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Quotes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마음에 든 문구들을 모아두는 작은 도서관.

수기화인(修己和人)

By 커피사유 2025-04-24 0

관계의 시작은 관심이다. 농익은 관계는 설익은 관심으로부터 발전된다. 남태령에서 촉발된 돌봄은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를 향해 번져나갔다. 나 역시 전태일 의료센터에 기꺼운 마음으로 연말 성금을 보냈다. 반세기 전의 전태일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우리의 분노가 좌우 아닌 생사에서 비롯되었듯, 전태일 역시 노동 현장에서 죽음을 몸으로 감각했다. 그의 저항은 생명의 위협에 분노하는 생의 주체로서의 외침이었다. […]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어지는 문장들

By 커피사유 2025-04-04 0

11. 결론 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헌재 2014. 12. 19. 2013헌다1 참조).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거듭되었고, 이는 피청구인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와 국회 사이에 상당한 마찰을 가져왔다. […]

숲의 천이

By 커피사유 2025-03-30 0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너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꼭 해야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 세상에서 너 말고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 모든 것을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 하고 말했다. 미도리는 오래도록 수화기 저편에서 침묵을 지켰다. 마치 온 세상의 가느다란 빗줄기가 온 세상의 잔디밭 위에 내리는 듯한 그런 침묵이 이어졌다. […]

장례식

By 커피사유 2025-03-30 0

“그런데 와타나베, 괜찮다면 말해 줄래, 그 미도리라는 여자애랑 잤어?” “섹스했느냐는 거예요? 안 했죠. 이런저런 게 분명해지기 전에는 하지 않기로 정했거든요.” “이제 모든 게 정리된 거 아니야?” 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오코가 죽었으니까 이것저것 모두 제자리를 찾았단 말인가요?” “그런 말이 아니야. 자긴 나오코가 죽기 전부터 정해 두었잖아. […]

주이상스(Jouissance)

By 커피사유 2025-03-30 0

나는 그녀가 비 오는 날 아침에 노란 비옷을 입고 새장을 청소하고 모이 봉지를 나르는 정경을 떠올렸다. 반쯤 무너진 생일 케이크와 그날 밤 나의 셔츠를 적셨던 나오코의 눈물 감촉을 떠올렸다. 그렇다. 그날 밤도 비가 내렸다. 겨울에 그녀는 캐멀색 오버코트를 입고 내 곁을 걸었다. 그녀는 늘 머리핀을 꽂고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맑고 투명한 눈으로 늘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

외로운 자기 위로

By 커피사유 2025-03-30 0

4월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도 쓸쓸한 계절이다. 4월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듯이 보였다. 다들 코트를 벗어 던지고 밝은 햇살 속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캐치볼을 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지만 나는 완전한 외톨이였다. 나오코도 미도리도 나가사와도 모두 내가 선 장소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안녕.’ ‘잘 지내니.’라고 말해줄 상대조차 없었다. […]

데우스 엑스 마키나

By 커피사유 2025-03-30 0

“바깥은 정말 날씨가 좋아요.” 나는 둥근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가을인 데다 일요일이고 날씨도 좋고, 어디를 가도 사람으로 가득해요. 이런 날은 이렇게 방 안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게 제일 좋아요, 피곤하지도 않고. 복잡한 데 가 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공기도 안 좋고. 전 일요일에는 대체로 빨래를 해요. 아침에 빨아서 기숙사 옥상에서 말리고 저녁 전에 거둬서 착착 다림질을 해요. […]

노르웨이의 숲

By 커피사유 2025-03-30 0

“「노르웨이의 숲」 부탁해.” 나오코가 말했다. 레이코 씨가 부엌에서 고양이 저금통을 들고 오자 나오코가 지갑에서 100엔 동전을 꺼내 거기에 넣었다. “뭔데요, 그거?”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신청할 때마다 여기에 100엔을 넣기로 되어 있어. 이 곡을 제일 좋아하니까 특별히 이렇게 해. 마음을 담아 신청하는 거지.” “그게 내 담뱃값이 되기도 하고.” 레이코 씨는 손가락을 푼 다음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했다. […]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다

By 커피사유 2025-03-30 0

“고독한 게 좋아?” 그녀는 턱을 괸 채 물었다. “혼자서 여행하고 혼자서 밥 먹고 강의도 혼자서 뚝 떨어져 앉아 듣는게 좋아?”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그녀는 선글라스 다리를 입에 물고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실망하는 게 싫을 뿐이야. […]

대극이 아닌 잠재로서의 죽음

By 커피사유 2025-03-29 0

기즈키가 죽은 후 졸업할 때까지 열 달 남짓, 나는 주변 세계 속에서 내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한 여자애와 사이가 좋아져서 같이 자기도 했지만 결국 반년도 가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흡인력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도쿄의 사립대학을 선택해서 시험을 쳤고, 딱히 별다른 감흥도 없이 입학했다. 그녀는 내게 도쿄에 가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무작정 고베 거리를 떠나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