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일지 #36. 나카무라 아스미코, 『동급생』

탐서일지 #36. 나카무라 아스미코, 『동급생』

2026-04-15 0 By 커피사유

탐서일지(耽書日知)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어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두고 나누기 위해, 그리고 책을 읽어나갈 동기를 약속하기 위한 장으로써 마련된 독서 일지 시리즈입니다.


여는 말

Mili – Classrom Dreamer

With a fanfare1‘fanfare’는 금관악기로 주로 연주하는 팡파르/팡파레를 일차적으로 뜻하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 요란한 선전이나 과시를 이르기도 한다. my fiction2‘fiction’은 소설을 종종 뜻하지만, 꾸민 이야기 또는 허구를 가리키는데 쓰이기도 한다. starts
팡파레와 함께 내 픽션은 시작돼
We are the stars3‘stars’, 별은 문학에서 아주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이상 · 희망 ·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로 등장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닿을 수 없거나 닿는 게 대단히 어렵지만 바라볼 수는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A beautiful affair
우리들은 별이야, 아름다운 일이지

So in the daily episodes4논의하고자 하는 작품은 ‘일상물’이다. 학교에서 교제하는 두 남학생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 감정선의 변화가 묘사된다. (So in the daily episodes)
그리하여 일상들에서 (그리하여 일상들에서)
Together, we’re the always the main characters
함께, 우리는 항상 주인공이지
And this is our own show (And this is our own show)
그리고 이건 우리만의 쇼야 (그리고 이건 우리만의 쇼야)
Unleashing our super special powers5상상 세계, 펜 끝에서 태어나는 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의 초능력을 발휘해서
We’ll fight against the evil
악에 맞서 싸울거야
We’ll make sure they can’t hurt me anymore
더 이상 나를 상처입게 하지 못하게 할 거야
We’ll call ourselves the heros
우리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부를 거야
Welcome to my magical lonely world
내 외로운 마법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해

I know it’s just a dream
그저 꿈일 뿐이란 걸 알아
Can you make it my reality?
내 현실로 만들어줄래?
Can you make it my reality?
내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어?
Can you make it my reality?
내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겠어?
Can you make it my reality?
내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Every page I drew, every page I drew, I just wanted to be seen
내가 그린 모든 페이지, 모든 페이지들을, 그저 보이고 싶었을 뿐이야
(Please don’t stop my evergoing dream)
(부디 내 영원한 꿈을 끊지 말아줘)
Everyday I knew, everyday I knew, nothing comes easily
매일 되새겼어, 매일 알았어, 쉽게 오는 것은 없다는 것을
(Please don’t stop my evergoing dream)
(부디 내 영원한 꿈을 멈추지 말아줘)
Everything I do, everything I do, are completely done for me
내가 하는 모든 것, 모든 것들은, 전부 나를 위해 했던 것들이야
(Please don’t stop my everygoing dream)
(제발 내 영원한 꿈을 끊지 말아줘)
Why don’t you tell me who, why don’t you tell me who?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래, 말해줄 수 있겠어?
(Please don’t stop my everygoing dream)
(제발 내 영원한 꿈을 멈추지 말아줘)

I already know who I am wating for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어6이상에서 나는 ‘나’를 BL 소설의 독자, 특히 주요 소비층인 여성 독자로 상정하고 의도적으로 이 음악을 인용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란 여기서의 ‘누구’가 실제로 누구 또는 무엇을 가리키는지일 것이다.

Mili – Classroom Dreamer7논의하고자 하는 작품은 두 고등학생 사이를 다룬 ‘학원물’이기도 하다. 앨범 표지는 공교롭게도 두 남아(男兒)다.의 가사 中

괜찮아, 괜찮아, 똑같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른 모양으로 다시 묶는 것도 재미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색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아스미코 나카무라, 《동급생》, 곽중열 역, 조은세상, 2015, p. 159.

