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6. 2025. 4. 1. ~ 2025. 4. 2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6. 2025. 4. 1. ~ 2025. 4. 22.

2025-04-23 0 By 커피사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짧게 노트에 휘갈긴 것을 그대로 옮겨두는 공간입니다.


#1.

최근 나의 한 가지 질문: “어떻게 사상(思想)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상기 질문이 나온 배경은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적 토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와의 대립으로부터 시작해 살아있는 동안 두 번의 탄핵을 겪고 전 세계에서 극우가 득세하는 흐름 속에 하필 내가 있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나는 수많은 이들이 ― 활동가 그리고 혁명가들이 ―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를 혁파하기 위해 들고 일어났으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운명을 끝맺었다고 기록된 역사들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행위했는가에 관심을 가지곤 하지만, 나라는 별난 인물은 왜 그런 이들이 탄생할 수 있었는가는 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둔다.

4년 동안의 생각 끝, 현재의 직감은 아마도 그것은 사상의 힘이라고 답한다. 인류 정치 · 경제 · 사상사를 되짚어보면 결국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지를 한 인간에게 정립해주는’ 사상이야말로 사람을 송두리째 바꾸고 움직여 종국에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유일무이하고도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결론은 피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신어(新語, newspeak)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를, 사상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다. 가장 느리지만 언젠가 내가 이야기한 바 있듯 가랑비와 같아서 천천히 사람과 사회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을 완전히 탈바꿈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상이다. (이 점에서 사상은 가장 강력한 양날의 검이다.)

내 호기심이 향하고 있는 바로 이것, 어쩌면 금단의 지식으로 향하고 있을련지도 모를 이 질문으로 나는 ‘사상이 세계를 뒤바꾸기 위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요 조건들’을 묻고 있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최근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종교들 그리고 마르크스 사상 등과 같은 정치 사상들로 조금씩 외연을 넓히고 있다. 그들의 교리 · 주장이 궁금하다기보다는, 그들이 인간의 무엇을 건드렸기에 끈질기게 살아남았으며 세를 불려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물론, 상술하였듯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당히 위험한 지식이 될지도 모른다. 생존력 · 호소력 있는 사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헤게모니를 뒤틀 수 있는 힘, 즉 권력 혹은 지배력을 획득하는 것이기에 신중해야 한다. 사상의 최전선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움직이기 위한 방책을 연구한다는 금지된 지식의 최전선으로 나는 이제 향하고자 한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호기심이라는 이 위험천만한 등불에 의지하여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2.

22일에 치르게 될 〈기계학습개론〉 강좌의 1차 복습을 마치고 문제를 풀려다가, 약간의 과부하가 걸려서 국면 전환용으로 집어든 잡지. 나는 오늘 이 잡지에서 기막힌 필연으로서의 우연을 만났다.

《사상계(思想界)》 이야기다. 모든 것의 시작은 2주 전 즈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신문기사였다. 해방 이후 창간되어 수많은 사상과 관점들을 전파해오다 서슬퍼런 독재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시 한 편이 수록되었다는 이유로 폐간되었던 잡지가 복간되어 세상에 다시 나온다는 이야기. 잡지 읽기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비상계엄, 세계 무역 전쟁과 기후 위기라는 세 개의 위기 속에서도 조용히, 그리고 멍청하게 ‘대학 교육을 잘 받은 이’로 남는 결말을 예시(豫示)하는 남들처럼 되기를 거부하는 나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6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내 손으로 문학 · 사상계 잡지를 구독하는 선택을 했다.

