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내려가고 뒤섞이는 것들
세계는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가고 있었다. 빗방울은 저마다 성질에 맞는 낙하의 완급과 리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듣다 보니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자연은 지척에서 흐르고, 꺾이고, 번지고, 넘치며 짐승처럼 울어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의(懷疑)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티브이와 라디오는 나오지 않았고, 양초는 되도록 아껴야 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거나 이런저런 몽상에 잠기는 일로 시간을 때웠다. 그러곤 눅눅한 방바닥에 누워 지구의 살갗 위로 번져 나가는 무수한 동심원의 무늬를 그려봤다. 동그라미 속의 동그라미 속의 동그라미들…… 오래전에도, 그보다 한참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양으로 떨어졌을 동그라미들. 우리의 수동성을 허락하고, 우리의 피동성을 명령하며, 우리의 주어 위에 아름다운 파문을 그리는 동그라미들. 몹시 시끄러운 동그라미들. 그렇게 빗방울이 퍼져가는 모양을 그리다 보면 이상하게 내 안의 어떤 것도 출렁여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 사춘기 소년에 불과했고, 당장 뭘 이해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떼를 입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의 봉분 위에도 동심원이 고요하게 퍼져 나가고 있을 터였다. 아직 떠내려간 것만 아니라면, 분명 그랬을 거다.
며칠 뒤, 세면대에 물이 나오지 않았다. 양변기와 개수대도 마찬가지였다. 재개발 관계자들의 결정인지, 수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당분간은 받아놓은 물을 쓰면 되지만, 장마가 끝난 뒤가 더 걱정이었다. 양치는 하루 한 번만 했고 오줌은 밖에다 쌌다. 똥을 처리하는 건 그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아파트 내 빈집에 누고 오는 법, 들통에 모아뒀다 허공에다 쏟아버리는 식, 빗물을 받아 변기에 들이붓는 것…… 어떻게 하든 높은 습도 속에서 기승을 부리는 악취가 문제였다. 소변은 베란다에 싸고, 대변은 통에 받은 빗물을 이용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빗물은 많은 양을 한꺼번에 옮길 수 없어, 옥상에 자주 올라야 했다. 변기 속, 구멍을 타고 회오리쳐 사라지는 오물을 보고 있으면, 새삼 물에 잠긴 도시란 게 얼마나 더럽고 역겨운 곳일지 그려졌다. 인간이 지상에 이룩한 것과 지하에 배설한 것이 함께 엉기는 곳. 짐승의 사체와 사람 송장은 물론 잠들어 있던 망자들의 넋마저 흔들어 뒤섞어버리는 곳. 그런 데라면 결코 빠지지도,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김애란, 〈물속 골리앗〉.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pp. 9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