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일지 #40.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II
탐서일지(耽書日知)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어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두고 나누기 위해, 그리고 책을 읽어나갈 동기를 약속하기 위한 장으로써 마련된 독서 일지 시리즈입니다.
여는 말
마음이 하늘을 본다.
내 몸이 바닥에 붙어 있기 때문이겠지.
바람이 불고
내 마음이 날아
당신 근처까지 갔으면 좋겠다.
이 노래가
씨앗이 될지, 휘파람이 될지,
모르는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오래전 부르고 싶어한 이름과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작가의 말’ 中
당신께
당신의 문장을
돌려드린다.
“이 노래가
씨앗이 될지, 휘파람이 될지,
모르는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오래전 부르고 싶어한 이름과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불모와 가사(假死)의 계절이 코앞이니까, 가을이야말로 추파가 다급해지는 시절이라고…… 귓가를 뱅뱅 돈 뒤 사라졌다. 나는 오래전 추파를 추파로 부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가만 웃었다. ‘아! 만권의 책을 읽어도, 천수의 삶을 누려도, 인간이 끝끝내 멈출 수 없는 것이 추파겠구나’ 싶어 흐뭇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세상이 무탈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 196.

I. 총평
추파(秋波). 가을 추(秋)에 물결 파(波). 가장 늙은 아이는 ‘단단한 벽 너머, 저 콘크리트 안’ 바깥에서 까르르 터져나오는 ‘박꽃 같은 웃음’을 바라본다. 젊은 레지던트 하나가 간호사들에게 농담을 던지는 모습이 보인다. 일상적으로 억눌린 채 주위를 건조하게 맴도는 감정들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 광경으로부터 다시 눈을 돌린다. ‘조금만 참으라는 부모 앞에서 고함치는 소년이라든가, 눈뜨면 다시 시작되는 고통에 잠을 자기 싫다고 떼쓰는 아기, 누렇게 뜬 얼굴로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택배처럼 어디론가 실려가는 할머니, 바나나 우유, 체리주스, 복숭아에이드 빛깔의 소변들, 대변주머니, 간성혼수…… 그런 것들이 모두 저 안에’서 스며나온다.2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p. 192-196.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벽 하나를 두고 펼쳐지는 서로 다른 두 계절이다. 귀로는 터져나오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여름 소리가 잔잔한 물결을 따라 밀려 들어오고, 눈으로는 옹기종기 모인 채 희미하고도 앙상한 겨울 양태가 허공에 대고 ‘하아’ 분 입김에 아스라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작가는 ‘철이 든다는 건 철을 겪었다는 말과도 같으니까.’라고 썼다.3Ibid. p. 342. 벽은 두 계절에 물들어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결이다. 벽에 딱 붙어있는 것은 소년이자, 동시에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가을이 분다. 계절을 넘고 종이를 넘어, 단어를 넘고 문장을 넘어, 종이를 넘고 기억을 넘어 우리에게로 불어온다. 두 계절을 사이에 둔 이 풍경 위 평상에 앉은 두 사람이 보인다. ‘쪼글쪼글한 피부’의 아이는 오렌지맛 탄산음료를, 또다른 쪼글쪼글한 피부의 ‘아이’는 자양강장제를 함께 마신다. 푸르른 여름의 파랑이 내려앉는 겨울의 어스름을 위로 하고서 ‘또랑또랑한 목청으로 놀면서 구호를 외치고, 시비를 가리고, 함성을 지르는’ 동네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4Ibid. p. 204. 두 사람 중 키가 큰 쪽이 말한다. “세상은 참…… 살아 있는 것 투성이구나. 그지?”5Ibid. p. 296. 골들을 가로질러 이곳까지 당도한 모든 움직임이 그러하듯 새어나온 이 문장은 키도, 성격도, 마시고 있는 음료수도 다른 두 존재를 기묘하게 묶는다.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두 사람과 함께 우리 자신도 나란히 앉아 있다. 두 사람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름이 느꼈던 것처럼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다.6Ibid. p. 303.