복간호라 배송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잡지가 안 온다며 푸념을 간간히 늘어 놓아가며 기다린 끝에 지난 목요일 마침내 봉투에 담겨 온 2025년 복간호는 오늘에서야 첫 페이지를 나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적지 않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린 글들이 너무 참신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 때문이었다. 즉, 내가 생각해오고 판단하고 또 곱씹어오던 문제 의식과 그에 따라 나름대로 내린 처방들이 서술된 내용들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상술했듯 내 문제 인식은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지난 해 12월 4일 나와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 지인들에게 독재 정권의 트라우마와 공포를 되살린 비상계엄이요,1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이 일을 기도한 자는 지난 4월 4일에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으나, 여전히 그는 반성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재기를 꿈꾸고 있다. 나로서는 1970 ~ 80년대의 군사 독재 정권으로써 사람들의 권리들을 찬탈해간 두 독재자들보다 그가 더욱 악질로 보인다. 둘은 가면을 벗어던진 바다 건너의 미국이 이빨을 드러내고 전 세계를 상대로 협박을 벌인 것이 단초가 되어 우리 모두가 휘말리고 있는 무역전쟁이요, 마지막은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가 분야인지라 늘 곁에 두고 사유하지만 솔직히 최근에는 회의적인 입장(그러나 하술할 내용을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나는 분명히 포기하지는 않았다)으로 가고 있는 듯한 기후 위기다. 대학에서 나는 정말 기막히게도 말세적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목도해왔는데 ― 만난 이들 대부분이 책을 읽지 않고 학문 일반과 사상에 대해 논할 줄도 모르며, 오로지 문제를 잘 풀어왔다는 그 보잘 것 없는 (그리고 내가 다행히도 그들과는 달리 일찍이 깨달았듯) 무의미한 자존심의 부추김으로 저 광활한 무지의 바다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서 있는 땅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공간이라는 점(환상, 또는 독)에 도취해 치열한 수학(修學)과 질문하기를 포기하고선 술을 퍼먹고, 잠을 퍼질러자고, 아무런 문제도 못 느끼는 ― 그들에 일찍이 질식해버린 나는 대화를 일찍이 포기한 상태였고 따라서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비록 얼굴도 모르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상당한 위안을 얻은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러한 나의 시각에 반론을 다음과 같이 제기할지도 모른다. 저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고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는데, 어찌 그리 단언할 수 있느냐고. 당신은 스스로가 대화를 거부하고 우물 속에 스스로 뛰어든 끝에 자기 오만에 빠진 것은 아니냐고.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대학에서 지낸 지난 5년 동안 나는 자신의 전공 분야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와 자연, 문명의 모든 측면 ― 그러니까 철학부터 문학, 음악,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자연과학, 수학 등 오늘날까지 인류가 쌓아올려 온 전체 학문에 대한 폭넓고 왕성한 호기심에 강력히 추동되어 나름대로의 준칙과 가치관 · 세계관을 확립 · 확장해가며 글을 쓰는 이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최근에 우연이 마침내 나의 손을 들어주어 몇몇 그러한 이들을 알게 되고는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 학교 바깥의 인물이거나 일찍부터 ‘영재’라는 말들을 들어가며 순식간에 대학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당초의 내 직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도처에서 패배주의에 빠진, 절망에 빠진 또래들을 본다. 《사상계》에서 읽은 글들의 진단은 이 관찰 때문에 유효하다. 성장 · 성공의 신화와 꿈들이 도처에서 부풀어있었던 지난 1970 ~ 90년대와는 달리 오늘날 나의 세대가 목격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 바뀌지 않는 현실, 바닥으로 떨어진 정치 효능감, 기타 등등이다. 대선 국면에서 수많은 후보들은 채용과 성장, ‘더 나은 삶’을 청년 세대에게 약속하지만 나는 그것들 모두가 핵심을 비켜갔음을 안다. 이 시대에 결여된 것은 결국 경제적 성장 동력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이니까.

오래 전부터 세계의 부조리, 직감이 경고해오는 공동체의 침몰에 강력한 경각심을 가져왔던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두고서 아버지와 설전을 벌였다. 아버지의 말씀은 늘 동일했다. “그 위치에서 그렇게 해 봐야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다.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서 준비가 되었을 때 행해라.” 언젠가 쓴 글처럼 나는 그것이, 즉 힘과 권력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처럼 내 아들에게 이야기하게 될 까봐 두렵다.”라고 썼다. 힘과 권력을 가진다고 해서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내가 손을 쓸 수 없음은 자명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니까. 내가 어떤 위치에 있던지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나는 일찍이 깨달았다. 다행히도 나는 포기하는 대신 가장 근본적인 것을 손대기로 결심했다. 오래 전, 나는 〈철학자〉로 살고 또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때부터 나는 〈사상〉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펜 한 자루로 아버지가 아는 ‘권력’이 아닌 언어로써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겠노라는 꿈을 가졌다. 이틀 전 〈사상〉은 언제 득세하여 변화를 점화시키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 저편에는 이러한 역사들이 있었던 셈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전히 우연들이 모여들어 필연이 됨을 목도하고 있다. 수많은 징조들과 경험들은 마치 내가 나아갈 길이 바로 저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하다. 이러한 기막힌 느낌(기막힌 정신착란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비이성적인 인간 존재에 대해 아는 이상, 불가능한 항상성을 향해 끝없이 손을 뻗는 유한자의 운명을 아는 이상 나는 이것이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지난 날들이, 괴로움과 무력함 속에서 사상과 철학을 찾아 헤맨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아들에게 내가 똑같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듯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젖히고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열 그런 사상이 내 펜 끝에서 탄생하는 바로 그런 꿈을.


