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앞에서 도피하는 두 가지 방법들

2025-06-29 0 By 커피사유

서윤의 거절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여행 계획은 산뜻하게 무산됐다. 은지는 들뜬 마음을 접고, 대학원에 갈 목적으로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학부 때 빌린 학자금 대출도 다 못 갚은 상태에서였다. 하지만 은지는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인생을 굴러가게 만드는 건 근심이 아니라 배짱임을 믿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깔보는 거라고. 실은 본인도 믿지 않는 주문을 외워가며 말이다. 서윤의 경우, 두려움을 이기는 제일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경험하는 거라 여기는 편이었다. 아니, 그보단 아예 두려움 근처에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상책이라고, 진짜 공포는 그렇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말이다.

김애란, 〈호텔 니약 따〉.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p.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