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판단의 깊이(기피)
2025-09-06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가 품은 생각과 그가 겪은 불행과 그가 가진 심상(心想)의 비밀 속에는 들어가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삶에 대하여 오로지 물리적인 사건들만 알려고 하는 것은 연대기, 곧 바보들의 역사를 작성하는 짓이 아닌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 이철의 역, 문학동네, 2009. […]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커피와 사유(思惟)가 있는 공간.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마음에 든 문구들을 모아두는 작은 도서관.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가 품은 생각과 그가 겪은 불행과 그가 가진 심상(心想)의 비밀 속에는 들어가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삶에 대하여 오로지 물리적인 사건들만 알려고 하는 것은 연대기, 곧 바보들의 역사를 작성하는 짓이 아닌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 이철의 역, 문학동네, 2009. […]
#1. 문학은 사유로 자연을 재현하려는 목적을 가진 만큼 뭇 예술 중에서 가장 복잡하다. 감정을 묘사하고, 색채, 일광, 중간색, 뉘앙스 따위를 생생하게 되살리며, 좁은 공간이나 바다, 풍경, 사람, 건물 따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회화는 이것이 전부이다. 조각은 질료 면에서 이보다 더 제한되어 있다. 조각은 풍부하기 그지없는 자연과 다채로운 형태의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데 돌과 한 가지 색깔 말고는 다른 방법이 별로 없다. […]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에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
다음 날 두 사람은 호텔을 떠났다. 그러곤 메콩 강을 따라 베트남으로 향했다. 물빛 하늘빛이 그윽해 침착하고 평온한 마음이 들었다. 은지는 지난밤 일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간밤에 아이팟이 고장 난 것 같다며, 하노이에 도착하면 애플 서비스 센터부터 찾아봐야겠다고 화제를 돌렸다. 은지는 서윤의 집안 내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서윤이 자기를 집에 초대한 적도, 부모님께 인사시켜준 적도 없어서였다. […]
서윤은 여행 도중 딱 한 번 경민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밤중에 공중전화로 은지 몰래 건거였다. 수신번호가 낯설어 그랬는지 저쪽에선 금방 전화를 받았다. ‘그러지 말자’ 수없이 다짐했건만, 서윤은 경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평소 자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유치한 질문을 했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
서윤의 거절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여행 계획은 산뜻하게 무산됐다. 은지는 들뜬 마음을 접고, 대학원에 갈 목적으로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학부 때 빌린 학자금 대출도 다 못 갚은 상태에서였다. 하지만 은지는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인생을 굴러가게 만드는 건 근심이 아니라 배짱임을 믿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깔보는 거라고. 실은 본인도 믿지 않는 주문을 외워가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