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커피사유

낮에는 학구열과 호기심이 넘치는 학자, 밤에는 실리적인 프로그래머, 새벽에는 새벽만의 또렷한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블로거. 별난 사람, 커피사유입니다.

작문을 위한 작문

By 커피사유 2025-07-16 0

근래에는 작문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동안의 여러 글쓰기를 점검한 결과, 나는 스스로가 카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에서 글로 예술을 빚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는데, 그의 문장들에서 강한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문체를 갈고 닦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글과 철학 자체가 일치하는 지경을 갈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사유 #54. 부조리한 글쓰기

By 커피사유 2025-07-11 0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진다. 산정에서 시지프는 다시 한 번 그 장면을 응시한다. 당초의 위치로 모든 것이 되돌아가는 이 영원회귀. 세계는 변한 것 없으면서도 모두 변한다. 운명을 직시하는 인간은 글쓰기 일체를 통해 이 위대한 인간의 몸부림을 그려내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삶에 대한 설명을 바라는 인간, 그는 그 몸짓을 글에 대해서도 유감없이 모조리 발휘한다.

Clair-Obscur

By 커피사유 2025-07-10 0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그 그림에 대한 미셸 푸코의 평론, 그리고 마침내는 비디오 게임 ‘Clair-Obscur: Expediction 33’. 이 세 작품을 관통짓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질문일 것이다. “Le rêve doit-il crève? (꿈은 죽어야만/파멸해야만 하는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7. 2025. 6. 19. ~ 2025. 6. 22.

By 커피사유 2025-06-30 0

김애란의 《비행운》, 피아졸라의 탱고, 그리고 카뮈의 철학. 이 셋은 ‘혼재되어 있는 것을 애써 분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모습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나는 비행(非幸) 속에서도 비행(飛行)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했다가, 장면을 바꾸어 시지프스 신화를 떠올려본다. 이 전환을 포착해 글로 남기는 것, 그것이 내가 〈부조리〉라는 카뮈의 주제에 대해 남기는 대답이다.

너는 자라서 겨우(기어서 도달한 위에서) 내가 되겠지

By 커피사유 2025-06-29 0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에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

우상

By 커피사유 2025-06-29 0

합숙소에 들어간 뒤 휴대전화를 압수당했어요. 그러곤 제가 아는 모든 사람에 대한 정보를 털어놔야 했지요. 조금 알건, 적당히 알건, 꽤 잘 알건, 모르면 조사해서라도 파일을 만들어야 했어요. 그 사람 나이, 성별, 거주지는 물론 학력, 콤플렉스, 종교, 건강 상태, 군필 여부, 타지 생활 경험 유무에 이르기까지요.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지만 인정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

시듦과 씀

By 커피사유 2025-06-29 0

저요? 언니도 알다시피 그해 저는 J대 불문과에 합격했어요. 그게 언니가 아는 제 안부의 전부지요? 그러니 저희 과 사무실로 우편을 보내신 걸 테고요. 언니가 제 전화번호를 물어봤는데 조교가 ‘바뀐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는 걸 들었어요. 실은 사정이 생겨 그간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아왔거든요. 휴대전화를 없앤 지도 꽤 됐고, 소포가 왔으니 찾아가란 메일을 받고 며칠을 고민하다 학교에 들렀어요. […]

의도적인 언급 피하기

By 커피사유 2025-06-29 0

다음 날 두 사람은 호텔을 떠났다. 그러곤 메콩 강을 따라 베트남으로 향했다. 물빛 하늘빛이 그윽해 침착하고 평온한 마음이 들었다. 은지는 지난밤 일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간밤에 아이팟이 고장 난 것 같다며, 하노이에 도착하면 애플 서비스 센터부터 찾아봐야겠다고 화제를 돌렸다. 은지는 서윤의 집안 내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서윤이 자기를 집에 초대한 적도, 부모님께 인사시켜준 적도 없어서였다. […]

기다리다, 지쳐서 도망치다, 벗어날 수 없는

By 커피사유 2025-06-29 0

서윤은 여행 도중 딱 한 번 경민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밤중에 공중전화로 은지 몰래 건거였다. 수신번호가 낯설어 그랬는지 저쪽에선 금방 전화를 받았다. ‘그러지 말자’ 수없이 다짐했건만, 서윤은 경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평소 자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유치한 질문을 했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

〈부조리〉 앞에서 도피하는 두 가지 방법들

By 커피사유 2025-06-29 0

서윤의 거절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여행 계획은 산뜻하게 무산됐다. 은지는 들뜬 마음을 접고, 대학원에 갈 목적으로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학부 때 빌린 학자금 대출도 다 못 갚은 상태에서였다. 하지만 은지는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인생을 굴러가게 만드는 건 근심이 아니라 배짱임을 믿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깔보는 거라고. 실은 본인도 믿지 않는 주문을 외워가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