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커피와 사유(思惟)가 있는 공간.
과학고등학교 후배에게서 던져진 질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의 헵타포드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같은가?” 서로 다른 세 층위에서의 서로 다른 세 대답. ‘본질성’의 층위를 알 수 없는 한, 대답은 여전히 열려 있다.
스스로의 벽을 깨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걸까. 그리하여 진실 앞에 눈감아버리는 아둔함은 얼마나 높고 거대한, 뒤틀린 장벽을 쌓게 되는 것일까. 나도 바로 그런 행동을 했다. 마음속에 잘못된 그림을 그리고 그 앞에 그저 앉아만 있었다. 진실을 알아내려는 용기가 없었다. 내가 한 걸음만 나아갈 수 있었다면 맥심은 넉 달 전, 아니 다섯 달 전에 이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을 텐데. […]
내가 음악을 바라보는 이러한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정립된 것이 아니다. 들어왔던 음악들 각각이 제공해준 특별한 경험들이 스스로의 삶과 상호작용한 결과로서 탄생한 것이다. 어떠한 음악을 지금까지 들어왔고, 음악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대기과학과 컴퓨터공학이라는 두 가지 전형적인 이과 과목들을 전공해오고 있는 대학 생활이지만 예전부터 나는 지극히 인문학적인 인간이기도 해서, 결국 또 독서회에서 알게 된 두 권의 책을 추가로 주문하고 말았다. 두 권의 책 중 전자의 책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일차원적 인간(One-Dimensional Man)인데, 이전에는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저서였으나 지난 6월의 독서모임에서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본문 중도에 등장한 이래 무슨 책일지 궁금하게 된 계기로 찾아보게 되었다. […]
“Gott ist tot.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어록이 하나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바로 그 말. 니체 초심자들에게는 마치 ‘신의 존재 부정’으로 들리기에 신성모독 혹은 지극한 현대주의적 발언으로 여겨지곤 하는 말. 그러나 그 뜻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사실 니체의 전반 사상에 대한 폭 넓은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서양 철학의 전반적인 역사 혹은 그 기조에 대한 시야가 어느 정도 잡혀 있어야 합니다. […]
이번 학기도 끝나자마자 어김없이 만성적인 우울감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특유의 이 반복되는 멜랑콜리는 번아웃과 완전히 같은 종류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처절하게 느꼈던 사실이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긴 하다. 노력과 결과는 완벽하게 비례하지 않는다는 그 자명하고도 잔인한 법칙. 한때 나는 고등학교 때의 그 살인적인 경쟁 원리란 그나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원리라고 생각했다. […]
“오늘날 벌어지는 정치 · 경제 · 문화의 전반에 걸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그 원인을 탁월하게 짚어내는 철학적 안목, 그러나 대중 강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은 무성의한 도서” – 김누리 교수는 탁월한 안목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부재〉를 짚어내고 있다. 비록 그가 책에서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정치 이야기’가 금물로 여겨지기 시작할 정도로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되새겨야 할 가치만큼은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