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일지 #39.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I

탐서일지 #39.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I

2026-06-20 0 By 커피사유

탐서일지(耽書日知)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어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두고 나누기 위해, 그리고 책을 읽어나갈 동기를 약속하기 위한 장으로써 마련된 독서 일지 시리즈입니다.


여는 말

Mili – Ephemeral (2014)1Ephemeral [adjective]: Lasting for only a short time (from Cambridge Dictionary).

나도 『안네의 일기』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안네 엄마가 게슈타포 들이닥치기 전에 급하게 집 청소 하는 거였어요.
독일군들이 집을 뒤지다가도 ‘이 집 안주인은 살림을 참 잘했군’ 생각해주길 바란 거에요.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 148.


I. 총평

시작은 이러하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독자에게 즉각적으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부모가 자식보다 젊을 수 있는가? 부모는 자식을 세상에 나게 해준 자들에게 붙는 이름이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보다 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신적 연령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 아버지의 말에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부자 관계를 고려하면 이 가설 또한 기각되어야 한다. 질문은 이어진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라는 화자의 진술은 어떤 진의를 담고 있는가? 애초에 여기서는 누가,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처음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란 앞으로 펼쳐질 비범한 비극으로부터 죽음 앞에 선 우리 자신과 부모라는 하나의 테마를 보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자와 그의 부모가 서로에게 묻고 있는 것이란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니까.

실제로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문에서 확인하게 된다. 주의해야 한다. 단수가 아닌 복수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한아름만이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로증, 조금 더 정확하게는 아마도 허친슨 길포드 조로증 증후군(Hutchinson-Gilford Progeria Syndrome)을 앓고 있는 그가 태어난지 몇 해도 되지 않아 급격하게 늙어가 마침내 열일곱에 이른 오늘 130cm도 되지 않는 키에 80대의 모습을 하게 된 과정은 그의 양친이 모두 목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희귀한 유전질환은 가정의 모두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열일곱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았기에 견뎌야 했던 시선들, 출생의 환희가 불치병의 진단으로 얼룩짐에 따른 추락감, 자신이 혹여 이 운명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을까 하는 전전긍긍함, 점점 좁아지는 집과 늘어나는 빚 가운데에서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의 절망감. 니플헤임2고대 북유럽 신화에서는 사후세계를 두 종류로 구분하여 전승하고 있다. 사람이 용맹하게 삶을 영위하고 공동체를 위해 싸우다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전사들의 낙원인 발할라(Valhalla)로, 그렇지 못하고 거동할 수 없어 침대에서 죽거나 병사하는 경우에는 니플헤임(Niflheim)이라는 ‘안개의 세계’로 가게 된다고 전해진다. 니플헤임이 지옥과 동치인 것은 아니지만, 삶의 역동성을 매우 중시했던 고대 노르드인들은 거동하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면 칼로 직접 죽여서 니플헤임이 아닌 발할라로 가기를 기원했다고도 전해진다.의 안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 사람 모두 모르지 않는다. 미드가르드3고대 북유럽 신화에서는 세계를 아홉 개의 세계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다. 이중 미드가르드(Midgard)는 인간들이 삶을 영휘하는 활기찬 세계, 즉 삶의 세계로 전해진다.에 계속해서 속할 부모의 입장에서 이는 더욱 비극적이다. 소설은, 아름은 그래서 문체를 최대한 축축하고 서늘한 세계로부터 멀리 도피시키고 있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인물인 아름의 문체, 즉 소설의 문체는 최대한 밝음을 유지하려 한다. 실제로 우리는 소설의 곳곳에서 피식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매번 문장이 말하지 않은 무언가를 짐작하거나 알고 있는 독자는 곧 그 피식거림으로부터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 부러웠다”고 말하면서도 장씨 할아버지에게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대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음에도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하느님이 아니라서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해요”라 말할 수 있는 그의 문장 저편을 더듬는 것. 그것은 하나의 대면이자, 숨바꼭질이다. 아름의 어머니 미라가 대수와 결혼한 결정적 동기를 설명한 대목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장롱이다. 두 사람 모두의 안에 있던 것, 안에서 “설레어하다, 초조해하다, 우울해하다, 나중엔 지금 나가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 그냥 거기 그대로 있게” 되는 그 장롱. 우리 모두는 그 장롱을 열고 싶지 않아 한다. 상징계 저편에는 감당할 수 없는 심연이 서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장롱을 열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있는 모습들에 특별한 애착을 느낀다. 나는 황반변성을 선고받은 아름을, 물에 잠겨 없어진 부모님의 첫만남 장소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름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자기 나이의 두세 배나 되는 노교수와 입맞춤을 했다가 흐물흐물함에 데인 어떤 누나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이와 대비하여 나는 실컷 두들겨 맞고 돌아온 대수가 자위를 하고 있는 후배를 보고 부아가 치밀어올라 무자비하게 그를 두들겨 팬 장면을, 그 이후에 벌어진 동침과 관계 그리고 마침내 열일곱의 두 사람이 운명의 실타래를 엮어낸 첫 장면을 다시금 되짚어본다. 아름은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라고도 말했다. 두 문장이 떠올라 대비되는 장면들 사이에 내려앉고, 바람에 풍경이 흔들리듯 내가 물어 무언가가 그 속에서 움직인다. 움직임은 격렬하다. 생명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요란하고 역동적이다. 니플하임으로부터 올라온 게슈타포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안네의 어머니는 급하게 집 청소를 한다. 그녀는 독일군들이 집을 뒤지더라도 미드가르드에 남은 사람들이 ‘이 집 안주인은 살림을 참 잘했군’이라 생각해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이 문장들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는 가늠할 수 없다. 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문장들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II. 문답들

