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1942

2026-01-18 0 By 커피사유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거예요? 어차피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뉴스는 온통 거짓말투성이인데요.”

기록국에서 저지르는 뻔뻔스러운 날조 행위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다. 거짓이 진실이 된다고 해서 자기 발밑에 무서운 함정이 생긴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존스와 아론슨과 러더퍼드, 그리고 언젠가 잠깐 쥐었던 종이쪽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친구였어요?”

줄리아가 물었다.

“아니, 그들은 내부당원들이야. 혁명 전의 시대 사람들이라 나이도 많고…… 나는 겨우 얼굴만 봤어.”

“그럼 뭐가 문젠데요?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는 죽잖아요?”

“이건 사람의 죽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부정되고 지워지는 과거에 대한 문제야. 과거가 어디엔가 남아 있다고 해도 그건 저기 있는 유리 덩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물체일 뿐이야. 우리는 혁명 당시나 혁명 전의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였고, 그림은 다시 그려지고, 동상과 거리와 건물들에 새 이름이 붙여졌고, 날짜마저 모두 변조됐어. 당이 언제까지나 옳다는 이 끝없는 현재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날조행위를 하고 있는 나조차도 과거가 날조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 증거라곤 오직 내 기억뿐인데 누가 그걸 믿어 주겠냐고? 그렇게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몇 분 만에 버리다니, 지금 같으면 보관했을 텐데.”

“나라면 그러지 않을 거예요. 위험을 무릅쓸 각오는 나도 돼 있지만 그런 헌 신문조각 때문에 모험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걸로 대체 뭘 할 수 있겠어요?”

“별 쓸모는 없겠지. 하지만 확실한 증거물이야. 위험을 무릅쓰고 누구에게든 보여 준다면 약간이라도 현시대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생길 거야. 여기저기 조그만 저항 세력이 일어나 소규모 집단을 이루고, 차츰 세력이 불어나서 후세에 몇 마디 기록이라도 남기게 된다면 다음 세대가 뭔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다음 세대엔 흥미 없어요. 난 우리한테만 관심 있는 걸요.”

“당신은 허리 아래쪽만 반역자로군.”

그의 말이 재치 있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를 끌어안았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 하소연 역, 자화상, 2020. pp. 199-201.

이상에서는 부조리 앞에서 가능한 두 인간이 양항으로 제시되고 있다. 반대인 인물의 성별처럼 그 앞에서 택하는 태도는 〈육체적 자살〉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 카뮈가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본 남은 두 선택을 각각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윈스턴의 경우는 카뮈가 말하는 〈철학적 자살〉을 택한다. 그는 현재의 ‘부조리’한 구도에 대한 전복을 꾀할 수 있다고 믿으며, ‘헌 신문조각’에 들어 있는 진실을 붙잡고서 차츰 불어나는 세력으로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으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이는 카뮈의 입장에서 ‘부조리’에 대해 의미를 부과하는 것, 즉 회색의 세계에 의미를 부과하고 의미가 부과된 세계와 자신 사이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세계는 잘못되었다. 나는 이 세계에 대한 전복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를 살아가는 것인데 이는 〈부조리의 폐기〉에 해당한다.

줄리아의 경우는 카뮈의 〈부조리한 인간〉에 가까워 보인다. 그녀는 ‘미래를 꿈꾸지 않고 현실만을 사는 인간’으로 제시된다. 그녀는 당의 거짓말과 그 거짓말과 자신의 믿음 사이의 괴리, 즉 세계와 자기 자신의 부조리함을 정확하게 주시하고 있지만 윈스턴의 경우와는 달리 어떤 가치나 믿음을 세계에 부여하지 않고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시지프 신화》1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프랑스 갤리마르 출판사에서 1942년 10월 16일에 처음 출판되었다.에서 카뮈가 이야기하는 〈부조리한 인간〉의 상이란 이처럼 내일이 없는, 오늘을 최대한 많이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카뮈가 이 《1984》를 읽고 윈스턴과 줄리아를 각각 어떻게 평가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두 인간 중 누가 더 자기가 보기에 ‘나은 인간’인지 판정할 것인지다. 내가 카뮈의 주장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것일수도 있지만, 내가 예상하는대로 만약 그가 줄리아가 더 낫다고 한다면 나는 카뮈의 〈부조리한 인간〉에 대해 니체의 〈말세인〉과 같은, 인간의 실존 조건에 대한 잘못된 파악에서 기인한 기형적 인간상이라는 비판을 다시 한 번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로서는 윈스턴의 경우가 실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가깝게 행위하고 있는, 더욱 인간적인 〈부조리한 인간〉으로 보이니까.

주석 및 참고문헌

  • 1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프랑스 갤리마르 출판사에서 1942년 10월 16일에 처음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