#3.

〈기계학습개론〉 중간고사 당일이지만, 계속해서 읽고 있는 《사상계(思想界)》의 글들을 읽고 든 생각에 대해 기록해두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번 변형태로 진술한 것 같기는 하나, 최근 들어 나는 우리나라에 철학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더욱 절실히 하게 된 것 같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전 대통령(또는, 광인)이 내가 서 있는 대학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기원한다. 그가 교육을 ‘잘못’받은 것은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이 대학을 마찬가지로 졸업한 수많은 의원들이 지난 12월 7일과 14일에 침묵했으며 여전히 그들 중 대부분이 비상계엄은 틀리지 않았다거나2그들은 야당의 ‘폭거’를 막기 위한 ‘정당한’ 경고라고 말한다…… 정말 헌법 제1조에 적힌 ‘민주공화국’의 뜻을 모르는 것인가? 탄핵은 부당했다고 주장해오고 있음을 기억한다. 86년 체제를 탄생시킨 대학 운동권들은 지난 37여년 동안 번갈아 정권을 잡았으나 결국 우리는 일보도 전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사람들은 승자독식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여전히 학생들은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대학에 들어온 것을 평생의 자랑거리로 여기기에 나는 대학에서 보낸 지난 4년 동안 철학하고 사유하는 이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거쳐온 저 거지같은 교육 시스템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얼마나 잘 외워 있는 그대로 뱉어내는지를 훈련시킬 뿐이지, 질문하고, 의심하고, 연결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광활한 무지의 바다 위를 기꺼이 표류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이 학문함의 본질임에도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고 또한 그렇게 하는 많은 이들을 도태시켰으니까. (나는 내가 흥미롭게 여기며 교류하는 이들 대부분이 이 대학 출신이 아님에 주목한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궤뚫어보는 이들은, 교화되지 않은 독창성을 뽐내는 이들은 오늘날 이 저주받은 관악의 토양 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다못해 이 대학마저도 그 논리의 연장이 되어 학생들은 교수자의 말을 오로지 받아적기 일쑤이고, 질문도 속으로 삼켜버린다.

그 증거로서 나는 지난 해들 동안 교양 강의가 끝나더라도 학생의 9할 이상은 질문도 어쩌한 갸웃거림도 없이 곧장 강의실 문을 나가버리는 광경들을 목도해왔다. 나는 수많은 룸메이트들이 질문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학문과 생각을 갈고 닦기보다는 누워서 뒹굴거리거나 술을 퍼먹거나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나도 가끔 그렇게 하니까. 알코올을 제외하고. 그러나 ―) 자신의 무지, 끝없는 학문의 지평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거둔 입시라는 보잘 것 없는 〈광휘〉와 이미 선행으로 다 아는 내용이라는 생각 덕에 수업도 빼먹고 자아도취하여 몽매의 골짜기에 빠진채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기가 막힌 모습을 봐 왔다. 철학이, 비판이, 성찰이, 무지에 대한 겸허한 인식과 활발한 토론이 결여된 이 토양은 따라서 이미 오래 전부터 독재와 순종에 익숙한 멍청이들을 양산하는 정신병원에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사상계》에 실린 계엄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보며 나는 우리 세대에 결여된 것은 ―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의 다수에 결여된 것은 철학함이라고 다시금 생각해본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압제와 반대 의견들에 주목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사회에서는 애통하게도 오랫동안 결여되어 온 것 같다. 《사상계》의 필진들처럼 (재미있게도, 대부분은 서울대 · 연세대 · 고려대의 교수진들이 아니다) 꿈꾸고 치열하게 쓰고 논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 망할 대학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순종하는 인간들로 가득 차 있고 나는 다시 한 번 견딜 수 없는 악취 속에서 질식할 지경인 듯하다.

