들이 도시의 사람들 마음 속에는 한 번씩 떠오르기 마련이지요. 이러한 마음은 그저 TV 매체에서 방영되는 촌락과 관련된 프로그램, 캠핑 관련 프로그램만 해도 어느 정도 이러한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시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다는 점으로 하여 어느 정도 지지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도시의 사람들은 도시라는 공간이 주는 막막함이 이제는 견디기 힘들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라는 것은 문명을 이룩한 인간이 만들어낸 주요한 발명품 중 하나이며, 역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것도 맞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시가 점차 구조화되고, 그 거대한 몸뚱아리를 효율적으로 놀리기 위하여 각종 제도와 발명을 이룩해나가다보니, 정작 도시에게 중요한 것은 도시 그 자체가 되어버렸고, 그 도시를 만드는 구성원들은 그저 소속된 한 명의 개인의 신세로 전락해버린 듯 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들어버려씩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한 그날 이후로는 도시에 대하여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겠더군요.
향수는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무언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당면하고 있을 때, 그래도 조금은 나은 듯 했던 기억 속의 세계로 돌아가고픈 우리들의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도시의 우리가 무언가 고향이나 조금은 사람이 없고 덜 복잡한, 그리고 철저하게 규율에 의하여 제어되는 도시의 사회에서 벗어난 향촌의 사회를 바라고 있다면,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미 도시에서의 일상에 지쳤다는 증거, 그리고 그 구성원을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 도시에 대한 반발의 일종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들의 향수와 음악
이러한 도시의 무관심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은 지금으로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저, 그리고 도시의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우울함 속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상황을 긍정할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진 존재이므로, 우리들은 여전히 다만 도시 바깥을 상상하면서 도시를 인내하고 때를 기다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너무 도시의 일상에 지처버린 우리들을 위하여, 오래된 이 팝송인 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향촌의 향수를 물씬 불러 일으키면서, 도시의 무관심에 대해 고찰하면서, 나아가 도시와 사람에 대한 관계를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변화는 출발하는 것이겠지요.
보충: 원래 이 곡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원래 가수인 John Denver의 버전도 좋기는 하지만, 동시에 제가 찾아보다가 처음으로 이 곡을 접하게 된 경로인 Youtuber charming_jo가 부른 버전도 괜찮더군요. 그래서 두 버전을 모두 달아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