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7. 2024. 2. 26. ~ 2024. 3.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짧게 노트에 휘갈긴 것을 그대로 옮겨두는 공간입니다.
#1.
참 여러모로 바쁜 듯 하면서도 아닌, 그러나 새벽이라는 종국의 시간에 몰려오는 피로를 고려할 때 뭔가 하기는 했다는 특유의 안도감에 젖을 수 있는 하루였다.
솔직히 오늘은 예상치 못하여 황당했던 일들이 꽤 많았다. 9시부터 기숙사 방 냉난방기(10년도 더 된 그놈)를 마침내 교체하기에 외부 업체 직원들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벽보로 알고 있었는데, 9시가 넘자마자 전 호실의 문을 따고 바로 작업을 진행할 줄은 몰랐다. 솔직히 인부들이 보는 이 없을 때 하는 말들이 꽤 험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권 · 지갑 · 고액 전자기기까지 죄다 가방과 외투에 쑤셔넣은 뒤 쫓겨나다시피 방을 나섰다. 원래는 연구실에는 정오가 지난 오후에 갈 계획이었지만 말이다.
가는 길에는 군대로 간 친구 K에게 쓴 손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들렸다. 전날 밤에 대략 반 시진을 내어 쓴 것이었는데, 요즘 시대에 무슨 손으로 쓴 편지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인쇄 활자로는 할 수 없다는 신념이 분명히 있음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연구실에서는 여전히 지루하지만 어쩌면 곧 그 지루한 단계를 끝낼 수 있을 계산 코드 작성을 이어갔다. 데이터 구조부터 계산 모듈까지 Python 3.7에서 Julia 1.9로 옮기려니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코딩해야 할 것들도 늘어나고 잔버그도 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결판지어야만 한다. 연구를 더 이상 오래 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만성적인 목과 어깨 근육 긴장(지난 주 금요일부터 지속된 바 있었다) 때문에 일을 맨정신, 즉 명민한 그 정신으로 지속하기에는 어려워 결국 일찍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금일이 대학의 학위수여식인지라 시끌시끌한 학내 중앙을 통과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웬걸, 업체 사람들이 난장판을 만들어두고 나갔다. 즉시 항의하기는 했으나 결국 분진과 쓰레기들은 내가 다시 꼼꼼히 치워야만 했다. 오는 3월 4일부터 가게 될 새로운 강의실 여러 곳들을 둘러보고 돌아온 차라 피곤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 수가 없었다.
참……. 나도 다사다난하게 사는 운명인 듯 하다.
#2.
종일 기숙사에 있었다. 어제에 이어 호실 내 냉난방기의 교체 작업이 이루어지기에 혹시나 하는 것도 있고, 게으른 나의 습관 덕에 연구실에 가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연구실의 내 컴퓨터는 접속이 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별로 없었다. 문제의 원인이 짐작가는게 별로 없기는 하지만, 내 컴퓨터만 네트워크 I/O가 안 되는 모양이므로 랜선 연결 상태나 공유기의 설정, 학내망의 방화벽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개강까지 며칠 남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moOde 오디오 포럼에서 어제에 이어 발견한 문제점들에 대해 영국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했던 바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내 쪽에서 어떻게든 해결할 방안을 찾았다. 몇 가지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스트림까지 추가하고, 내가 애청하는 KBS Classic FM까지 되도록 만드니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독서회는 결국 오는 학기에 두 개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으로 된 듯하다. G에게 초대받아 들어간 경남과학고등학교 36기의 독서 모임에서는 다음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게 되었고,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내 게으름의 상징과도 같던 오전이영 ‘괴델, 에셔, 바흐’ 독서회는 지난 며칠 간 구성원들에게 물은 바들을 모아 오늘 재개 건의를 하고 논의에 들어갔다.
사실 독서회를 약간 무리하는가 싶으면서도 이 정도로 판을 벌리는 것에는 개인적인 동기가 있다. 지난 학기의 실패 원인이 스스로의 탈-루틴, 즉 학업에 정진하면서 유지해야 할 특유의 명민한 그 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독서는 항상 글을 읽으며 의미를 되짚어야 하는 정신 상태가 아니면 불가능하기도 하고, 또한 독서를 바쁘게 한다면 여가 시간에 인터넷 방송이나 게임과 같은 쓸데없는 일들에 신경을 쏟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곧 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옳은 판단인지는.
