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법률화

2025-04-29 0 By 커피사유

재판은 완전하지 않다1이하의 글에서 밑줄은 원문 중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그어둔 것이다.

재판은 오히려 게임에 가까울지 모른다. 엄격한 규칙이 전제되고, 그 규칙에 따른 공격과 방어를 통해 일정한 결말에 도달한다. 재판은 사실로 이루어진 사건에 내재하는 옳음을 찾아가는 작업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이다. 사실에 적용하는 법은 그 자체가 정당한 것이 아니라 제시되는 근거에 의해 좌우된다.

재판의 결과가 일정하지 않다면 법치의 무대에서 안정성이 사라진다. 그 불안감이 어떤 경우에는 희망이 된다. 구체적 사건에서 당사자는 재판이 정의의 발견을 향하는 법적 회로를 따라 선고에 이르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쟁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게 된 것이다. 재판의 도구화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과정의 현상적 결말을 단적으로 요약하면, 재판의 결과를 승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패자는 무조건 이에 불복한다. 사법의 도구화는 사법 불신으로 이어지고, 불신하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모두 법정으로 끌고 간다. 신뢰하든 불신하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경기장에 나가 싸우는 것밖에 없다고 여긴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최초의 재판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당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결할 권한까지 갖고 있는 것은 당사자 자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재판권을 포기하고 법원에 넘긴다. 법원에서 모든 심급을 거치고 나면, 다음은 헌법재판소로 향한다. 헌법재판이 시민의 일상과 친숙해진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헌법재판 심판정이 사소한 개인사부터 고도의 정치 행위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최종 해결장이 되는 것은 헌법재판소를 설치한 1987년의 헌법이 예상하지 못한 사태다.

헌법은 국내 정치 질서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경험적 사례는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사건이다. 선출된 대통령을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닌 방법으로 파면시켜도 큰 혼란이 없었던 것은 헌법이 규정하는 절차 덕분이었다. 그러나 근대 국가의 든든한 이념적 기초인 헌법도 언젠가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헌법은 자연법적 정의라는 상징성과 법적 정의라는 실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때 권위를 지닐 수 있다. 아슬아슬한 그 균형을 잃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헌법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의존 때문이었다. 일상적 삶의 고단함과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 그리고 정치권 자체의 갈등은 개별법을 통한 해결을 기다리지 못하고 헌법에 바로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헌법재판 기능은 활성화되었지만 헌법의 법률화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저마다 헌법재판소를 향해 위헌이냐 합헌이냐 양자택일의 답변을 강요한다.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권리관계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싸움의 마지막 반전 기회를 꾀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간다.

법치주의에 대한 소박하고 근본적인 기대가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에 따른 사법만능주의로 귀결되는 듯한 상황은 다소 과장된 인식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난처한 현장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도 없다. 더 난감한 일은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이나 재판의 본질 규명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지구상의 어떤 정치적 공간에서도 유사하게 벌어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안이 된다. 그렇다면 정치로 인한 문제는 정치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종전 이후 프랑스에서 어느 헌법학자가 한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오늘날 프랑스 정부의 강력함과 안정성은 헌법보다는 단결력과 규율이 있는 의회 다수파의 존재에 더 의존하고 있다.”

차병직, 「법과 재판이 만드는 사회」, 《사상계》 창간 72주년 특별기념호(2025년 봄). pp. 102-103.

주석

《대한민국 헌법》에 얽힌 역사와 조항들이 이야기하고자 한 가치들에 대해 내가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순간은 《지금, 다시, 헌법》이라는 책과 함께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서울대학교의 방문에 대해 의미 있는 기억을 남기고 싶었던 나는 로고가 새겨져 있는 필통이나 공책, 키링보다는 그 내용이 한 인간의 양식으로 새겨져 끝까지 남을 책을 선택했는데, 그때 교내 교보문고 서점에서 꼽았던 책이 바로 글쓴이가 공저했던 《지금, 다시, 헌법》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대학교 5학년이 되었고, 한국 정치사도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이후 장미 대선으로 뽑힌 한 명의 5년에 이어 세 번째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며 격동했다. 사회 갈등은 더욱 심각해져 지난 대통령은 0.73%p 차이로 결정되었고 유력한 상대 후보는 수많은 재판에 휘말렸지만, 그 뒤에 이어진 것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문화의 실종 그리고 법원에 제출된 수많은 소장들 ― “내가 법적으로 옳잖습니까!”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문서들과 그것들을 심리한 결과 떨어진 수많은 판결들 뿐이었다.

나는 《지금, 다시, 헌법》을 다시금 기억해본다. 헌법은 태초부터 주어진 질서, 십계명 같은 폭력적인 규범이 아니다. 그 어원이 Constituere, 즉 실체나 모습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점차 구체적이고 정형적인 형태로 만들어간다는 뜻의 단어에 있듯 그것은 문화 속의 인간이 겪은 역사들을 총망라하여 빚어낸 공동체의 기본적인 정신이다. 쓰인 것 그리고 쓰인 것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것은 기반이 없는 판단보다 나을지는 모를지언정 결코 쓰이지 않은 것 그리고 쓰이지 않은 것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것에 비해 우월하지는 않다. 쓰이기 이전에 있었던 정신들과 역사적 교훈들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기억해야 한다. 저자의 문장대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최초의 재판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으니까.

주석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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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의 글에서 밑줄은 원문 중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그어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