나는 철학과 사상이 풍부한 토양을 꿈꾼다. 안일한 만족에 빠져 스스로에 도취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치열하게 읽고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철학하다가 가는 삶을 꿈꾼다. 사상과 학문의 최전선에서 격렬히 논쟁하고 사유하며 대안을 찾고 주체적으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동료들이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이 꿈이 실현되는 세계,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언제든지 나는 제2의, 제3의 비상계엄과 그 이후의 폐퇴적인 한국 사회가 반복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정신 똑바로 차리자. 맑고 푸른 소나무를, 그런 우뚝 선 소나무를 생각하자.


#Appendix.

HeMeets – 느와르 (Mini Ver, 2025) ― 음악이 흘러나오는 위 영상은 단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흑백의 빛깔을 유지한다.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화려한 색상은 그것이 일순간의 가장임을, 결국 오늘날의 도시는 ‘누구도 그다지 커다란 의미가 없는 걸 아는데 그까짓 자존심 굽히질 못해서’ 세워졌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나는 ‘네온사인에 술과 화장품 향기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땅을 떠올린다. 진짠지 영환지 모를 비상계엄을 겪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누가 먼저 손 내밀던 뒤통수를 저격’하는 잔인한 질서에 너무나도 쉽게 순종해버림도 되짚어낸다. 결국 ‘하늘을 보는 사람은 하나 없는 곳’에서 결여된 것은 단 하나, 철학이다. 의심, 사유, 비평. 이 세 가지가 결여된 곳에서 암묵적인 압제는 상식이 되며 반대 의견과 토론은 봉쇄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철학자〉로 살다가 죽고 싶다는 당초의 소망을 끝까지 되새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이란 ‘이게 진짠지 영환지’ 모르는 상태일 뿐일 것이므로.

HeMeets – 느와르의 가사

해가 저물고 별빛이 어스름하게 내려도
하늘을 보는 사람은 하나 없는 곳
네온사인에 술과 화장품 향기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도시의 까만 그림자

워어어 워어어어어 워어어 워어어어어

우린 너무 차이나 같아지기 위해 싸우나
누가 먼저 손 내밀던 뒤통수를 저격해
우린 너무 사이가 나빠서 이제 불어닥칠 그
Blood Night Neon Night City

담배 냄새가 양복에 배어들어가도
좁은 골목을 시 쓰듯 걸어 다니죠
주머니에 쓱 한 손 집어넣고서
세상 나 혼자 산다 폼 좀 잡아볼까

워어어 워어어어어 워어어 워어어어어

우린 너무 차이나 같아지기 위해 싸우나
누가 먼저 손 내밀던 뒤통수를 저격해
우린 너무 사이가 나빠서 이제 불어닥칠 그
Blood Night Neon Night City

꽁초가 쌓이고 고뇌가 쌓이고
술병이 쌓이고 오해가 쌓이고
어쩔 수 없지만 그대와 싸우고
등 뒤를 보이면 당할 것 같아
사실은 누구도 그다지
커다란 의미가 없는 걸 아는데
그까짓 자존심 굽히질 못해서
술잔만 바라보나

오늘도 도시의 밤은 화려하지 않아
알 수 없는 곳이라도 시계는 돌아가
우린 정말 사이가 좋아지는 법을 몰라
진짠지 영환지 몰라

우린 너무 차이나 같아지기 위해 싸우나
누가 먼저 손 내밀던 뒤통수를 저격해
우린 너무 사이가 나빠서 이제 불어닥칠 그
Blood Night Neon Night City

이게 진짠지 영환지 몰라

주석 및 참고문헌

  • 1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이 일을 기도한 자는 지난 4월 4일에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으나, 여전히 그는 반성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재기를 꿈꾸고 있다. 나로서는 1970 ~ 80년대의 군사 독재 정권으로써 사람들의 권리들을 찬탈해간 두 독재자들보다 그가 더욱 악질로 보인다.
  • 2
    그들은 야당의 ‘폭거’를 막기 위한 ‘정당한’ 경고라고 말한다…… 정말 헌법 제1조에 적힌 ‘민주공화국’의 뜻을 모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