II.1.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과 그 이유는?

“어? 아냐, 아냐. 그럼 이번에는 다른 걸 물어볼게…… 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니?”
“………”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승찬 아저씨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아마 내 증상과,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묻는다는 게 잘못된 표현으로 튀어나온 듯했다.

“그럼, 젊다는 건 어떤 기분인데요?”
“어?”

작가 누나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저는 제가 젊었을 때 기억이 없거든요.”

그녀는 콧잔등의 땀을 한번 닦아낸 뒤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나도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작가 누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근데…… 이런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병원에서 어떤 누나 둘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어요. 이제 막 스물하나? 아님 셋 정도 됐을까? 여하튼 그중 한 명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서 친구한테 뭔 고백 같은 걸 하더라고요. 그렇게 작은 목소리가 어떨 땐 더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도 모르고.”
“뭐라 그랬는데?”
“교수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교수?”
“네, 전공이 뭔지, 결혼을 한 분인지 아닌지 그런 것은 모르지만, 그 누나보다 나이가 두세 배는 많은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어요.”

나는 세 사람이 내 얘기를 들으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쟤가 무슨 엄청난 얘길 하려 저러나 조마조마해 하는 게 틀림없었다.

“사귀는 건 아니고, 누나 혼자 오랫동안 존경하고 짝사랑한 모양인데, 우연히 그 선생님이랑 살짝 스킨십을 하게 된 얘기를 하더라고요, 친구한테.”

이윽고 거실의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어색해졌다. 어머니는 대체 쟤가 왜 저러나 하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그랬는데?”

작가 누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놀랐다고.”
“………”
“술에 취해 우연찮게 한 손으로 그분 뺨을 만졌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분 볼에 자기 손이 닿자마자 화들짝 놀랐다고 했어요.”
“왜?”
“너무 흐물흐물해서.”
“아……”

어디선가 괴로움에 가까운 탄성이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곁에 있던 승찬 아저씨가 내는 소리였다.

“보는 거랑 만지는 거랑 달랐나봐요. 지금도 그 누나가 한 말이 또렷이 기억나요. ‘데인 것처럼……’ 맞아,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다고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그러곤 그날 이후로 더이상 그 선생님이 남자로 보이지 않게 됐대요.”

주위엔 일순 알 수 없는 정적이 돌았다.

“그런데 누나.”
“응?”
“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
“뭐가?”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지.”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
“저는 아직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하면, 어느 땐 한없이 슬퍼져요.”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p. 132-135.

