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커피와 사유(思惟)가 있는 공간.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라는 신화적 인물의 서사를 통해 태초부터 사형을 언도받은 우리 자신을 그려낸다. 또다시 바위는 굴러떨어지지만, 기꺼이 다시 한 번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바로 이 운명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하는 단 하나의 불꽃을 본다.
나 자신의 문학적 취향에 대해 조금 남겨볼까 한다. 한때는 단순히 비극 그러니까 슬프거나 씁쓸한 이야기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난 학기부터 곧 끝날 여름 방학에 이르기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부터 김애란의 《비행운》, 마침내는 근래에 유명한 모바일 게임 《트릭컬 리바이브》의 서사 구조에서 내가 무엇에 이끌렸는지를 되짚어보았기 때문이다. […]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예감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황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결국 장 의원이 제1야당의 대표로 최종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이틀 전 후보로 김문수 전 지사와 장동혁 의원이 최종 선출되었다는 비보 뒤에 말이다. 물론 적지 않은 언론사들이 예상하였듯 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를 8:2의 비율로 반영하여 선출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이 정당이 보여온 태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에서 결과가 크게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
집권 여당 당대표 선거에서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정청래 의원이 당선되었다. 그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고 당원이 가라는대로 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그의 입장은 당내 의사 반영이라는 원칙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하긴 하지만, 집권 여당의 당대표로서는 그의 여러 현안에 대한 입장과 인식을 두고 볼 때에는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생각한다. […]
우울하게 들리면서도 어느 순간 우아하게 들리는 문장과 선율들.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두 인상 중 어느 하나도 지워내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는 예술은 드물지만 중요하다.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 속에서 의미를 바라는 인간이라는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진다. 산정에서 시지프는 다시 한 번 그 장면을 응시한다. 당초의 위치로 모든 것이 되돌아가는 이 영원회귀. 세계는 변한 것 없으면서도 모두 변한다. 운명을 직시하는 인간은 글쓰기 일체를 통해 이 위대한 인간의 몸부림을 그려내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삶에 대한 설명을 바라는 인간, 그는 그 몸짓을 글에 대해서도 유감없이 모조리 발휘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그 그림에 대한 미셸 푸코의 평론, 그리고 마침내는 비디오 게임 ‘Clair-Obscur: Expediction 33’. 이 세 작품을 관통짓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질문일 것이다. “Le rêve doit-il crève? (꿈은 죽어야만/파멸해야만 하는가?)”
김애란의 《비행운》, 피아졸라의 탱고, 그리고 카뮈의 철학. 이 셋은 ‘혼재되어 있는 것을 애써 분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모습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나는 비행(非幸) 속에서도 비행(飛行)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했다가, 장면을 바꾸어 시지프스 신화를 떠올려본다. 이 전환을 포착해 글로 남기는 것, 그것이 내가 〈부조리〉라는 카뮈의 주제에 대해 남기는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