  • ‘쉽지 않다’. 책을 덮으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동성애적 묘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은 아니었다. 뭐랄까, 보다 근본적인 종류의 익숙하지 않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서사가 너무 동화 같다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너무 밋밋하다고나 해야 할까? 어쩌면 만화책을 마지막으로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아무 생각 없이 작품을 읽지 않은 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 장르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다. 내 시선에서 《동급생》은 결국 동성 간의 순애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순애물에 노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 여기서 내가 사용하는 ‘순애’의 의미를 밝혀두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통상의 장르와 같은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두 사람 간의 이상적이고 완결된 사랑이 좌절이나 상실 없이 성공적으로, 양방향적으로 달성되는 연애 서사가 주축인 작품을 순애물로 이해한다.8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작품은 아무래도 미라주 작가의 웹툰 〈위험하지 않아요 NPC씨〉일 것이다. 가장 영향력이 컸던 에피소드를 택하라고 한다면 시스투스(Cistus)가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34-36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 🌙 🪽 이 정의에 따르자면 《동급생》은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순애물에 해당한다. 음악을 가르쳐주는 작은 사건으로 시작된 관계는 우연한 접촉, 소소한 계기, 그리고 약간의 위기를 통과해 이상적 형태로 달성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누군가가 관계를 채가는 것(소위 ‘NTR물’)도 아니며 성적으로 상대를 수치스럽게 하지도(소위 ‘능욕물’) 않고 상당히 수위 높은 폭력이 동반되지도(소위 ‘BDSM물’) 않는다.
  • 동성애적 묘사에 대한 거부감도, 장르에 대한 거부감도 아니라면 내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 연유는 무엇일까?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내가 주로 읽는 책은 대부분 대단히 심층적인 독해를 요구하는 철학 고전이거나 서사의 기복이 심하거나 비극적으로 종료되는 문학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읽어가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이러한 글들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다양성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무슨 다양성 말인가? 감각의 다양성? 서사의 다양성?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문체의 다양성?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언제나 묘사된 인간의 내면 이해에 대한 다양성, 즉 인간 이해의 다면성이다.
  • 최근 영화 평론들9근래에 《왕과 사는 남자》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한창 평론을 쓰고 있다. 특히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내 의견은 대단히 부정적인데, 그 이유는 이 독서노트의 기술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을 준비하면서 나는 문학 · 예술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기준이 ‘인간의 다면성’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난 29일에 썼듯 이 잣대는 두 가지의 층위로 세분되는데, 첫째는 다양한 성격 · 가치관 · 배경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본다는 것이며, 둘째는 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등장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본다는 것이다.
  • 《동급생》이 인간의 다면성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지를 상술한 두 세부 기준으로 나누어 검토해보자. 우선 ‘인간 군상의 다양성’으로 요약될 수 있을 전자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작품은 동성애를 묘사한다는 점, 그리고 두 주인공은 성격 · 배경 · 분위기가 반대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하긴 같거나 비슷한 인물끼리의 연애를 묘사했다면 이 작품은 나르시시즘의 구현이라는 평가를 맞이하는데서 그쳐버렸을 것이다. 관계는 그 양단에 금발 대 흑발, 반항아 대 모범생을 두기에 그 대립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촉발되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그 결말을 독자로 하여금 갈구하게 만든다. 통상적인 연애 작품들에서는 이성적 사랑을 다룬다는 점, 정형화된 남성과 여성 주인공(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수많은 드라마들을 생각해보면 딱 적절하다)을 채택한다는 점에서 《동급생》은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 군상의 다양성, 보다 정확히는 사람 간에 가능한 관계를 더욱 다양하게 묘사한다고 평가할 수 있어 보인다.
  • 그러나 작품이 묘사하는 다양성은 정확히 여기서 끊어져버린다. 여전히 《동급생》은 이상적 사랑의 키치를 부수고 나오지 못한다. 여기서 묘사되는 사랑은 결국 순애물, 그 수많은 멜로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남성과 여성 주인공 간의 사랑을 가져와 그 양항 중 하나인 여성을 남성으로 대체하는데 그쳐버린다. 예기치 못하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 때문에 떨어져 있더라도 은근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결국 원래대로 봉합되는 클리셰가 도처에서 동일하게 재현된다. 관계에 있어 한쪽이 주도하고 한쪽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수용하는 소위 ‘공수(攻守)’의 틀 또한 전혀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동등하게 고독한 사랑, 정신적 · 무성애적 사랑, 그리고 동등하게 파멸에 이르는 사랑10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비극적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 유명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생각하고 있다.과 같이 대중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관계들이 더 있다. 뉴스 보도와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실질적인 사랑의 형태는 오히려 이쪽 비중이 더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동급생》은 실제 벌어지는 사랑의 모습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판타지적 장르에 불과하다는 통속 연애 소설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방법이 없다.
  • 다양성에 관한 두 번째 기준을 검토해보면 《동급생》은 더욱 실망스럽다. 물론 이 작품이 깊은 수준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바로 독자들에게 호소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만화 장르라는 점, 그리고 이 작품이 흥행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양 당사자 그리고 조연의 심리적 묘사는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으며 진부하기까지 하다. 결부되는 구체적인 경험이 인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 양 당사자의 ‘마음 묘사’를 이루는 뼈대는 다음과 같다. ① 어떤 계기에서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② 그 계기를 곱씹는다. ③ 내가 왜 이러지 혼란스러워한다. ④ 결국 혼란을 극복하고 고백한다. 이 서사는 ‘너에게 첫눈에 반했다’라는 그 흔한 고백으로 압축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작품이 감정이 고조되는 이유 즉 소위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한 어떠한 배경적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는 두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과거에 어떤 상실을 겪었는지에 대해 전혀 알 방법이 없다. 오직 제시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두 주인공의 접촉과 갈등, 그리고 이 사건들에 대한 단편적 독백들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을 보고 ‘싫다’며 무너지는 장면, 그리고 그 때문에 연락을 받지 않은 상대를 마침내 찾아내었을 때 나쁜 생각을 했을까봐 걱정했다며 안도하는 장면은 그 감정 표현들과 발언 선택 뒤에 숨어있을 인물의 복잡한 배경사와 가치관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제시되는 것은 오로지 애틋함 내지는 서로에 대한 순수한 갈구 뿐이며, 그 뒤에 필연적으로 있을 개인의 욕망이나 폭력성은 의도적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깔끔하게 잘려나가 공허함을 드러낼 뿐이다.
  • 정리하자면 나는 《동급생》을 전형적인 연애 작품에 대한 극복보다는 충실한 재현물로 이해한다. 이 작품은 실제 일어날 법한 사랑에 거의 부합하지 않는 판타지적 사랑을 두 미소년이라는 상징으로 재현하여 현실에서 좌절되는 욕망의 대체물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두 인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처음의 대사는 메타적인 층위에서 전혀 순수하지 않은 의미를 획득한다. 꿈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상대는 레몬색 리본을 끊어버린다. 당황한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똑같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른 모양으로 다시 묶는 것도 재미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색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 색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확히 바로 이것이 《동급생》이 오늘날 인기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핵심 이유이자, 동시에 나에게 있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근간일 것이다.