이 대목은 소설 전체의 미학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수많은 역전이 문체 뒤에 숨은 본질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뒤바뀌고, 젊음과 늙음이 뒤바뀌며, 마침내는 죽음과 삶이 뒤바뀐다.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고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로 모든 것이 뒤바뀐다. 니플하임의 안개 위에서도 마지막까지 미드가르드의 쾌활함과 역동성을 꿈꾸는 인간. 망자의 눈을 감겨주고, 염습하며, 땅에 묻어 보이지 않게 하려는 장롱 속의 인간.4요즘에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어떤 모바일 게임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어떤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의 비극으로 묘사하고 있다. 커뮤니티 의견들은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인 세계수 엘드르의 미숙함과 비겁함을 그에 대조되는 유일한 인간의 활약상을 근거삼아 비판하지만, 나는 엘드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해본다. 비극이 그려내는 인간의 본질은 언제나 단 하나다. 소설은 여기에 충실했고, 아름은 “그 생각을 하면, 어느 땐 한없이 슬퍼져요.”라고 말한다. “지상에 뿌리내린 것이 있고 식물의 종자처럼 가볍게 퍼져가는 말이 있”다고 하면, 이 대목은 후자처럼 보이는 전자다.

그 외의 인상깊었던 부분들은 아래에 달아둔다.

II.2.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주인공 양친의 선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주인공의 양친이 만난 이유에 대해 소설은 어머니 미라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는 대수가 꿈이 없어 반했던 게 아니고 꿈이 없는 척하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던 거 같아. 그냥 걔 속에도 내게 있는 것과 비슷한 장롱이 하나 있는 것 같아서…….” 꿈은 비현실적인 무엇이며, 프로이트에 따르면 현실에서 수용하기 힘든 욕구가 변형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그것이 있음에도 없는 척하는 모습은 나에게 있어 니플헤임 위에서도 발할라를 꿈꾸며 미드가르드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살아간 노르드인들을 생각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고대인들의 조혼 풍습을 짧은 기대 수명이나 세력 간의 정치 · 경제적 동맹 구축을 위한 관습으로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노르드인은 그저 인간됨에 충실했을 뿐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두 양친의 선택은 전적으로 인간적이다. 부정할 수도 없고, 비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결국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5이 질문의 원 의도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조혼에 대한 나의 인식을 묻는 보다 ‘보편적 의미’에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이 왜 두 사람을 조혼시켰는가’를 묻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다.

II.3.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 왜 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고, 그게 행복하다고 하는 것일까?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평범한 삶’이란 결국 장롱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계에 던져져 많은 말을 배워온 인간에게 ‘평범함’이란 언제나 하나의 꿈이다. 강조했듯 꿈은 현실에서 수용하기 힘든 욕구가 변형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삶’은 망자를 인도하는 등불이요, 어둠으로부터 눈을 멀게 하는 하나의 빛이 아닐까 싶다. 즉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하는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고자 하는 인간적인 본능에 따라 그려 바라보게 되는, 무통과 평화의 세계다. 한 폭의 정경을 응시하는 눈에 잔잔함이 가득 차오를 때, 그리하여 아무런 감각도 남지 않을 때 우리는 어쩌면 이것이 ‘행복’일지도 모르겠다고 짧게나마 생각하게 된다.

고대 노르드인들은 이같은 ‘평범한 삶’을 니펠하임의 몫으로 넘겼다. 미드가르드는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고대 노르드인들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주석 및 참고문헌

  • 1
    Ephemeral [adjective]: Lasting for only a short time (from Cambridge Dictionary).
  • 2
    고대 북유럽 신화에서는 사후세계를 두 종류로 구분하여 전승하고 있다. 사람이 용맹하게 삶을 영위하고 공동체를 위해 싸우다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전사들의 낙원인 발할라(Valhalla)로, 그렇지 못하고 거동할 수 없어 침대에서 죽거나 병사하는 경우에는 니플헤임(Niflheim)이라는 ‘안개의 세계’로 가게 된다고 전해진다. 니플헤임이 지옥과 동치인 것은 아니지만, 삶의 역동성을 매우 중시했던 고대 노르드인들은 거동하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면 칼로 직접 죽여서 니플헤임이 아닌 발할라로 가기를 기원했다고도 전해진다.
  • 3
    고대 북유럽 신화에서는 세계를 아홉 개의 세계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다. 이중 미드가르드(Midgard)는 인간들이 삶을 영휘하는 활기찬 세계, 즉 삶의 세계로 전해진다.
  • 4
    요즘에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어떤 모바일 게임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어떤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의 비극으로 묘사하고 있다. 커뮤니티 의견들은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인 세계수 엘드르의 미숙함과 비겁함을 그에 대조되는 유일한 인간의 활약상을 근거삼아 비판하지만, 나는 엘드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해본다.
  • 5
    이 질문의 원 의도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조혼에 대한 나의 인식을 묻는 보다 ‘보편적 의미’에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이 왜 두 사람을 조혼시켰는가’를 묻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