물결이 인다. 바람에 조그맣게 회오리친 말들이 그 바람을 따라 겹치고 흔들리며 지상에 너울거리는 동심원들을 그려낸다. 들어가고 나오는 윤곽들을 넘실거리며 젊음의 무지와 늙음의 통찰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책장의 파도를 탄다. 마지막 장을 덮기 전, 아름을 따라 흐르는 문장들을 몇번이나 확인한다. 그는 “누가 봐도 명백한 구애, 명백한 노력처럼 보이는 표현은 안할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어떤 여지 같은 것은 남기고 싶었다”고, “들키기 위해 숨어 있는 ‘틀린 그림’처럼, 부정이 아닌 시치미가, 긍정이 아닌 너스레가, 들꽃처럼 곳곳에 심겨 있길 바랐다”고 말한다.7Ibid. p. 217. 하얗게 비치는 파루가 시치미와 너스레로 우리를 가끔 웃음짓게 만드는 것은, 그 사이에 들어간 모든 것들의 냄새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칭송받아 마땅한 것은 몸뚱이, 그뿐”인 우리는 폭주족이 지나간 자리를 고개로 가리킨 곳에 장씨 할아버지가 남긴 파란을 읽는다.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죽는 게. 자랑하는 거야, 벌벌 떨면서, 살아 있다고 재는 거지.”8Ibid. p. 206.
추파(秋波). 가을 추(秋)에 물결 파(波). 가장 젊은 노인은 ‘단단한 벽 너머, 저 콘크리트 안’ 바깥에서 피식 터져나오는 숨소리를 듣는다. “간헐적인 훌쩍임 사이로, 어디선가 ‘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걸 놓치지 않고 그가 묻는다. “반색하며, 다급하게,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기라도 할 기세로 묻는다”. 조금 전 이곳에 퍼져나간 그 한마디가, 어쩌면 지상에 남기고 가는 마지막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벽 하나를 두고 펼쳐지는 서로 다른 두 세계다. 귀로는 터져나오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여름 소리가 잔잔한 물결을 따라 밀려오고, 눈으로는 옹기종기 모인 채 희미하고도 앙상한 겨울 양태가 허공에 대고 ‘하아’ 분 입김에 아스라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름의 질문은 ‘조금 전…… 어디에서 웃었어요?’다.9Ibid. pp. 324-325. 벽은 두 세계에 물들어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결이다. 벽 뒤에서 말들이 뱅글뱅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다. 스스로 노래하기 시작하는 말, 바람보다 키 큰 그물채를 뚫고서 하늘거리는 이 모든 말들을 본다. 귓가를 뱅뱅 도는 이 모든 말들 가운데서 우리는 가만 웃는다. ‘아! 만권의 책을 읽어도, 천수의 삶을 누려도, 인간이 끝끝내 멈출 수 없는 것이 추파겠구나’ 싶어 흐뭇해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 소설이 무탈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II. 문답들
II.1. 《두근두근 내 인생》의 나머지 부분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과 그 이유는?
할아버지가 빨대로 쪽 ― 경망스러운 소리를 내며 딴청을 피웠다. 그러고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폭주족이 지나간 자리를 고개로 가리키며 물었다.
“죽고 싶어 환장한 것 같지 않니?”
“누구요? 저 형들요?”
“왜 저 지랄이라니?”
“음, 아마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나는 쟤들이 왜 저러는지 알아.”
“왜 그런 건데요?”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죽는 게.”
“……?”
“자랑하는 거야, 벌벌 떨면서. 살아 있다고 재는 거지. 내가 좀 놀아봐서 알아.”나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알쏭달쏭했지만, 무슨 얘긴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최씨 할머니 손자도 만날 오토바이 타잖아요. 그래서 제가 저번에 물어봤거든요? 형! 형은 오토바이 탈 때 무슨 생각 해요? 하고.”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p. 206-207.
“어.”
“그랬더니 ‘아무 생각 안해’ 그러더라고요.”
“거봐라! 쯧쯧……”
“그래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그 형이 비장하게 답하더라고요.”
“뭐라고?”
“생각하면 죽으니까…… 하고.”
“허, 참!”
“근데 할아버지도 진짜 저러고 노셨어요?”
“어.”
“그럼 저 형들 욕하면 안되죠.”
“왜 안돼? 쟤들도 우리 욕하는데.”
“할아버지는 어른이잖아요.”
“그러니까 해야지. 우린 더 심심하잖아. 오토바이도 못 타고.”
“어휴.”
이유는 총평에 모두 밝혔다고 생각한다.