주석 및 참고문헌

  • 1
    ‘fanfare’는 금관악기로 주로 연주하는 팡파르/팡파레를 일차적으로 뜻하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 요란한 선전이나 과시를 이르기도 한다.
  • 2
    ‘fiction’은 소설을 종종 뜻하지만, 꾸민 이야기 또는 허구를 가리키는데 쓰이기도 한다.
  • 3
    ‘stars’, 별은 문학에서 아주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이상 · 희망 ·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로 등장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닿을 수 없거나 닿는 게 대단히 어렵지만 바라볼 수는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4
    논의하고자 하는 작품은 ‘일상물’이다. 학교에서 교제하는 두 남학생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 감정선의 변화가 묘사된다.
  • 5
    상상 세계, 펜 끝에서 태어나는 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6
    이상에서 나는 ‘나’를 BL 소설의 독자, 특히 주요 소비층인 여성 독자로 상정하고 의도적으로 이 음악을 인용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란 여기서의 ‘누구’가 실제로 누구 또는 무엇을 가리키는지일 것이다.
  • 7
    논의하고자 하는 작품은 두 고등학생 사이를 다룬 ‘학원물’이기도 하다. 앨범 표지는 공교롭게도 두 남아(男兒)다.
  • 8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작품은 아무래도 미라주 작가의 웹툰 〈위험하지 않아요 NPC씨〉일 것이다. 가장 영향력이 컸던 에피소드를 택하라고 한다면 시스투스(Cistus)가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34-36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 🌙 🪽
  • 9
    근래에 《왕과 사는 남자》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한창 평론을 쓰고 있다. 특히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내 의견은 대단히 부정적인데, 그 이유는 이 독서노트의 기술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10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비극적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 유명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