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2023. 3. 5. ~ 2023. 3. 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짧게 노트에 휘갈긴 것을 그대로 옮겨두는 공간입니다.
#1.
장재형의 《마흔을 위한 니체》에서 오늘날 「마흔」은 「스물」로 대체되어도 문제가 없다…… 우리 청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니체〉다. 《스물을 위한 니체》라도 써야 할까?
#2.
알베르 카뮈의 문학은 니체 철학을 「반항」이라는 키워드로 구체화한 것이다.
#3.
카뮈에게서 〈니힐리즘〉은 곧 〈부조리〉라는 단어로 표현되며, 그 해결책은 〈반항〉이라는 단어로 구체화된다. 그는 〈자살〉도 니체의 〈종교〉를 구체화한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전적으로 주체적인 이가 직시하는 방법, 즉 〈반항〉이라는 단어를 오히려 제시하는 것이다.
#4.
카뮈는 니체의 〈자기애〉 또는 〈운명애〉 사상이 결코 체제 순응으로 이해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5.
아직 둘 모두를 전부 이해했노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 나에게는 니체와 카뮈는 같은 계열의 사람으로 보인다.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둘 모두는 〈철학에서 가장 진지한 문제〉에 대해 논하였으며, 또한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힘껏 보여주었으므로 두 사람은 모두 인간, 그것도 세계 속의 인간 그 자신에 대해서는 역사상 가장 솔직한 이에 해당했다.
그들은 인간이 속단한 것들을 차례차례 해부하였고 또한 그것들을 숨기지 않고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 여전히 솔직하지도 못하고 그러한 언어들도 획득하지 못한 듯한 나로서는 가야 할 길이 아스라히 보인다…… 길은 끝이 없다…… 어디로 향해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질문하고, 또 읽고 치열하게 그 힘든 한 발씩 걸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6.
카뮈식으로 철학(?), 학문(?)을 표현한다면? 물론 그것은 하나의 〈편향〉이겠지만, 모든 철학과 학문은 인간의 투쟁 ― 합리와 비합리 사이의 전적인 투쟁이다.
인간은 합리를 바라면서 비합리의 세계에서 합리를 세우지만, 그러하는 즉시 그 합리란 새로운 비합리에 의해 부정당한다. 그 처절한 투쟁의 역사야말로 비단 역사고 학문이고 철학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