그 외 인상깊었던 부분들은 아래에 달아둔다.
II.2. 불치병에 걸린 경우와 같이 너무 미래가 없는 경우,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
엄밀히 이야기하면,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 놓인 우주는 무시무시하게 어둡고 또 엄청나게 추”운 것이기에 아름과 같은 사람들에게 내가 뭐라 이야기하더라도 그저 서로를 더듬을 뿐인 물결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러나 소설이 쓰고 있듯, 이 독서 노트와 지난 독서 노트에서 썼듯 인간은 삶과 죽음이라는 둘 사이를 더듬으며 슬퍼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박꽃 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카뮈의 문장처럼 “요컨대 무슨 일이 있어도 수형 환자의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것은 이미 분류된 사건이요, 확정된 화합물이요, 번복할 수 없는 합의 사항”10알베르 카뮈(A. Camus), 《이방인(L’Étranger)》, 유기환 역, 현대지성, 2023, p. 156.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름과 미드가르드(Midgard)는 계속된다. 모든 인간은 사형수며, 세계는 그 어떠한 의미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고 그저 닥쳐올 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그냥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살아 있는 것. 어느 때에는 과연 그게 맞는 일인가 혼란스러움에 빠지면서도, 이 모든 것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11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p. 304-305. 우리는 계속 산다. 그렇다면 아름이 쓴 문장, 그 우주가 “무시무시하게 어둡고 또 엄청나게 추울 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고 쓴 문장을 띄워 보낸다면 “해독을 기다리는 꿈을 안고, 다른 행성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행간은 아마도 외로운 여행이 될 터임에도 불구하고 의미 없는 여정은 아닐 터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얼어붙지 않을 거니까.’12Ibid. p. 248.
II.3. 부모의 입장에서 ‘한아름’ 같은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다음의 인용으로 답을 대신한다.
우리는 드문드문 대화를 나눴다. 입원 하루 전 작별인사를 나눴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로 내가 묻고 할아버지가 대답하는 식이었다.
“할아버지?”
“응?”
“나 또 뭐 물어봐도 돼요?”
“응.”
“평생 아픈 대신 장수하는 자식과 건강한데 요절하는 자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할아버지는 무얼 고르시겠어요?”할아버지가 기가 찬 듯 ‘허’ 소리를 냈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아마 살다 살다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을 짓고 계실 게 뻔했다.
“그러니까 뉴스에 자주 나오는 안락사 같은 거 말이에요. 환자가 괴롭더라도 그냥 두는 게 맞는지, 고통에서 풀어주는 게 최선인지. 공부 많이 한 어른들이 나와서 토론도 하고 그러잖아요. 상황은 좀 다르지만 그게 만일 내 자식이라면 어떨가 상상한 적이 있거든요. 만일 하느님이 ‘너한테 자식을 주겠다. 대신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 첫째 아프더라도 오래 산다. 둘째 짧게나마 건강한 삶을 누린다’ 그러면 어떡하나 꽤 오랫동안 고민했었거든요. 할아버지라면 어떡하시겠어요?
장씨 할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노여운 건지 슬픈 건지 모를 호흡이었다.
“아름아.”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p. 296-297.
“네?”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주석 및 참고문헌
- 1「소리없이 기다려준 당신과 나에게
마음이 하늘을 본다.
내 몸이 바닥에 붙어 있기 때문이겠지.
바람이 불고
내 마음이 날아
당신 근처까지 갔으면 좋겠다.
이 노래가
씨앗이 될지, 휘파람이 될지,
모르는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오래전 부르고 싶어한 이름과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작가의 말’ 中
당신께
당신의 문장을
돌려드린다.
“이 노래가
씨앗이 될지, 휘파람이 될지,
모르는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오래전 부르고 싶어한 이름과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 2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p. 192-196.
- 3Ibid. p. 342.
- 4Ibid. p. 204.
- 5Ibid. p. 296.
- 6Ibid. p. 303.
- 7Ibid. p. 217.
- 8Ibid. p. 206.
- 9Ibid. pp. 324-325.
- 10알베르 카뮈(A. Camus), 《이방인(L’Étranger)》, 유기환 역, 현대지성, 2023, p. 156.
- 11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pp. 304-305.
- 12Ibid. p.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