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커피사유

낮에는 학구열과 호기심이 넘치는 학자, 밤에는 실리적인 프로그래머, 새벽에는 새벽만의 또렷한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블로거. 별난 사람, 커피사유입니다.

탐서일지 #36. 나카무라 아스미코, 『동급생』

By 커피사유 2026-04-15 0

아무리 그래도, 색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BL 장르의 입문작, 《동급생》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중의적이다. 이 작품이 인기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나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원인도 동시에 지적하니까. 나는 이 문장 앞에 등장하는 ‘똑같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른 모양으로 다시 묶는 것도 재미있잖아.’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다면적 미

By 커피사유 2026-03-29 0

최근 영화 평론들을 쓰면서 느끼고 있는 점. 문학 · 예술 작품에 대한 내 평가 기준이 점차 ‘인간의 다면성’을 얼마나 잘 재현하는지로 수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두 가지 층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다양한 성격 · 가치관 · 배경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본다는 것이고, 둘째로 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등장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본다는 것이다. […]

Rêver de l’Agora #1. 도전, 연결 그리고 아고라

By 커피사유 2026-03-18 0

미뤄두었던 꿈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우리의 삶들이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닿을 수 있다면?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를 오늘날 실현해볼 수 있다면? ‘거대한 아고라’는 어쩌면 너무 지나치게 추상적인 지향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작해보지도 않고서 포기할 수는 없다. 목표는 정해졌고, 준비는 완료되었다. 오직 남은 것은 딱 하나. En Marche!

탐서일지 #35.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직소』 IV

By 커피사유 2026-03-07 0

단테의 《신곡》, 영원히 고통받는 유다, 그가 배반한 예수, 그를 조망한 다자이 오사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 죄란 무엇인가? 우리는 일종의 낙원을 찾는다. 원인은 악의 문제다. 고통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 탓할 대상을 찾는 것. 극단에서 우리는 보게 된다. 모든 선을 어둠으로부터 되돌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사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사실을.

탐서일지 #34.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직소』 III

By 커피사유 2026-02-25 0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이건 어렵다.” 《인간실격》의 독자는 이 질문을 따라가며 죄의 반의어들을 만나게 된다. 법도 아니고, 선도 아니며, 신도 아니고 꿀과 콩과 공복도 아니다. 그렇다면 죄의 반의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요조가 말하지 않는 대답이야말로 그와 오사무의 병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이다.

만인만색 #2. 철학: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보기

By 커피사유 2026-02-24 0

카뮈가 시사하듯 우리의 존재 조건은 ‘바위를 계속해서 밀어올리는 것’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순간을 다하여 말하고, 채색하며, 의미를 변형하고 부과하는 존재다. 우리는 현상의 원인을 단일하게라도, 모든 존재자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계속 지목해본다. 우리가 ‘바위를 밀어올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바위를 밀어올리지 않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탐서일지 #33.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직소』 II

By 커피사유 2026-02-19 0

《인간실격》의 화자 오바 요조의 면모는 병리적이다.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라는 존재를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라 진술한다. 그러나 단언은 두 세계의 분리를, 분리는 두 가지의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발견하는 인물의 초상이란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죄하면서도 그 단죄 행위 자체를 자신의 상승을 기도하는데 역이용하는 자다.

만인만색 #1. 일기와 유언의 실존적 동등성

By 커피사유 2026-02-19 0

허무한 인식의 상태, 세계와 나 자신의 화해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의식의 상태가 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점이 있다. 한때 매끈하고 아름다웠던 구조물이 지금 여기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여기에 나는 무엇이든지 세워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 스스로의 가슴이 뛰는 순간이란 이 생각이 의욕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탐서일지 #32.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직소』 I

By 커피사유 2026-02-13 0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는데는 언제나 이 질문이 ‘나침반’이 된다. 나는 죄의 반의어를 찾아 떠나는 배에 올라타 돛을 올린다. 기도, 회개, 그리고 고백. 이 모든 것이 반의어가 아닌 유의어로서 가라앉아버리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가라앉지 않는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우리에게 첫 번째로 어울리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Bon Voyage!

탐서일지 #30.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I

By 커피사유 2026-02-04 0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셰익스피어의 저 유명한 문장은 양귀자의 소설에서도 예외없이 변형되어 반복된다. 모든 문학의 중심이 되는 저 문장에 대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어떻게 대답하는가? 독자에게 요구되는 미덕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