#3.
개강을 정말로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때다.
그러나 강의실은 다 돌아보았고, 교재도 준비되었으며 기록을 정리해두는 드라이브 폴더도 이미 모두 다 정리해두었다. 필요한 장비들도 마련했고, 다만 신학기용 강의 Rough 노트와 강의 필기 노트를 정리하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신학기 준비와는 별도로 드디어 독서회를 재개한다. 내일에만 모임이 두 개 몰려있는데, 하나는 지난 여름에 9차 모임(여름의 9차 모임)을 한 뒤로 중단해두었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과 친우 몇몇이 모여 그 악명 높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를 읽는 독서회이고, 다른 하나는 언급한 바 있는 36기 경남과고 동기들과의 독서 모임인데, 두 독서 모임의 봄 학기이자 신년 첫 모임을 내일 하기로 잡은 것이다.
(부끄럽게도) 독서회를 준비하기 위해 책을 오랜만에 다시 폈다. 〈날적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기로 했는데, 교보문고에서 주문한 책을 어제 찾아와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햄릿〉, 〈오셀롯〉, 〈멕베스〉, 〈리어왕〉의 4대 비극은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그린 작품이라는 해석이 가장 잘 와닿았다. 어제 지하철을 헷갈려 거의 시간 맞게 도착하여 들었던 제62회 SNUPO 정기연주회에 대한 감상평에서 인간의 감정 · 마음의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고도 자세하게 표현하는 고전 음악에 대해, 인간의 일부만이 아닌 전체, 단면만이 아닌 복잡한 목소리와 때로는 모순적으로도 보일 정도로 복잡하지만 Unity를 잃지 않는 그 표현의 예술을 찬미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강을 앞두고 나는 마음과 생활 습관을 다시 정비하려 하는 것이다. 복합적인 나의 면모들을 그러한 특성의 작품들로 하여금 비추게 하고, 다시 한 번 나를 일으키고 또한 이해하며, 그리하여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4.
결여되어 있었던 것들을 되찾은 기분이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내면에서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태초의 본능,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세우고 재건하려는 인간 특유의 그 욕구가 다시 한 번 되돌아온 것이다.
독서회의 결여가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 것일줄 누가 알고 있었겠는가. 오전에는 경남과고 동기들과 준비 모임을 가졌고, 저녁에는 6개월을 미루던 〈괴델, 에셔, 바흐〉의 독서회를 재개하였는데, 모임 준비를 위해 책을 다시 펼쳐든 그 순간 잊고 있었던 나의 것들이 튀어나와 되돌아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저자 호프스태터의 천재적이면서 통찰 깊은 분석, 때로는 구별하는 명민함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숙부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지 못하고 결단을 고민하는 왕자 햄릿의 인간적인 고뇌와 분노, 절망과 원망의 포효가. 즉 책을 덮어두고서는 움직이고 말하는 화면들에 빠져 있던 지난 시간들 동안 떠나 있었던 것들 즉, 그리웠던 명민함으로의 욕구, 인간 이해와 로고스적 사유함의 그 특유하고도 미묘한 기쁨. 그것들 모두가 오랜만에 다시 목소리와 얼굴을 보게 된 반가운 사람들 사이에 섞여 글과 종이, 펜과 삶의 향기를 풍기며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다시 치열하게 쓰고 고민하며 탐구할 때가 이르렀다. 성실함을 다시금 약속하는 의미로서 구매한 파커 사의 만년필도 도착했다. 잉크를 굳게 하지 않으려면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잉크가 펜촉을 따라 미끄러지도록 해야 하듯, 사람의 정신도 꾸준히 갈고 닦는 수행 없이는 시들고 뒤틀린다는 그 사실을 지난 학기 나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제 명민함의 감각, 그 예민한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지난 날의 경험을 거울 삼아, 드보르작 첼로 마단조 협주곡 2악장처럼 고백하며, 또한 치열한 아름다움이란 젊은 오늘의 청춘에 있음을 보여주도록 하자.
삶이여, 다시 왔노라!
학문이여, 돌아왔노라 고백한다.
바라는 것은 오직 이 정신과 마음의 맹세가 지켜지는 것 바로 그것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