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ness

Stillness

2025-01-29 0 By 커피사유


나는 사람들이 우울한 상념에 빠져들어야 분별력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네.

몰리에르(Molière), 『인간 혐오자』 中

이야기

오래 전부터 나는 새벽을 좋아했다.

그냥 조용하고 어두운 그 침묵을 좋아했다. 낮 동안의 모든 사건들을 잠시 내려놓고 방해하는 이 없이 그저 스스로의 내면으로 가라앉을 수 있는 바로 그 침묵을.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있다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운명적으로 다가왔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루지 못하는 것들에 괴로워한 낮과는 반대로 저며오는 여명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철학적 여정을 묵묵히 지속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바로 그 때.

수많은 새벽마다 나는 책을 펼쳤고, 서랍 한 켠에서 펜을 꺼내어 삶의 단편들을 써 내려왔다. 종이 위에서 펜촉이 사각거리며 미끄러질 때면 나는 잉크 위에 기록된 기호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가(戀歌)를 조용히 응시하곤 했다. 어느 날에는 그것이 도저히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을 비추었고, 또 다른 날에는 함께 가는 이 하나 없는 답답함 속에서 시들어가는 뫼르소를 비추었다. 기호 위에서 의미들이 미끄러짐에 따라서 나는 모종의 부조리들을, 그리고 그것들의 무게를 느꼈다. 부조리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심대해짐에 따라 나는 더 이상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인 외침이 가장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써 내려갔다. 종이를 사각거리는 소리, 조용히 차를 홀짝거리는 소리, 투닥거리며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 이처럼 조용히 울려퍼지는 삶 그것들 모두를.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겨 버리고 오로지 작은 불빛에 의존하여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기에 나는 검은 심연 속에서도 희미한 그곳에 기대어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침묵에 잠겨 버리고 오로지 나 자신의 목소리만이 들리는 시간이기에 나는 아래로, 문을 열고 닿을 수 없을 듯 아른거리는 저 검은 세계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새벽을 좋아했다. 새벽의 침묵과 어둠 그 모든 것을 좋아했다. 모든 것이 가려지는 그 때 조용히 빛나는 것들을 하나씩 움켜쥠에 따라 흘러내리는 시간들을 좋아했다. 그랬다. 오래 전부터 나는 새벽을 좋아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정적(Stillness)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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